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초반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방인>을 읽은 지 오래되어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확실하게 떠오르는 건 별로 없지만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인식되어 기억하고 있는 문장이 있다
재판장이
주인공 뫼르소에게 아랍인을 권총으로 쏜 이유를 묻자 '태양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었다"라고 대답한
문장이다
사람을 죽였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태양 때문이었다니... 정신 감정을 받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왜 유독 이 부분이 뇌리에 남아있는지 의아했었는데 다시 만난 <이방인>을
읽고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처음 <이방인>을 읽을 당시에 내가
어느 정도 이해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세월의 간극이 너무 크기에.
세대와 시공간을
초월해 감동적으로 읽히는 세계 고전 문학을 접할 때마다 난해해서 잘 읽히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다른 이유는
차치하고 나의 빈곤한 문학적 감수성과 지적 수준을 탓하기만 했다
번역의 문제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다양한 세상 경험들이 쌓이고 책을 읽어 오면서 번역 작품들을 대하는 나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소설은 번역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인물과 전체적인 서사의 느낌이 매우 다르게
와닿는다
솔직히 영어나 다른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기에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번역 그대로를 믿고 작품의 세계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꽤 유명한 작가의 인기 있는 소설이라 해서 읽었더니 내용이 이해되지 않고
재미도 없는 경우를 맞닥뜨리게도 된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번역과의 연관성이 적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 만난 <이방인>은 역자 노트를 통해 번역에 따라 원작의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번역문이 백 프로 원문을 담아내진 못한다 해도 저자의 문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 한 줄 한 줄 알베르 카뮈의 독창적인 사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
모친 사망이라는
전보 한 통을 받은 후 감정의 동요 없이 무덤덤하게 치른 장례식과 마리와의 만남, 레몽과 아랍인들
그리고 우발적 살인, 재판, 사형선고를 받기까지 뫼르소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이 냉소적이고
이기적이라고 느낄 만큼 자기감정 표현이 없었던 뫼르소.
그의 심리에 보다 밀착해서
다가간다
태양 때문에 총을 쏘았다
아니 총을 쏜 이유는 '햇빛에 반사되어
눈을 찌르는 위협적인 칼날' 때문이었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저항감과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저자의 번역을 통해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