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뒤쫓는 소년 창비청소년문고 30
설흔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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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찾아, 책을!"

 

 

 

책의 의미를 찾아 떠난 기이한 여행
기담 속에 담긴 책의 문화사

 

 

 

 

 

을 읽는 동안 쉴 새 없이 일어나는 궁금증과 미스터리하고 판타지적인 이야기 전개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뭐가 이렇게 황당하고 괴이하면서 흥미진진할까?
세상에서 사라지거나 갇혀 있을 책을 구해내는 긴박하고 스릴 넘치는 모험 이야기일수도 있고 책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다소 묵직한 주제 의식이 담긴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만화로 표현된 단 두 장의 프롤로그에서 <책을 뒤쫓는 소년>의 기이하고 신묘한 이야기의 서막이 시작된다
어느 날 군밤장수가 영업을 그만두게 되었다며 군밤 봉투를 사달라고 헌 책방을 찾는다
군밤도 아니고 군밤 봉투를...
봉투에 적힌 한자를 보고 예사롭지 않은 글자라 여긴 책방 주인은 봉투를 사들여 원래 형태로 복원하게 되는데 군밤 봉투를 순서대로 엮자 옛이야기가 담긴 책 한 권이 만들어진다
『책을 씨와 섭구 씨의 기이한 책 여행』이라는 책이었다
사실 갓을 쓴 미소년이 담긴 예쁜 책표지만 보고서는 기이하고 신묘한 상황들이 가득 펼쳐지는 이야기 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국이라는 나라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로 여겨진다
어느 날 갑자기 제국의 포도청 관원인 까마귀들이 들이닥쳐 주인공 책을 씨에게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를 잡아간다
그리고 그 앞에 갑자기 나타난 진한 감귤 향이 나는 의문의 소녀 섭구 씨!
시들어 가는 제국을 구원할 책을 써야 한다며 재촉하는 섭구 씨를 따라 책을 씨는 생각지도 못한 책 여행길에 따라나선다
섭구 씨가 냄새를 맡고 심상치 않은 냄새를 좇아가는 마을마다 수상한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책을 찾기 위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책을 찾아, 책을!"

책을 읽는 내내 '책을 씨'가 된 것처럼 섭구 씨가 하는 말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여러 궁금증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전개되는 상황들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해 답답했고 호기심 천국이 내 머릿속에 통째로 들어와 버린 듯한 착각이 일었다
괴이하고 끔찍해 보였던 새끼손가락들, 입구와 출구를 찾을 수 없어 몇 시간 동안 골목길을 헤맸던 호동 지구, 소설을 겹쳐 읽는 남자, 하늘을 날아다니는 책들은 옛이야기인 듯 아닌 듯, 시공간과 장르를 뛰어넘어 펼쳐지는 이야기는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바로 눈앞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듯 생동감 있고 사실적으로 머릿속에 장면 하나하나가 그려졌다
무더운 여름밤 읽는 재미에 폭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다
특히나 열일곱살 소녀 섭구 씨의 매력은 이 책을 읽게 만드는 특별한 존재감으로 와닿는다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하고 의문이 끊임없이 일었던 건 섭구 씨의 정체였다
책을 씨의 질문에 알쏭달쏭 한 답변들만 내놓는가 하면 손목에 책을 보관하는 황당하고 기이한 설정들이 신선하고 새로웠다
당차고 논리 정연하고 냉철한 섭구 씨와는 반대로 할 말 못 하고 체면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전형적인 양반 도령 책을 씨!
그런데도 호흡은 척척 맞는 환상 커플이었다는게 아이러니하면서도 매력있었다
나약하고 철없던 책을 씨가 책을 찾고 쓰는 과정을 통해 용기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은 감동을 전해준다
첫 번째 책보다 훨씬 더 힘들게 쓰게 될지도 모를 두 번째 책을 기대하고 응원하게 만들었다

설흔 작가의 전작인 역사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책을 뒤쫓는 소년>은 책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모티프로 흥미롭게 서사를 펼쳐 보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를 끌어와 색다른 즐거움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여섯 마을에서 여섯 권의 책을 찾으며 기이한 사건들과 마주치면서 독자로 하여금 책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하게 만든다
주인공들의 책을 찾는 여정을 통해 책이란 무엇인지, 책을 왜 읽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묻고 답하게 한다
<책을 쫓는 소년>에서 책을 찾는다는 것은 책을 쓰는 것이고 그것은 온몸으로 세상 일을 경험한 것이 된다
글 자체가 아닌 행동과 경험!
우리는 어떤 책을 읽고 쓰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사람마다 각기 다양한 경험과 생각으로 채워지는 삶들은 작가를 통해 고스란히 책에 담기게 된다
책을 읽는 행위는 결국 책 속 내용을 우리가 온몸으로 경험하고 체화시킬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하고 그것은 다시 책으로 완성되어지는... 인생 자체가 곧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지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그와 연관된 책의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를 살펴볼 수 있다
열린 마음을 갖고 시대의 의식있는 사람으로 평가되는 박지원이나 이덕무 조차도 난설헌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작품을 비난했다는 사실은 매우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전통적인 관습이란 게 한 사람의 가치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새삼 되짚어보게 된다
제국이 사랑하는 토목 공사의 힘은 자연의 풍경마저 질서 있게 바꾸어 놓았다는 문장과 아버지의 강압적인 교육으로 아들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일화, 여성의 인권이 무시당하고 처참히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 현대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야기되는 문제점들이
역사 속 사실과 다르지 않기에 저자가 보여주려는 문제의식과 마주하게 된다
책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내용을 공유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지식과 감동을 주는 순기능도 있지만 왜곡된 진실을 전하거나 잘못된 사상을 주입해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기에 책의 영향력에 대해 보다 주의깊고 면밀한 사고가 필요함을 느낀다

짧은 단편을 모아 구성된 방식은 지루하지 않고 속도감 있게 읽어 나갈 수 있었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전우치전이나 박씨부인전 등 옛 고전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해리 포터가 떠오르게 하는 기발하고 신묘하고 상상력 넘치는 재치와 재미가 가득 담긴 소설이다
설흔 작가의 탁월한 묘사력과 오싹한 느낌이 나는 삽화들은  무더운 날씨도 개의치 않고 몰입해서 책을 읽게 만든다
재미와 감동적인 요소들이 많아 한 편의 판타지 시대극으로 만들어도 재미있을것 같아 영화 제작자분들이 관심을 갖고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가벼운 기담 소설로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지만 우리 주위에 흔하게 머물고 있는 책에 대해, 책읽기에 대해 좀 더 진중하게 생각할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청소년 문학이지만 성인 문학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무게감도 있고 재미와 감동도 선사하는 소설이다
설흔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내 책은 붓이 아닌 몸으로 쓰는 책이고, 섭구 씨는 내 책을 보따리가 아닌 손목에, 그것도 책의 이름으로만 보관하고 잇으니까. 그 책을 꺼내 읽을 수 잇는 건 오직 섭구 씨뿐이니까. ---163p

 

 

 

--- "제국의 입장에선 쓰레기지요. 제국이 직면한 문제들을 무서울 정도로 솔직하게 기록햇으니, 아주 위험한 쓰레기지요. 제국의 토대를 흔들 수 있는 전염성 강한 쓰레기지요. 하지만 저로서는 당신의 어설픈 기대를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네요. 떠들썩한 말과는 달리 모든이를 골고루 돌보는 데 실패한 제국을 비판하는 시를 보내고도 제국의 공식 시인이 되리라고 기대했단 말인가요?" ---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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