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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스위스의 초호화 호텔에 머물것을 제안하는 편지를 받는다면?

 

주인공 크리스티네는 오스트리아의 보잘것 없는 작은 마을의 클라인 라이플링 우체국에서 일한다. 28살 꽃다운 나이. 젊음과 열정으로 부풀어 있을 때이지만 그녀에게는 딴 세상의 일이다. 1차전쟁직후 황폐해진 나라 곳곳에 무시무시한 가난이 사람들 삶속으로 스며들었다. 

현실에 채념한 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우체국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전보가 날아온다. 그녀의 이모가 스위스 엥가딘의 호화 호텔에서 휴가를 보낼 것을 제안하는 편지였다. 난생 처음 맞는 휴가에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스위스로 떠나는 기차를 타고 엥가딘에 도착했지만 으리으리하고 호화찬란한 내부에 기가 죽어 빨리 방으로가 숨고싶은 마음 뿐이다. 그녀의 이모인 반 볼렌 부인은 그녀를 데리고 최고급 상점들과 샵들을 돌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며준다.  찰랑찰랑 물결처럼 몸아래로 착 떨어지는 실크드레스를 입고 변신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자신도,호텔의 모든 사람들이 반한다.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에 점차 자신감을 갖게 되고, 단 몇시간만에 생기있어진 얼굴과 발랄한 말과 행동들에 자신도 놀란다. 주변의 멋진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매력있고 인기있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화려한 상류층의 신세계에 적응할수록 자신이 이제껏 비참한 삶을 살았음을 생각하게 된다. 온통 새로운 경험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녀의 인기를 시샘한 소녀가 악의적인 소문을 내고, 이모는 자신의 명성에 흠이 될 것을 우려해 그녀를 쫓아내듯이 그 끔찍한 집으로 다시 보낸다. 

 파티 초대장, 드레스, 아름다운 변신은 나 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본능적인 흥미와 관심을 끈다.
크리스티네라는 여성이 가장 밑바닥에서  최고 상류층의 삶으로 들어간(비록 열흘 뿐이지만) 소재는 동화나 드라마의 아주 뻔한 소재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속 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여성의 심리는 어떤 다큐보다도 현실적이고 실감이 난다. 
 

머릿속은 마취상태에 있는 환자가 살을 파고드는 외과의사의 칼을 어렴풋이 느끼며 체험하는 둔통처럼, 깊은 곳에서 둔탁하게 박동하는 고통을 느꼈다. 분출구에 없이 몸 안에 갇혀 부글부글 끓는 무력한 분노, 끝없이 솓구치는 분노였다.그녀의 삶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같은 삶이었다.p41,p249

맨 꼭대기의 삶에서 다시 내려왔을 때 느끼는 비참함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어제까지만 해도 호의적이던 사람들의 눈빛이 적대적으로 변하고,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는 여자와 엮이기를 두려워한다. 게다가 작가 표현대로 다시 가난이 기어나와 우묵한 눈으로 주둥이를 크게 벌려 삼키러 오고 있었다.

환상속 마법같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비록 동화적인 이야기와 아름다운 변신이 눈을 사로잡지만 그 뒤의 내용은 무섭도록 현실적이다.  크리스티네가 느끼던 호텔 방 안의 고요한 적막함도 중압감으로 변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삶의 차이다. 부와 가난. 말 그대로 삶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대비된다. 크리스티네는 어머니의 유품을 서로 챙기려고 눈치를 보는 가족들을 보고 탄식어린 비참함을 어쩔 줄 모른다. 
 

얼마나 참혹하게 가난한 사람들인가. 저 사람들은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어. 저들이 달라붙어 나누는 물건들은 전부 쓰레기인데....저들은 세상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는 한 걸까? 차리리 모르는 편이 나을 거야.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얼마나 지독하고 비참하게 살고있는지!"p267
이미 부족함 없는 상류사회의 삶을 맛 본 후 그녀는 예전과 달라졌다. 일상조차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어디엔가 다른 세상이 있는데 왜 여기서 숨을 쉬어야 하나.

한쪽은 가난하고 지친삶이 있다면, 다른 쪽은 넉넉하고 부요한 삶이 존재한다.
당연한 논리인 건 어쩔 수 없다. 그 차이를 줄이는 것은 전 세계가 직면한 과제이다. 가난에 처한 본인의 과제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일차대전을 겪으면서 3세대가 이룬 재산이 하루아침에 종이쪼가리가 되버린 시대이다.  우연히 만나게 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페르디난트는 자신의 꿈을 펼쳐보려 하지만 전쟁 중 다친 손가락 부상때문에 좌절한다, 전쟁이 그의 젊은 6년의 세월과 건강, 미래를 송두리째 밟아버린 것이다. 국가에서는 보상을 거절했다. 둘은 서로의 분노와 처지를 이해하며 위로하지만 역시 또 돈이 서로를 지치게 한다. 둘만을 위한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공간이 없어서 추운 거리를 걷는 장면은 매우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크리스티네, 나는 새삼 깨달았어. 돈 없이 하루를 사는 것보다 돈을 가지고 십 년을 사는 것이 훨씬 쉽다는 사실을.p438
 마지막에 둘은 우체국의 돈에서 희망을 찾고 자살결심을 바꿔 탈취계획을 세운다. 무거운 범죄라기 보다 삶에 대한 마지막 발악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연민과 동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성공해서 멀리 떠나 다른삶을 시작하길 바랬다.
 

가난의 무게 눌리는 삶이 어떻게 분노를 양상하는지 이해하게 되는 계기였다. 
나는 무엇보다 그녀의 이모에게 가장 화가났다. 자신의 딸이었다면 그런식으로 밖에 할 수 없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결국 조카의 잠깐의 행복보다 내 명예의 작은 흠집이 더 중요했던 것일까? 사람은 돈과 물질 앞에서, 그것이 많든 적든간에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일까? 자신의 이기와 안위 위주로 행동하는 이모에게 화가났지만 결국 그게 세상사람들이고 또한 나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는 고된 삶과 상처받고 힘든 심정이 주를 이루지만 읽는 내내 어두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치열한 삶과 크리스티네의 심리묘사가 매우 탁월하고 생생하기 때문인 것같다. 호텔에서의 화려한 생활의 흥분과 황홀한 감정,스위스 알프스와 엥가딘의 자연의 아름다운 표현력도 한 몫한 것같다. 또한 전개가 지루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세계고전의 느낌이 들었다.

작가 슈태판 츠바이크는 역시 일차대전을 겪고 여러나라를 전전하며 글을 썼다. 전쟁이 재산을 빼앗고 모국어로 글을 쓰지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전쟁과 전쟁이 빼앗아간 것들에 대한 페르디난트의 울분은 작가의 울분이기도 하다. 우울증을 겪고 자살결심을 할 정도로 힘든상황에서 이 소설에 대한 애착을 놓지않고 다듬어갔다.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크리스티네는 변신에 도취하고  좌절하고 그리고 다시한번 변신을 꾀하려 하고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더 높은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에 도취하고 자극 받을 것이다. 여전히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변하지않은 우리 사회의 욕망과 고통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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