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두려움이 많고 조심스러우며 의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 p24

1699년까지만 해도 왕립학회는 <소 오줌 한잔 마시기>가 건강에 이로운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 p27

뉴턴은 중력 이론에 바친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바쳐 솔로몬의 성전에 숨겨진 메시지라든가 묵시록의 예언들을 후대의 전쟁과 혁명과 맞추어보려고 시도했다. - p39

중력이론은 그가 <다니엘서>의 숨은 내용을 해독하려고 바친 긴 시간 동안 짬짬이 연구해본 결과물에 불과했다. - p59

미적분이야말로 모든 면에서 17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지적성취였다. - p69

라이프니츠는 도서관 한 채를 통째로 집어삼킬 정도로 엄청난 박식가이자 당시로서는 이름조차 없었던 새로운 여섯 가지 분야에서 개념과 발명을 쏟아낸 독창적인 사상가였다. - p70

뉴턴은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했다. 눈동자의 형태가 인간의 색채 인식 방식과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뉴턴은 끝을 누디게 만든 돗바늘을 자기 눈동자 아래에 갖다 대고서 세게 누르기도 했다. - p74

사형 집행자가 가장 탐내는 정리품은 처형된 죄수의 절단된 손이었다. 왜냐하면 손에 남은 죽을 때 생긴 땀에 치유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버트 보일은 과학계의 거물이면서도 이 치료법을 갑상선종에 걸린 환자에게 권했다. - p81

토마스 무어의 여러 딸 가운데 한 명이 다리 밑을 지나가다가 자기 아버지의 머리를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저 머리는 자주 내 무릎에 놓여 있었는데, 제발 내가 지나갈 때 무릎 위로 떨어지면 좋으련만>. 그녀가 소원을 빈 다음 지나가자 정말로 머리가 무릎 위로 떨어졌다. 무어의 머리는 현재 캔터베리 대성당의 지하며지에 안치되어 있다. - p109

갈릴레이는 <자연은 수학이라는 문자로 쓰인 책>이라고 그는 주장했으며, 방정식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단지 이름에 불과하다>라고 보았다. - p127

아리스토텔레스의 <왜>가 세계를 설명했다면, 갈릴레이의 <어떻게>는 세계를 묘사했다. - p129

신은 우주적인 불꽃놀이를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그런다면 충격과 두려움으로 우리를 압도하게 될 터였다. 지적인 질문에 관한 한 강요는 그릇된 수단이다. 인간을 창조하고 이성의 능력을 부여하였으니 마땅히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기를 의도했던 것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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