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양장) - 개정증보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새움 / 알베르 카뮈 / 이정서 옮김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그 손쉬운 일(jeu)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선고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정당방위로서의 첫 발과 위장된 도덕, 종교, 권위,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

 이십 대 초반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방인>을 읽은 지 오래되어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확실하게 떠오르는 건 별로 없지만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인식되어 기억하고 있는 문장이 있다
재판장이 주인공 뫼르소에게 아랍인을 권총으로 쏜 이유를 묻자 '태양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었다"라고 대답한 문장이다
사람을 죽였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태양 때문이었다니... 정신 감정을 받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왜 유독 이 부분이 뇌리에 남아있는지 의아했었는데 다시 만난 <이방인>을 읽고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처음 <이방인>을 읽을 당시에 내가 어느 정도 이해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월의 간극이 너무 크기에.
세대와 시공간을 초월해 감동적으로 읽히는 세계 고전 문학을 접할 때마다 난해해서 잘 읽히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 나의 빈곤한 문학적 감수성과 지적 수준을 탓하기만 했다
번역의 문제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다양한 세상 경험들이 쌓이고 책을 읽어 오면서 번역 작품들을 대하는 나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소설은 번역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인물과 전체적인 서사의 느낌이 매우 다르게 와닿는다
솔직히 영어나 다른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기에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번역 그대로를 믿고 작품의 세계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꽤 유명한 작가의 인기 있는 소설이라 해서 읽었더니 내용이 이해되지 않고 재미도 없는 경우를 맞닥뜨리게도 된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번역과의 연관성이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 만난 <이방인>은 역자 노트를 통해 번역에 따라 원작의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번역문이 백 프로 원문을 담아내진 못한다 해도 저자의 문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 한 줄 한 줄 알베르 카뮈의 독창적인 사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
모친 사망이라는 전보 한 통을 받은 후 감정의 동요 없이 무덤덤하게 치른 장례식과 마리와의 만남, 레몽과 아랍인들 그리고 우발적 살인, 재판, 사형선고를 받기까지 뫼르소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이 냉소적이고 이기적이라고 느낄 만큼 자기감정 표현이 없었던 뫼르소.
그의 심리에 보다 밀착해서 다가간다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았다
아니 총을 쏜 이유는 '햇빛에 반사되어 눈을 찌르는 위협적인 칼날' 때문이었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저항감과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저자의 번역을 통해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몸뚱이에 네 발을 더 쏘아 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 버렸다. 그것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같은 것이었다 "

 

이렇게 전율이 느껴지는 문장을 처음 이방인을 읽었을 때도 발견했었던가 질문을 던져본다
자기방어 기재로 당겨졌던 방아쇠... 그의 살인은 정당방위로서 배심원들이 참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 채 엄마의 죽음을 일반적인 슬픔으로 표현하지 않고 무심했다는 이유로 공공의 적이 된다
뫼르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사람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됐다
한 인간을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의 관습과 편견, 부조리한 판단력과 선입견 앞에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짓밟히고 존재 이유가 거세될 수 있다는데 분노의 감정이 일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과 판단으로 뫼르소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장례식 내내 한 번도 울지 않았으며, 담배를 피웠고 잠을 조금 잤고 카페오레를 마셨다는 이유로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만들며 죽음으로 내 몬다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변두리로 내몰고 소외시키는 세태.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정작 누구를 위한 관계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람과의 소통과 관계에서 부조리함이 일어나고 좌절하고 고독을 느끼며 온전히 나로서 이해되지 않는 현대인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가 외따로이 세상을 걷도는 이방인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온갖 파렴치한 권위와 이기심과 부조리함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뫼르소...
그것들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지기 위해 선택한 죽음.
정직하고 철저히 이성적이었던 그에게 자유를 위한 탈출구는 죽음뿐이었다
뫼르소의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이 전달된다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녀가 왜 삶의 끝에서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왜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도, 역시, 삶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그 양로원에서도, 저녁은 쓸쓸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죽음에 인접해서야,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음에 틀림없었다. 누구도,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에 울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167p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섬세하고 정교한 번역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방인



새움 출판사의 『이방인』 개정증보판에는 이정서의 보강된 역자 노트와 <이방인> 불·영·한 비교 분석의 글, 카뮈의 연보도 수록했는데 카뮈 작품의 제대로 된 번역을 위한 저자만의 열정과 노력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노란 띠지에 적힌 문구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럼 내가 읽었던 이방인은 뭐지? 약간의 의혹과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읽는 고전이지만 처음부터 새로 읽어야 했기에 기존의 정형화된 의식에서 벗어나 카뮈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만의 사유와 가치들을 하나하나 재발견해 가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기존 번역의 오류를 걷어내며 카뮈가 문장 곳곳에 숨겨 놓은 소설적 장치들을 발견하게 되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줄기차게 던지는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방인에 대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놓쳤던 의미 있는 포인트들을 짚어내며 다른 시각으로 읽게 되었다
기존에 다른 번역서로 읽었던 독자들에게 원작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려는 이정서의 섬세하고 정교한 번역으로 카뮈의 이방인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고전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해 보며 추천해 본다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짚어내고 원문에 충실한 번역서! 그것이 좋은 번역서이고 그 좋은 번역서를 찾아 읽는 것은 독자들의 권리면서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잘 읽히고 안 읽히고를 떠나서 번역 소설은 일단은 원문에 가장 가깝게 해석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물과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 적용할 수 있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인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제2의 창작이 실현된다고 믿는다
나에게는 좋은 번역이란 평이하고 쉽게 읽히는 글보다는 소설적 긴장감을 유지한 채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고 작품 속으로 계속 이끌어 공감하게 되는 글이다
번역이란 무엇일까? 기존 글의 새로운 창작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원문에 가장 충실한... 작가가 글을 통해 보여 주려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주고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의 오류를 걷어내며 원문에 가장 가깝게 다시 태어난 소설  『이방인』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내포하고 있지만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한 번에 읽어내려갈 수 있다
이런 소설이었구나! 가슴이 벅차오른다
온전히 작품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뫼르소라는 인물이 무의식적으로 자행한 행동에 대해, 전체의 이야기속에서 보여지던 이해되지 않았던 인물들의 모습과 심리를 역자 노트를 통해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니 알베르 카뮈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의 문학과 삶에 대한 깊이있는 사유에 대해...
쉼표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섬세한 번역으로 만들어진 다른 위대한 고전 문학 작품들도 맛보고 싶어진다


"번역에 답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떠한 문장이고 작가는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썼고, 번역은 그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들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역자 노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