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168편 안데르센 동화 국내 최초 완역

디즈니 겨울왕국의 모티브가 된 '눈의 여왕' 수록  ☆

가끔씩 아이의 그림책이 꽂혀 있는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손에서 놓지 않고 즐겨 읽었던 세계 명작 전집 세트!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좋아했던 안데르센의 <엄지공주>,<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 <못난 아기 오리>.

나만의 비밀스런 친구이자 상상력의 근간이 되어준 책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책 속지의 질감, 삽화들이 잊혀지지 않고 고스란히 떠오르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꽤나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최근에 다시 조우하게 된 안데르센 동화!

「안데르센 동화전집」의 책표지로 장식된 에드먼드 뒤락의 <눈의 여왕> 삽화는 주인공 게르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책을 펼치기도 전에 반해버렸다.

168편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원작 동화를 만나게 되어 설레기도 하면서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그동안은 디즈니 만화와 그림책, 동화책의 형태로 각색되어져 원작과는 달라진 이야기들을 접해왔기에 서로 비교해가며 읽어 보려고 일단은 친숙한 동화부터 섭렵하고 처음 접하는 동화를 읽어나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가 알고 있던 안데르센 동화의 전부가 아니어서 놀랐다.

한두 편도 아니고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막강한 두께의 책이지만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흥미진진한 서사들이 반겨 주어서 동화인지 소설인지 모를 정도로 빠져들었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북극광의 드라마틱 하고 신비로운 모습처럼 안데르센의 이야기도 현실을 넘어서 마법의 세계로 진입하는듯했다.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이룰 수 없는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로 만 오랫동안 간직해 왔는데 원작에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물거품이 되어 하늘로 올라 간 인어공주는 삼백 년 동안 착하게 살면 그토록 바라던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각색된 이야기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원작에서는 단 하나의 사랑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과 불멸의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왕자의 사랑과 불멸의 영혼을 얻기 위해 극한의 고통을 참아낸 인어공주의 모습에 측은함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현시대의 사랑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짧은 그림책으로만 봐 왔던 『눈의 여왕』은 카이를 찾기 위한 게르다의 모험과 역경이 치열하게 그려지고 카이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끝없이 희생하는 모습에 경외심마저 일었다.

마치 한 편의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광활한 설원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게르다의 험난한 여정에 함께 했다.

「안데르센 동화전집」을 읽으면서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유명한 동화 외에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새롭게 알게 된 거다.

바람을 타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기도 하고 행운의 덧신을 신고 과거와 우주까지 시간 이동을 하기도 한다. 소원을 들어주는 열매도 등장한다.

<늙은 떡갈나무의 마지막 꿈-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식물들이 솟아오르며 자라는 눈앞에 펼쳐진 환상적인 풍경은 어린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안내하기에 충분하다.

트렁크를 타고 하늘을 나는가 하면 사람의 옛 그림자가 사람이 되어 나타나고 의인화한 인형들이 살아 움직이며 백조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난다.

유독 하늘을 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어릴 적 툇마루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 소환.

어린이의 정서를 고려해 아름답거나 교훈적인 내용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각색된 동화와는 달리 원작은 깊이와 공감의 결이 다르다.

차분하게 읽히지만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는 내용들이다.

시적인 운율이 담긴 문장, 산문 느낌의 동화, 각색한 민담 설화, 창작동화의 여러 편의 글에서 19세기의 생활상, 문화, 전통, 속담까지도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다.

<꼬마 이다의 꽃>에서는 아이의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꼬마 이다는 시들어 죽어가는 꽃들을 안타까워하는데 대학생 아저씨와의 순수하고 상상력 넘치는 대화를 통해 꽃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장례식을 치러준다.

달빛 아래서 열린 아름다운 꽃들의 무도회.

예쁘고 귀여운 한 편의 동화.

읽는 내내 이다의 사랑스러운 표정과 말투가 그려졌다.

<꿈의 요정, 올레 루쾨이에> 는 상상력을 자극하며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스토리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자기 전에 아이와 함께 보면 좋을 재미있는 동화다.

생활 주변의 다양한 소재와(달구, 돼지 저금통, 사과나무 가지, 그림자, 감침 바늘 등) 인물들을( 아이, 소녀, 청년, 노인, 요정, 마법사, 동물 등) 선택한 안데르센의 다채로운 동화들은 많은 작가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소재를 제공하며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멋진 동화는 바로 생활에서 생겨난다고 말한 안데르센의 말대로 그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사물과 동물, 인간들에게서 특별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대단히 멋진 일이다.

「안데르센 동화전집」의 모든 이야기들이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주는 것처럼 환상적이거나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눈앞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탐욕적이고 나약한 인간, 실연의 상처로 죽음을 선택하는 젊은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노부인의 곁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혹독하고 잔인한 벌을 받는 소녀, 죽음을 앞두고 지나 온 삶을 반추하는 노인 등 세상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는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트와 재치가 넘치고 부조리한 사회의 어른들이 보이는 위선과 거짓을 유쾌하게 풍자하기도 한다.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그의 동화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놀라운 안데르센 월드!!!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야기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이 들지 않고 재미있는 건 이야기 속에서 질문을 던지며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꿈의 요정으로, 이웃집 할아버지로 바람이거나 달님이 되어 다정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귀가 솔깃해지고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의인화된 사물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마법을 부리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온갖 신기하고 경이로운 일들이 상상을 뛰어넘어 펼쳐진다.

잔인한 장면들에 매몰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읽는 동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맺는 이야기보다는 의외의 결말로서 고정관념을 깨거나 반전이 있는 동화들이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세대를 초월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재미있어 웃다가 어느 순간엔 화가 났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섬뜩하고 무섭기도 했고 두려운 감정도 들었다.

물론 한편의 이야기 구성이 완전하지 않고 허술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두루뭉술 표현되어 어색한 문장도 있다. 평범한 왕자가 갑자기 요술 단지를 만드는 등 뜬금없이 마법이 등장하는 과장된 이야기도 있다.

놀랍고 경악스러웠던 부분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거침없이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인어공주>, <빨간 신>, <부싯깃통>,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꾸리 클라우스>등 여러 이야기에서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다.

세상의 어둡고 추한 단면까지도 필터링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에게 읽어줘야 할지 말지 잠시 고민하게 되는 순간.

안데르센의 상상력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평생 여행을 즐겼던 안데르센은 동화 속에도 이집트, 아프리카, 그리스 등 세계 여러 나라가 등장하고 그를 배경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린다.

그만의 시선으로 담아낸 세상의 온갖 진귀한 풍경과 이야기들을 바라보며 약간은 가슴이 벅차오르고 여행을 하는 듯 설레고 흥미로웠다.

상상력의 원천은 모든 사물과 자연, 동물들, 일상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과 풍부한 여행 경험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때로는 이상하고 엉뚱하며, 순수하고 두렵기도 한 마법 같은 아스라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동화.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뿐만 아니라 처음 접하는 친숙하지 않은 이야기들조차 단숨에 빠져드는 매력을 가졌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인해 재미와 감동은 배가 되고 섬세한 문장 묘사와 아름다울 만큼 서정적인 표현들이 안데르센의 동화에 흠뻑 취하게 된다.

인상 깊었던 동화는 <할머니>, <후추 총각의 나이트캡>으로 삶과 죽음, 나이 듦에 관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사실 마음에 드는 동화가 한두 편이 아니라 모두 열거하기 난감할 정도)

주인공들에게 연민이 느껴지면서 나 또한 그들과 다름없이 나이 들고 언젠가는 삶을 마무리 지어야 할 순간과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나에게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하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은 이왕이면 양장본 형태로 만들어서 소장하기 좋은 판본으로 만들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당한 분량의 무게를 감당하려면 표지가 좀 더 두꺼워서 안정감이 있으면 좋겠다.

앞부분에서 오타가 여러 곳 발견된 것은 옥에 티.

책장을 덮을 때 즈음, 안데르센 동화가 왜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느꼈던 즐거움과 재미가 성인이 되어 새롭게 만나게 된 동화에서는 실연과 상처, 죽음, 배신 등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인생의 면면들을 마주하며 씁쓸함을 맛보게 되지만 안데르센의 삶을 바라보는 지극히 따스한 시선과 연민의 마음이 살포시 느껴져서 유독 슬픈 결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슬프지만은 않고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즐겁고 신나는 아이만을 위한 동화이기보다는 다소 묵직한 주제를 다룬 어른을 위한 철학동화에 더 가까운 안데르센 동화.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안데르센이라는 불멸의 작가 이전에 인간다운 모습을 만났던 시간이었다.

168편 중에 손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골라 읽어도 재미있겠다.

어른도 아이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고전!

원작을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스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매력적인 필력과 한스 테그너의 클래식한 아름다운 일러스트 64점이 만난 「안데르센 동화전집 」한 권으로 아이와 함께 따뜻하고 행복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멋진 동화는 바로 생활에서 생겨나거든. 그렇지 않다면 찻주전자에서 딱총나무가 자라지 못했을걸.

<딱총나무 엄마> p.303



게르다가 가진 힘이 그 어떤 힘보다도 더 크니까. 그 힘은 게르다의 가슴속에 있단다. 맑고 순수한 마음속에 말야.


<눈의 여왕> p.293




"너희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을 보았어요. 사실 누구나 봐 둬야 하는 것이기도 했지요. 그곳에서 본 세상은 정말이지 형편없고 엉망이었어요. 사람이 특별한 존재만 아니라면 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모와 비길 데 없이 사랑스런 아이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슬프고 불행한 광경을 보았지요. 사람들이 무척 알고 싶어 하지만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을 보았어요. 바로 그들 이웃이 저지르는 나쁜 짓들 말예요. 그런 글을 신문에 썼다면 잘 읽혔을 거예요. 하지만 난 신문에 싣는 대신 그 사람에게 직접 글을 썼지요. 그러자 내가 가는 곳마다 비상이 걸렸어요. 그들은 날 매우 두려워했지만 끔찍이 사랑해 주었지요. 교수는 날 교수로 만들어 주었고, 양복장이는 새 옷을 주었으며, 조폐 국장은 돈을 주었어요. 난 그런 식으로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갖게 되었지요. 여자들은 내가 아주 잘 생겼다고 말하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난 이렇게 멋진 남자가 되었어요.


<그림자> p.379~380



"오늘 밤에 네 영혼에 심은 씨앗은 세월이 지나 자라면 아름다운 시로 꽃피우게 될 거야.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전설이나 노래 속에 살아 있게 된단다."


<오래된 묘비> p.423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부적> p.592




그는 이불을 바짝 당겨 잘 여미고 나이트캡을 눈 아래로 내려 쓴 다음 장사에 대한 생각이나 하루의 피곤함이나 옛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옛 추억들이 과거를 가로막고 있던 커튼을 젖히고 나와 고통스런 기억들로 가슴을 찔렀기 때문에 편히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눈물이 쏟아져 나와 잠이 달아나 버리곤 하였다. 어떤 때에는 진주 같은 뜨거운 눈물 방울이 이불 위에 떨어지기도 하고 마음이 찢어지는 듯이 신음을 하며 바닥에서 구르기도 했다. 또 어떤 때에는 옛 기억이 불꽃처럼 환하게 타올라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비추곤 하였다. 나이트캡으로 눈물을 닦으면 눈물과 삶의 모습이 뭉개지곤 하였지만 눈물의 원천은 아직 가슴속에 남아 다시 차오르곤 하였다. 삶의 모습들은 현실에서처럼 차례차례 순서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스런 모습들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가장 즐거운 삶의 모습이 나타날 때면 그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곤 했다.

<후추 총각의 나이트캡> p.568~569



본 도서는 현대지성 출판사로부터 '고전 읽는 계절 서평단'자격으로 무상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