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 -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 임철규 저작집 2
임철규 지음 / 한길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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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연극으로 알려진 그리스 비극. 고대 그리스 최대의 행사였던 디오니소스 축제 메인 이벤트였던 비극들은 '그리스 비극'이라는 또 하나의 장르로 분류되며 현재까지 전해진다. 정확한 시점조차 가늠할 수 없는 수천년 전에 창작된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오며 많은 이야기의 원형을 제공하고 있다. 이미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접한 우리에겐 너무도 단순하고 유치하며 식상한 서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 또한 그리스 비극에 최초로 제시한 서사적 모티프들이 후대에서 변주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있거나 만들고 싶은 사람, 세상 모든 이야기의 원천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봐야 한다는 상투적인 문장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2.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리스 비극은 읽기가 참 쉽지 않다. 현대극의 형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품이 전개되는 데다가, 신화적 배경 지식을 너무 많이 요한다. 주인공이 처한 운명과 저주들을 둘러싼 신화적 요소들은 당대의 관객들에겐 배경지식이었기에 전혀 설명이 되어있지 않지만, 21세기에 읽는 우리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임철규 교수님은 이 책을 통해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독자들이 짚고 넘어가야 할 배경지식들을 알차게 담아냈다. 이 책의 분량 자체는 쉬이 도전할 수 없을 만큼 두껍긴 하나, 이 책 한 권 속에 15편의 희곡과 각 희곡에 대한 수많은 석학들의 주석서 수십권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면, 한 권의 책으로 수십 권을 읽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이 책이 최고의 요약서이자 효율성 끝판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3.
이 책을 읽으며 '역시 그리스 비극은 친절한 해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곱씹었다. 수천년 전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문들에 대해 임철규 교수님은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스럽게 서술해간다. 특히 '애도'라는 키워드에 매우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우리의 삶을 구성하도록 한 앞선 시간의 누군가를 애도하는 자세가 비극을 통해 구현된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러한 애도의 마음을 오랜 시간 학습해왔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극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내재화된 것이리라. 오늘날의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의 해피엔딩을 바라고, 새드엔딩이 나오면 불쾌함을 표하면서도 그 엔딩을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것 또한 이것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새드엔딩에 끌리는 알 수 없는 마음이 궁금하다면 <그리스 비극>에 도전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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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비극을 통해 분노가 극한에 이를 때 인간은 인간이라는 범주를 초월하는 절대추상체가 되어, 분노 자체가 자신이 되고, 복수 자체가 자신이 되고, 저주 자체가 자신이 되는, 그리하여 자기 자신에게도 낯선 타자가 되는 인간의 존재론적인 비극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P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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