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댄싱 맘 - 2012 이주홍문학상 수상도서, 2012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문학도서
조명숙 지음 / 산지니 / 2012년 3월
평점 :
어렸을 때 그림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쥐고만 있어도 손에 시커멓게 묻어나는 4B연필을 가지고 석고로 만든 구나 정육면체를 보고 그리곤 했습니다. 어린 관찰은 마냥 지루한 과정이어서, 밝은 면, 중간 면, 어두운 면을 눈대중하며 대강대강 칠하곤 했습니다. 어둡기만 한 저의 데생 아래쪽을 선생님이 지우개로 누르며 알려 주셨던 것은 ‘반사광’ 이었습니다. 밝은 면, 중간 면, 어두운 면, 그 다음엔 더 어두운 면이 아니라 반사광이 있듯, 밝은 생, 중간 생, 어두운 생이 존재하는 조명숙의 소설에는 빠진 어깨로 고양이의 시체를 치우는 소녀가 있고 아버지와 함께 호루라기를 불어 주는 여자가 있습니다.
사라졌을 때 만나는
<어깨의 발견>에서 케리와 효주와 지수와 나는 사라진 영주를 발견했―혹은 착각―했을 때 만납니다. <거꾸로 가는 버스>에서 유와 분투, 을지와 삼미와 나는 에이의 장례식장에서 모입니다. 누군가가 사라졌을 때야 비로소 서로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 영주와 에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영주는 헐거운 비행 소녀이고, 에이는 결혼에 여러 번 실패한 장애인입니다. 사람들이 영주나 에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 것이 아님에도 그들은 모입니다. 타인의 애정도 연민도 증오도 얻지 못한, 나약한 존재의 빈 자리에서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됩니다.
빠져나와 날아간 새
<댄싱 맘> 속 어머니의 시체에서, <까마득>이 영감을 얻은 그림에서, <나쁜 취미>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물들은 자신을 끄집어내거나, 무언가로부터 해방되어 어디론가 가려 합니다. <댄싱 맘>의 말 많은 어머니가 뒤주 속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첫 번째 자식의 입을 빌려 그녀의 썩은 몸은 새로 바뀝니다. <까마득>이 참고한 노은님의 <새>는 파란 바탕에, 초록 날개를 가진 흰 새의 그림으로, 주인공 ‘흐엉’은 파란 풍경 속의 자신을 끄집어냈습니다. <나쁜 취미>에서 나와 제이는 사고에 몸을 내던짐으로써 ‘왼쪽으로 가고 싶으면 왼쪽으로 갈 수 있’는 자유로움을 얻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죽었고, 흐엉은 스무 살이 많은 외국 남자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녀들의 시도는 굳이 구분하자면 실패와 불운의 축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그런 선택을 한 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자의든 타의든.
당신 뭐야?
<바람꽃>의 상희는 안면도 없는 ‘나’의 아버지를 데려와 같이 호루라기를 불며 노는 여자이고, <비비>의 ‘그녀’는 검은 옷의 콰르텟을 이끌고 나타나 ‘나’ 의 사무실에 비비탄을 쏘고 사라지는 여자입니다. 존재는 신비하기까지 하고, 행동엔 논리나 상식이 없습니다. ‘나’ 들은 그녀들의 언행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함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을 계속 만나려 하고, 식사를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같이 잡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건, 단순히 따분해서건 ‘나’들은 그녀들을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겠지요.
우리는 보통 소설을 읽은 다음에야 비로소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곤 합니다. (혹은 영영 그러지 못합니다.) 『댄싱 맘』의 경우는 반대로, 글을 읽기 전에 이미 이미지가 존재합니다. 여성 작가들의 그림과 관련된 소설이므로 그림 이야기를 오히려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그림을 감상하듯 읽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처음에 반사광 이야기를 했지만, 책에서 그 존재부터 찾으려 하진 마십시오. 그것들을 쉽사리 희망과 낙관이라 부르기는 망설여집니다. 너무 희미하여 단순한 여백이라 부를 수도 있고, 그러나 분명 분명하니 빛이라 부를 수 있는 그 문장들에게 이름을 붙여 보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우리 너무 환한 세상은 잠시 잊도록 합시다. 그리고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