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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계절 - 박혜미 에세이 화집
박혜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1월
평점 :
올해에도 역시나 동일하게 새해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렸는데, 애정하는 출판사인 오후의 소묘에서 아름다운 책이 나왔다. 오후의 소묘에서 나온 그림책을 특히나 애정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림과 글이 함께 공존하는 에세이 화집이다. #박혜미 #에세이화집 #사적인계절 #오후의소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겨울에서 시작하여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에서 끝이 나는 화집이다. 단순히 그림과 글을 보는 책이 아니라 책일 읽는 동안 그동안 무수히 스쳐 지나가며 경험하고 만났던 계절의 풍경을, 그 속에서 만난 인연을 돌이켜 보며 읽을 수 있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언제나 오후의 소묘에서 나온 책은, 그리고 도착한 책은 포장부터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너무 아름답고 정성이 느껴져서 받을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여기에 담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고, 인쇄된 책으로 봐도 이렇게 멋진데 원화는 얼마나 멋있을지 언젠가 이 책에 실린 활자들과 함께 원화 전시를 볼 수 있는 날도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희망은 빛의 모양을 하고 있고, 희망은 미래와 닮아 있고, 그래서일까. 희망은 저만치 멀어진 누군가처럼 나를 앞서 걷는다. 지금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면 나란해질 수 있을 걸 알면서도, 느린 걸음으로 어느새 찾아온 어둠 속을 더듬는다. 어둠으로 오늘을 정리하고 나면, 새로 그릴 내일이 찾아오겠지. 그렇게 매일을 걷다 보면 일몰이 조금씩 뒤로 밀려나며, 우리의 낮은 밤보다 길어질 것이다. 짧게 머물다 사라지는 황금빛 테두리를 걷어내고, 저 멀리의 희망과 나란히 걷고 있는 내가 흐릿하게 그려진다. 그것이 내가 매일을 걷는 이유일지 모른다. - P013
어쩔 수 없는 차선을 선택하면서도 잊지 않고 창틀에 놓인 식물에게 물을 주는 것, 창문을 열어 멀어지는 것들을 살피는 것, 책상 앞에서 고정된 시간을 보내는 것, 매일 걷고 달리는 것, 현재를 미루지 않고 보내는 것, 그렇게 어제 위에 오늘의 발걸음을 포개 걷다 보면 지금의 차선이 최선이 되는 날도 있겠지. 그러니 아직은 모자란 나를 인정하고, 다시 걸어야겠다. 오늘을 그려야겠다. 언젠가의 풍경을 위해서. - P027
나는 온종일 한 장면만 생각해. 밤이 지나 낮이 올 때까지. 시선이 가슴을 향해 손끝에 머물게 될 때까지. 아주 소중한 것을 만질 때처럼. 온종일 한 장면만 생각하다 책상 앞에 앉아. 이건 펜이 좋겠어, 이건 색연필, 이건 물감. 선은 면이 되고 기억이 되어 빈 종이 위에 가지런히 겹쳐 포개지고, 마음은 손이 되어 종이 위로 충만이 가득 차오른다. - P074
모든 계절이 찰나처럼 지나가고, 잊혀진 풍경들 사이에 내가 서 있고, 쥐고 있던 기억에는 우리가 남았다. 기억은 문장이 되어 쓰였고, 풍경은 페이지게 되어 그려졌다. 그렇게 우리는 책이 되었다. 돌아오는 계절마다 너를 만났고, 혼자여도 둘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책의 다음 페이지에 언젠가의 우리가 계속해서 쓰이고 그려질 것이다. 오늘 만난 계절은 잊지 않고 우리를 다시 찾아올 테니까.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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