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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73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머리가 엄청 좋은 사람인가 보다. 오렌지 상도 타고 속칭 천재 상인 맥아서 펠로로도 뽑혔다. 존스 홉킨스와 예일에서도 석사 하고....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 타임스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솔직히 읽기도 전에 음메 기 죽어, 하는 심정이 된다.
혹시 소수민족 쿼터에 운 좋게 뽑힌(?) 덕에 잘나가는 케이스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소설을 읽어보니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처음에는 살짝 지루했다. 그냥 꿈 많고 똑똑한 나이지리아 소녀 이야기, 남자 친구 나오고, 첫경험 이야기 나오고...
군사독재 정권하의 나이지리아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예전에 우리가 어렵게 떠나왔지만 곧 다시 돌아가게 될 그 어떤 나라가 떠오른다.
특히 장군의 정부 노릇을 하는 주인공의 고모가 속 터진다. 고모는 장군 덕에 좋은 집에서 공주처럼 살지만 수중에 돈 한 푼도 없다. 그래도 미용실에서 특별 대접을 받고 나와서는 좋다고 깔깔 웃으며 한마디 한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첨의 경제 속에서 살고 있어.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부패가 아니야. 문제는 수많은 인재들이 아무에게도 아첨하려 하지 않거나, 누구한테 아첨해야 할지를 모르거나, 아니면 아예 아첨하는 방법 자체를 몰라서 마땅히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다는 거지." 뭐시라!
나중에 고모는 장군의 아들을 낳지만 장군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맨몸으로 미국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된다. 머리가 좋아서 미국 의사 자격증을 따는 데 성공하고도 자꾸 자신을 보호해 줄 남자를 찾아다니는데, 급기야는 고향이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베충처럼 키배로 날을 지새는 찌질남에게까지 잘 보이려 애를 쓴다. 정말 지 팔자 지가 꼰다.
주인공 소녀가 미국으로 옮겨와 온갖 사람을 만나 부딪히고 쓰디쓴 인종차별을 맛보게 되면서 점차 재미있어진다. 미국이 다민종 국가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차별하는 사람, 차별당하는 사람도 정말 다양하고, 차별의 방향, 정도, 지점 등에서 정말 짜증날 정도로 다양하더만... 심지어 여기에 정치, 경제, 계층, 성별, 민족, 이민 등의 갈등까지 더해지면... 근데 작가는 그 차별의 경험들을 결(?) 하나하나를 구분하고 뉘앙스까지 살려서 잘 표현했다. 표지에 사회적 상호 작용 속의 뉘앙스를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을 가진 작가, 라는 카피가 있어서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했는데, 이런 점을 표현한 말인가 보다.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인종차별처럼 충격적인 경험을 겪고 나면 사람들은 대개 감정적으로 울분, 분노를 터뜨리게 되지 않나? 상징적인 사건을 하나 짚어서 상대편 사람들을 싸잡아 적으로 몰거나, 아니면 자기 상처에 코 박고 누워서 영영 안 일어나거나...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런 게 없다. 나는 조금만 갈등이 있어도 머리가 하얘지는 스타일이라 너무 부럽다.
이건 인종차별하곤 상관없지만 예전에 내가 알던 누구를 생각나게 해서 적어 본다.
이페멜루는 그토록 외모도 닮고, 불행한 것까지도 닮은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킴벌리의 불행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내적인 것이었고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되길 바라는 그녀의 욕망과 희망에 가려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믿었다. 그래야 자신도 언젠가는 행복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로라의 불행은 그와 달리 가시가 돋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영원히 불행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도 모두 불행하길 바랐다.
2권도 빨리 읽고 싶다.
번역도 매끄럽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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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쪽 9째 줄
오빈제는 종종 그녀가 샴페인을 마시고 트림는 중이라고 상상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