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열병 - 과잉 시대의 돈과 행복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이한 옮김 / 미지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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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도덕적 정언명령과 노골적인 이익이 이토록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경우도 역사에서 드물것이다!” 이는 누진 소비세라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진지한 법률로서 논의하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음을 주장하는 강렬한 프레이즈로서 와 닿는다.

 

우리는 정말로 사치의 시대에 살고 있다. 흥청망청했던 20세기 초 미국에서조차 흥청망청은 부유층의 것이었고 대부분의 가정은 의식주와 관련한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지출할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을 필두로 한 여러 나라에서 낮은 저축률과 높은 가계 부채 그리고 재무 불건전성으로 인하여 떠오르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광범위한 계층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위생, 안전, 기반 시설, 공공 설비, 복지 등 필수 공공재에 투자되어야 할 자금을 마르게 만들고 있는데, 많은 사회 비평가들이 비난하듯이 단순히 허영심에 찬 사람들의 과소비로만 그 원인을 진단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로버트 H 프랭크는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을 추종하는 신고전 경제학자들이 그리는 상대 소득과 맥락에 무심한 호모 에코노미쿠스 허상을 진화심리학적 해석을 빌려 날카롭게 지적하고, 누진 소비세가 어떻게 로버트 노직과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들까지 고려하면서도 가난한 자에게나 부유한 자에게나 이익이 되는 아이디어가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가 펼쳐가는 논증은 인간의 의사 결정 메커니즘과 주관적 복지의 내부 구조가 어떻게 주조되어 있는지, 그리고 경쟁의 본질적 특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깊이 이해한 기반 위에 있는 것이기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경쟁에 대한 우리의 근대적 이해는 크게 애덤 스미스와 찰스 다윈의 저작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개별 개체의 입장에서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비록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비인격적인 과학적 원리에 따라 다른 개체들에게도 유익하게 작용함을 조망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던 스미스의 아이디어는 개인의 죄와 인격적인 의도에 집중하던 중세적 사고에서 벗어나 과학적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현대적 사고로 전환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큰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찰스 다윈은 거래에 참여하는 인간이 아니라 야생의 동물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을 분석한 일련의 책을 내놓았는데,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진화를 어떠한 선하고 바람직한 것 또는 좋은 것이라는 가치 판단 하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연 선택과 진화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뿐, 어떠한 도덕적 가치 판단이나 자연주의적인 당위성을 도출하지 않는다.

 

개별 개체의 이기적인 이익 추구가 비의도된 집단 전체의 이익으로 나타나는 많은 경우가 있음을 인지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일견 유사해 보이나, 다윈의 연구에는 개체와 집단 사이의 이해의 상충이라는 예리한 관찰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수컷 엘크의 큰 뿔은 자연 선택의 선호의 결과인데, 왜냐하면 암컷과 짝짓기 할 기회를 둘러싼 수컷들간의 싸움에서 경쟁자를 물리칠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컷 엘크의 뿔은 수백만 년 동안 점차 커졌는데, 더 큰 뿔을 가진 수컷이 다른 수컷에 우위를 가지긴 해도, 엘크라는 종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유리함을 가져다주기는커녕, 늑대와 같은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기 어렵게 하여, 오히려 큰 뿔은 분명히 심각하게 해롭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수컷 공작의 길고 화려한 꼬리 깃털도 자연 선택적인 성 선택이라는 맥락에서 설명된다. 이 이야기의 중요한 메시지는 모든 엘크의 뿔의 너비가 반으로 줄어들면 모두가 나아질 것이 분명하더라도 엘크 한 마리가 그의 뿔을 줄이는 것이 이득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인데, 이러한 사례는 단지 지엽적이고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관찰과 연구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통찰을 보여 준다: 개체와 집단 이익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경우 개체의 이익이 집단의 이익을 자주 압도하게 된다.

 

 개체 이익과 집단 이익 사이의 갈등이라는 다윈의 주제는 인간사의 경우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널리 나타나는데, 공연장에서 더 잘 보기 위해 일어서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군비 경쟁이나 공유지의 비극인 남획과 환경 오염 같은 심대한 것도 있다. 모두가 공연을 더 잘 보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서는 행동은 관람객 전체의 관점에서 맹백히 자멸적인데, 왜냐하면 일어서는 행동은 비용을 수반하면서도 어느 누구의 시야도 더 트이게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관점에서는 일어서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모든 사람들이 몇 시간 동안이나 의자 위로 올라가 공연을 보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고, 자리에서 일어선 관객들이 특별히 탐욕스럽거나 인내심이 없었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개인으로서는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인 혼자 앉는 행동 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경 오염은 현대 경제학자들이 개인 이익과 집단 이익 사이의 갈등을 명확히 인식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각 개인은 자기 차를 포함하여 시내를 달리는 모든 자동차의 배기 시스템에 촉매 컨버터를 달게 되어 나타나는 공기 청정도의 극적 개선의 해택을 기꺼이 원할 수도 있으나,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단지 자기 차에 촉매 컨버터를 달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것 뿐이라면, 돈이 들고 로스앤젤레스 분지의 공기 청정도에 어떠한 주목할 만한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선택을 하지 않는다. 인간 여성들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은 상이한 문화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한결같이 낭비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관찰평이 재미있다. 이러한 종류의 경쟁이 대개 그렇듯이 각각의 경우에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이득은 상당한 정도로 서로 상쇄시키는 효과를 내어, 예를 들어 하이힐을 신어서 얻는 키의 이점은 하이힐이 보통의 신발이 되었을 때는 중화되어버리게 된다. 이는 각각의 공연 관람자들이 최소한 다른 관람자들과 같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좌석 위에 일어서거나 시끄러운 파티에서 사람들이 최소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에서 설명되는데, 이 비용이 어리석고 허영심에 가득 차 패션의 요구에 휘둘리는 여성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갈등의 원리를 파악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그 파괴적인 결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단지 개인에게 주어진 인센티브 간극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센티브 간극은 뜨거운 개인적 미덕의 영역이라기보다 차가운 경제학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로서, 순박한 계몽이나 서툰 자조 운동 등으로 바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 편, 진화의 긴 과정을 거치는 동안 형성되어 온 상대적 지위에 대한 우리의 깊은 관심 역시 흥미롭게 설명된다. 상대적 지위에 대한 관심은 유전자에 각인된 본연의 갈망으로, 이성과 감정에 대한 일반의 통념과는 달리, 이들은 합리적 계산을 보조하며, 적어도 우리의 조상들이 진화한 환경에서 자연 선택된 것들인데, 이들은 개체의 생존과 재생산에 큰 유익을 제공한다. 이러한 상대적 지위는 맥락에 강하게 의존한다는 특성을 갖는데, 덜 맥락 의존적인 휴식, 취미, 레저, 친밀한 교우 관계 등에서보다 우리의 심리적 적응력이 빠르게 작용하여, 주관적 복지의 영속적인 증가를 가져오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400제곱미터 집에서 살지만 매년 1주 휴가를 가는 A사회와 모든 사람들이 300제곱미터 집에서 살지만 매년 4주의 휴가를 가는 B사회 중 어느 사회를 택할 것인지 묻는 사고 실험에서 드러나듯, 우리는 만약 우리 사회의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덜 맥락 의존적인 오래 가는 가치들을 통하여 우리의 복지의 증진을 선택하려는 경향성을 갖는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은 개인적으로는 단지 그 자신의 행동만을 결정할 수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사회적 틀 안에서 한정된 선택지만이 주어진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미국 로펌의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들은 더 적은 보수를 받더라도 더 적은 근무시간 동안 일하기를 원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더 적은 근무 시간 동안 일하다가 혼자 계약이 해지될 것인가 아니면 가족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갖지 못 한 채 다른 동료들처럼 격무에 시달릴 것인가이다.

 

 누진 소비세의 아이디어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소득이 아닌 소비에 누진적으로 과세한다. 한 납세 단위 가구가 소득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소비하거나 혹은 저축하거나의 두 가지가 있을 뿐인데, 이 때 소비액은 소득에서 저축액을 뺀 차액이다. 이러한 세제는 경제 시장 참여자들의 인센티브를 왜곡시키지도, 다양한 기호를 가진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지도 않는다. 재산세와 소득세 형태의 세제는 조세 정의에 반하는 것은 아니나 지나치게 과중해질 경우 시장 참가자들의 인센티브를 저하시켜 동기를 꺾는 문제가 있어 일정선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현재 많은 유럽 국가들은 이미 본질적으로 판매세 또는 소비세인 부가가치세를 시행하고 있는데, 부가가치세는 매우 역진적이라는 그 본래적 특성 때문에 저소득 가정에는 과도한 부담을 지우면서도 부유한 가정의 소비 습관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 생필품에 대해서는 면세하고 특정 사치품 목록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세금을 물려서 일종의 사치세를 시행함으로써 판매세를 덜 역진적으로 만드는 세법 또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 시행되고 있으나, 이는 과거 로마 제국에서나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나 유사하게 나타나게 되는 모든 사치세 계열의 세제가 갖는 필연적인 결과인 무익하고 소모적일 뿐인 값비싼 정치적 투쟁을 낳고 있다. 어떤 상품에 세금을 면제하고 어떤 상품에 고율의 세금을 매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업들로 하여금 로비스트와 컨설턴트를 고용하고 광장과 밀실과 법원에서 추하고 무용한 정치적 싸움을 하게 만들 뿐더러, 과시적 소비의 태생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이를 테면 과세되는 품목인 황금 단추 대신 보석 단추를 끼우는 식의 회피로가 만들어질 때마다 이러한 진통은 끊임없이 재발하게 되는데다가, 사치품이라고 낙인찍힌 상품들을 진정으로 선호하는 소수 시민의 기호를 억압하는 정치철학적 문제에 봉착하게 만든다.

 

누진 소비세의 진정한 매력은 경제 활동자들의 인센티브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도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데다가 심지어 모든 게임 참가자들에게 실제로 이득이 된다는 데 있다. 진화심리학의 연구와 일련의 사고 실험이 우리에게 말해주듯이 우리 모두가 강한 맥락 의존성을 띄는 과시적 소비를 덜 하고 맥락 의존도가 낮고 쉽게 적응되지 않는 비과시적 소비를 더 많이 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실제로 우리 모두의 복지는 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오직 관여할 수 있는 결정이 우리 자신의 선택밖에 없다면, 수컷 엘크의 큰 뿔이나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 깃털과 같은 과시적 소비를 택하는 것이 실제로 개인에게 매력적이고 이득이 되는 선택인 경우가 많으므로, 결국 과시적 소비는 너무 많이 하게 되고 비과시적 소비는 너무 적게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가장 비극적인 점은 다른 모든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유사한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에, 맥락 의존적 소비로 얻은 이득은 무로 돌아가는 반면, 그 무거운 비용은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모두에게 부과되어, 빚더미에 앉거나 지속적으로 우리의 주관적 복지를 증진시키는 소비들을 고통스럽게 줄일 수 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뿔이나 꼬리 깃털과는 달리 우리는 우리 사회의 세제를 개정함으로써 이러한 인센티브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달라진 인센티브는 개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선순환 효과로 작용하여 맥락 의존적인 소비를 할 때의 준거 기준을 변화시켜, 이전에 페라리 456 GT가 가져다 주었던 효과를 포르셰 911 터보로 누릴 수 있게 되고 포르셰 911 터보가 가졌던 효과는 포르셰 911 카레라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되는 식으로 그 변화의 영향력이 층계의 모든 곳으로 흘러내리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절약된 돈은 실질적으로 그 누구의 손실도 되지 않으면서 유예된 자본이 되어 가정과 국가의 재무 건전성을 지키고, 아인슈타인이 우주에서 가장 큰 힘이라고까지 말했던 복리의 힘에 의해 장기적으로 더 큰 소비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하고, 우리 개개인의 삶의 복지 증진에 기여할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자유 시장주의자들은 재화와 서비스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신고전 경제학의 논리와 시민의 복지를 위해 가장 좋은 것-더 큰 집을 살 것인가 운동을 할 것인가-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는 관료가 아니라 시민 바로 그 자신이라는 자유주의적 논변을 들어 반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리드먼조차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활동 등으로 대표되는 일부 결정의 경우에는 개인의 손에 맡겨두어서는 최선의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 누진적인 세제가 신성한 사유 재산에 대한 간섭이라거나 자연스러운 부의 분배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어떤 의미에서 심각한 어불성설인데,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펼친 논변을 빌리자면, 재산권의 개념과 근거를 정의하고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규정한 어떤 사회 질서가 있을 때, 그 토대 위에서 사유 재산이라는 아이디어와 사회적으로 보호받아 마땅한 정당한 권리라는 합의 또한 존속되는 것이고, 또 재산이라는 것은 그러한 구조 내에서 합의된 법칙 안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로 국내에도 많은 화제가 되었던 장하준을 비롯한 여러 경제학자들이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통념과 인식의 맹점에 대해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세법과 경제 정책의 범주와 경계는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과학적 맥락에서 결정된 절대적인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많은 경우 윤리학과 정치 철학의 영역에서 결정되어왔고 또 지금도 마치 분쟁지역의 국경선마냥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는 영역으로, 가장 그대로 내버려두어진 것으로 보이는 시장마저도 실은 바탕에 깔려 있는 수많은 규제-환경 규제, 안전 규제, 인신매매나 공직 거래같이 사고팔 수 없는 것에 대한 규제 등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 의식조차 하지 못 하고 있던 규제-와 정치적 장치를 전제로 한다. 소비를 많이 해야 국내 내수 경기가 살아나고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역대 최저의 저축률과 최고의 가계 부채에 대한 우려와 연일 이어지는 재무 불건전성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는 더 이상 적합한 것이라 볼 수 없다. 누진 소비세는 결코 비주류의 아이디어가 아니며, 홉스 토머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존 스튜어트 밀, 앨프리드 마셜, 아서 피구 등 역사적으로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바람직하고 이론적으로 건전한 아이디어로 여기고 때로는 열광했지만, 실제적으로 납세자가 얼마나 소비했는지 알기 어렵다는 실행상의 어려움 때문에 실현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여졌을 뿐이다. 그러나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명확하게 이해했듯이, 방식을 바꾸어 저축 투자와 공제액을 면제하는 형식을 취하면, 이 이론적으로 바람직안 아이디어는 현실적으로도 실행 가능한 세제가 된다.

 

『승자 독식 사회』, 『부자 아빠의 몰락』 등의 여러 저서로 국내에 잘 알려진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가 전통적인 인센티브와 누진 소비세에 대한 학자들의 아이디어와 현대 진화심리학 연구의 통찰을 꿰뚫고 참신하게 재해석한 『사치 열병』은 역자 이한의 적절하면서도 감각있는 번역과 어우러져 흥분되는 지적 유희의 드라이브를 이끈다. 학제간 연구의 융복합과 정교하게 짜여진 논리적 엮임은 깊은 맛을 우러내고, 생생한 어조와 세련된 유머 감각은 또한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을 내어 독자의 집중을 잃지 않도록 한다. 통속적인 검약과 자조에 관하여 설교하는 중세시대 주교 스타일의 이야기에도, 자유 시장의 개념을 입맛대로 정의하고 왜곡하는 근대 산업혁명기의 영국 자본가나 할 법한 이야기에도 질린 독자라면, 경제적 공동체이기도 한 사회의 공정하면서도 효과적인 세제를 고민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사치 열병』이 제안하는 신선한 아이디어 누진 소비세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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