픽윅 클럽 여행기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허진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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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읽었다.

상당히 긴 분량 때문에 혼자서는 진도가 나가지 않을까봐 랜선 독서모임으로 시작했는데 걱정은 기우였다.

디킨스적인 유머와 풍자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었던 책이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들을 오래전에 읽었기 때문에 스토리의 잔상만이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인데 <픽윅 클럽 여행기>에 빠져들면서 왜 이제서야 그의 작품을 펼쳤는지 후회와 안타까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읽어야 할 페이지가 점점 줄어드는 게 아쉽기만 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디킨스 만세를 외쳤다.

고전의 비교 불가한 재미와 매력을 새삼 일깨워준 책이기에.

 

<픽윅 클럽 여행기>는 국내 초역으로 소개되는 청년 찰스 디킨스의 첫 장편소설이다.

처음에 신문에 연재 형식으로 발표되다가 이후에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각 장마다 길지 않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서 짧은 호흡으로도 읽을 수 있기에 부담감이 없다.(사실 너무 재미있어서 분량은 상관없을 정도다)

<작은 아씨들>에서 픽윅 클럽 이야기를 접하면서 무척 궁금했고 기대감이 컸는데 책을 읽으며 그녀들이 왜 그렇게 열광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픽윅 클럽 멤버인 픽윅 씨, 윙클 씨, 스노드그래스 씨, 터프먼 씨.

호기심 많은 네 명이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며 좌충우돌 코믹하게 그려지는 시골 여행기가 펼쳐진다.

왠지 미워할 수만은 없는 징글씨,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웰러와 샘 부자의 활약, 윙클씨의 수난, 바델 대 픽윅 재판 사건  등 여행에서 겪게 되는 사건, 사고와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때론 포복절도하고 때론 안타까움에 덩달아 마음이 심란해졌다.

어리숙하고 허당끼 다분한 인물들은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져 친근함과 연민이 일었다.

 

150년이 지났어도 현재의 이야기인듯 시대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각 인물들과 상황의 섬세한 표현, 눈앞에 펼쳐진 듯 생생한 묘사, 읽는 독자를 들었다 놨다하는 돋보이는 구성력, 신선하고 창의적인 문장 표현과 친숙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세련된 필치까지 찰스 디킨스가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의 대문호로 평가받는 세기의 이야기꾼임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마차 추격신은 <픽윅 클럽 여행기>에서 최고의 명장면이라 꼽을 수 있는데 속도감과 흥분은 책을 읽는 누구에게라도 생생하게 전해질 것이다.

마치 눈앞에서 아찔하게 내달리는 기분이 느껴질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57장에 이르는 <픽윅 클럽 여행기>는 길게 문장을 나열한 독특한 제목도 인상적이었고 각 장을 넘기며 어떤 에피소드가 펼쳐질지 설렘과 기대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10장에서 샘 웰러가 등장하면서 부터는 픽윅 클럽 멤버들의 모험담에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했다.

샘 웰러만의 재치있고 엉뚱하면서도 독특한 화법은 보물을 발견하듯 눈에 띌 때마다 밑줄을 그으며 반복해 읽곤 했다.

또한 픽윅과 샘 웰러의 콤비플레이와 브로맨스는 또 다른 재미와 훈훈함을 선사해 주었다.

 

처음에는 픽윅씨에 대한 호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

친절하고 인정 많으며 침착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는 있지만 완고하고 고지식하기에 꼰대기질이 있는 나서기 좋아하는 노인네로 비춰졌다.

후반으로 가면서 특히 플리트 감옥에서 그의 내면의 아름다움이 빛을 바랬는데 소외된 자들에 대한 연민과 진심으로 우러나는 인간애에 뭉클해졌다.

 

유머와 말장난이 가득해서 코믹하고 재미있지만 마냥 가볍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동시대에 산재해 있던 여러 가지 문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플리트 감옥에 수감생활을 보여준 생생한 묘사들은 당시 영국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19세기 중반의 영국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있다면 그 중 하나가 술이다.

책에는 다양한 종류의 술이 등장한다.

맥주와 와인은 기본에 위스키, 브랜디, 전통 음료 등이 수시로 등장해서 책을 읽는 동안 술 생각이 간절해지기도 했다.

이 또한 책 읽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죽음 외에는 갈라놓을 수 없는 픽윅과 샘의 서로에 대한 깊은 신의와 애정!

뭉클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허당끼 가득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픽윅 클럽 회원들.

충실하고 애정 넘치는 하인 샘.

자신이 가진 부보다 더 가치 있는 마음을 가진 젠틀맨 픽윅.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찰스 디킨스의 따스한 시선이 아닐까

그의 소설에는 냉소적 유머가 가득하지만 그 기저에는 디킨스의 휴머니즘이 깔려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빵빵 터지는 재미에 뭉클한 감동까지 선사한 아름답고 반짝반짝 빛나는 매력 넘치는 소설이다.

 

지난 한 달간의 랜선 독서모임으로 독서의지를 다졌고 매주 제시된 미션 참여로 책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에디터분과 오픈채팅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회원들과 생각을 공유한 것도 좋았다.

여행 작가이자 낭독 전문 북튜버 배나영 씨가 책을 읽어 주는 영상도 재미있고 도움이 되었다.

가장 큰 소득은 디킨스 월드에 입성했다는 것과 고전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점이다.

 

고전의 매력!

현대 문학과는 결이 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위트와 유머가 풍부하면서 삶을 통찰하는 깊이가 남다르다.

클래식한 아름다움이 깃든 세계라고 할까.

오래전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만났을 때 다른 관점으로 재구성된 느낌으로 다가와 울림을 주는 것도 고전을 읽게 되는 이유다.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픽윅 클럽 여행기>를 계기로 찰스 디킨스의 작품들을 섭렵하기로 했다.

다음 책은 <두 도시 이야기>.

깊이 읽으며 고전의 맛과 멋을 음미해 보기로 한다.

 

 

 

 

젊은 사람들의 행복은 내 인생의 주된 기쁨이었습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들의 행복을 내 집 지붕 밑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내 마음이 정말 따뜻해질 겁니다.”___p.1248

 

 

이제 우리의 옛 친구를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이 순수한 행복의 순간에 남겨두기로 하자. 이처럼 행복한 순간은 우리가 구한다면 가끔 찾을 수 있고, 이 세상의 덧없는 우리 존재에 기운을 준다 이 땅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하지만 빛은 더욱 강하다. 어떤 사람들은 박쥐나 올빼미처럼 빛보다 어둠 속에서 더 잘 보지만, 우리는 그런 시력을 갖지 못했으므로 이 세상의 짧은 햇빛이 환히 비출 때 우리의 수많은 외로운 시간을 함께 해준 환상속의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보며 작별을 고하는 것이 더 기쁜 일이리라.___p.1252

 

픽윅 씨는 이제 약간 노쇠했으나 여전히 예전처럼 젊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덜위치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거나 날씨 좋은 날 기분 좋게 동네 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는 근처의 모든 가난한 이들에게 유명하고, 이들은 그를 지나칠 때 반드시 크나큰 존경심을 드러내며 모자를 벗어 인사한다. 아이들은 픽윅 씨를 우상으로 여기는데 사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 매년 픽윅 씨는 워들 씨의 집에서 열리는 떠들썩한 대규모 가족 모임에 참석한다. 픽윅씨는 항상 충실한 샘의 보필을 받으며, 둘 사이에는 죽음 외에는 갈라놓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확고한 애정이 있다.___p.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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