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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날 밤 차 안의 그 여자, 그때는 살아 있었을지도 몰라."
마지막 50페이지를 향해 달려가는 고속질주 스릴러
범인은 누구일까?
<브레이크 다운> 소설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나가며 흥미롭게 책장을 넘겼는데 스릴러 소설이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주인공 캐시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쫀쫀한 긴장감과 공포감이 유지되었던 가스라이팅 심리 스릴러!
워낙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영화나 소설은 수시로 떠오르는 잔상으로 인한 두려움을 만들어 내기에 그동안은 철저히 배제해 왔는데 얼마 전에 읽은 세 권의 스릴러 소설로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장르 소설에 입문하게 되었다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묘한 쾌감을 준다고나 할까?
앞으로 이어질 무더운 여름 날씨에 독서하기 딱 좋은 소설이다
캐시 주변의 모든 인물들을 한 명씩 관찰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분명 주인공을 포함해 주변 인물 중 한 명일 테니.
누구든 믿지 말고 확신하지 말라 하지 않았던가.
한 치 앞도 가릴 수 없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밤, 캐시는 동료 교사들과의 모임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름길인 블랙워터 숲길을 선택해 달린다
폭우 속에 갓길에 정차된 차를 발견하고 그 안에 타고 있는 어떤 여자와 마주친다
도움을 필요로 할까 싶어 잠깐 정차하고 기다리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자 내릴까 말까 갈등하던 캐시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그냥 집으로 출발한다
다음 날, 숲길에서 보았던 차 속의 여자가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뉴스를 보게 된 캐시는 그날 이후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상생활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차 속에 있던 여자는 다름 아닌 캐시가 새로 사귄 친구 제인이었던 것이다
캐시는 자신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움을 주었더라면 제인이 살아 있을 거라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죄책감으로부터 파생된 두려움과 공포는 말없이 걸려오는 수상한 전화를 자신을 알고 있는 범인이 걸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고 조기 치매를 앓았던 엄마를 떠올리며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캐시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나 자신도 그녀로 빙의된 듯 점점 빠르게 진행되는 기억력 감퇴가 공포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어느 일정 순간에 한 일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하는 캐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은 더더욱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이 냉혹하리만큼 잔인하게 가슴을 후벼판다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주위로부터 소외되어 어둠속에 갇혀버린 그녀가 가여웠다
히스테릭하게 변해가는 캐시... 그녀가 느끼는 공포, 두려움, 절망, 무기력함이 온전히 나에게 전해지며 모든 상황들이 답답하게 여겨졌고 짜증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왜 경찰이나 친구, 남편에게 솔직하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걸까? 도덕적 비난이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의 공포와 두려움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이란말인가?
계속 침묵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져가는 캐시가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했다
혹시 그녀가 사건의 목격자이면서 범인인것은 아닐지 온갖 추측이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조발성 치매일지도 모른다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을 받고 약까지 처방 받아 먹으며 점점 더 무기력해져가는 캐시.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기에 그녀는 더욱 빠르게 허물어진다
솔직히 중반까지는 살인사건 보다 캐시의 건망증으로 인해 연속적으로 야기되는 일상의 여러 사소한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서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캐시에 대한 답답한 행동으로 짜증이 극에 치달을 무렵 우연한 계기에 극적으로 상황이 전환되며 후반부의 반전에 반전을 더한 거침없는 질주가 시작된다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다음 전개될 상황들이 너무 궁금해졌다
섬세하게 이어지던 캐시의 심리 묘사와 끊임없이 반복되며 나열되던 일상들 속에 마지막 반전을 위해 저자가 치밀하고 촘촘하게 설치해 두었던 복선들이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의 탁월한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전말이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서 밝혀지며 맞닥뜨려졌던 당혹감이란...
하나하나 밝혀질수록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배신과 악랄함, 교활함에 격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모든 상황들이 전환되면서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브레이크 다운>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첫 장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운 탐욕의 실체 앞에 왠지 모를 역겨움이 일어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그리고 선택의 딜레마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심리 스릴러 소설이었다
인간이기에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그걸 교묘하게 이용하려 드는 것도 인간이라는 사실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인간애로 가득한 세상을 원하지만 마음 같지 않은 현실이기에 마음 한 켠이 묵지근해 진다
삶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선택의 연속이다
이걸 선택할 수도 저걸 선택할 수도 있는데 그 선택의 책임은 오로지 본인 스스로에게 주어진다
선택에 따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우면서도 두렵기도 한 부분이다
<브레이크 다운>은 스릴러 소설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그 매력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소설이라 여겨진다
박진감은 조금 덜했지만 주인공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마주하면서 아드레날린이 제대로 분비된다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성과 잔인함이 드러나지 않고도 영화를 보는듯 심리를 파고드는 문장 하나 하나가 이미지화 되어 인물들의 서스펜스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점도 박수쳐 주고 싶다
한동안 맹렬히 진행해 왔던 책 읽기가 무더운 여름 날씨로 주춤거리는 요즘 새로운 활력과 즐거움을 가져다준 소설!
특히 비 오는 밤에 맥주 한 잔과 함께 읽으면 더할 나위 없는 꿀잼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올여름의 무더위는 스릴러 소설과 함께 시원하고 짜릿하게~
P.A. 패리스의 전작인 『비하인드 도어』 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