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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 ㅣ 사물들의 미술사 1
이지은 지음 / 모요사 / 2018년 5월
평점 :
그림은 변하지 않아도 그림을 보는자, 그림을 소유하는 자, 그림이 걸려있는 장소에 따라 액자는 바뀐다. 액자는 그림을 둘러싼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화한다.
‘겐트 제단화’는 반 에이크 형제의 작품으로 중세 성당에서 신의 세계를 볼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 중세 제단화는 양 날개를 잘아 그림의 수를 늘리고 여닫을 때 다른 이미지로 보이게 하여 지루한 성경의 이야기를 경이롭게 보여준다.
겐트 제단화의 액자는 나무틀에 그림을 끼워 넣어 그림의 보존에 취약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나폴레옹의 군대가 탈취해갔다가 반환받기도 했고, 대성당에서 그림들을 조각내어 매각하여 여러나라에 팔려가기도 하고 독일 히틀러에게 탈취되기도 하는 등 많은 수난을 겪었다.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액자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프랑스 루이 13세의 어머니인 여왕의
일생을 시대순으로 그렸으며 원래 파리 뤽상부르 궁전의 메디시스 갤러리를 위한 그림이다. 뤽상부르 궁전 자체가 액자가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액자로 장식된 것이다.
‘브와트 아 포트레’는 루이 14세의 미니어처 초상화를 금판이나 은판의 가운데에 부착한 후 그 둘레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것으로 호사스럽기 그지없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액자인 것이다.
루이 14세는 프랑스의 태양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운 절대군주로써 패션에 대한 조예도 남달랐던 것 같다. 그의 재킷과 코트의 단추까지 보석을 장식했고, 프랑스 왕가에는 수많은 보석을 기록해둔 보석 연감이 존재했고 또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제 박물관과 함께 탄생한 19세기 액자에 대해 말해보자.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들은 벽면에 송곳 하나 꽂을 틈도 없이 빽빽히 걸어놓는 형태로 전시되었다.
‘전시할 수 있는 것을 전시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17,18세기의 살롱 카레의 전시방식이 이어져 왔다.
이후, 19세기부터 액자의 황금시대가 시작되었다. 보관하기 위한 그림이 아닌 전시하기 위한 그림으로 액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유럽의 양식으로 화려한 금칠과 섬세한 조각으로 만들어진 액자들은 19세기 액자들이라 볼 수 있다.
‘반 고흐’는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액자까지 직접 만들고 색칠했다고 한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820통이 넘는 편지를 통해 작품을 시작한 시기, 주제, 최초의 착상, 색깔 등을 적어 남겼다. 고흐는 색채의 비밀을 터득해 ‘색채 동시대비’와 ‘보색 대비’등을 활용해 그림에 따라 액자의 색깔을 달리했다. 책에서 그의 작품들과 그것에 어울리는 액자를 매치해 그림으로 실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그림만 봤지 액자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액자의 색깔에 따라 그림의 느낌이 달라진다는게 신기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우리집에 어울리는 액자를 선택해 그림을 한점 걸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모더니즘 화가로 유명한 화가인 드가와 그의 그림과 예술을 사랑했던 유대인 카몽도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터키의 국제적인 사업가인 카몽도 가문은 유대인으로 무슬림의 차별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였다. 특히 이사크 카몽도는 예술을 사랑해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다. 미술품을 수집하는 일에 남달랐던 그는 마네, 모네, 세잔,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골고루 수집했지만 특히 드가의 작품을 많이 수집했다. 하지만 아니러니하게도 드가는 성차별주의자였고 친구에게 독설을 내뱉는가 하면 특히 유대인을 혐오했다.
이사크 카몽도는 그의 컬렉션을 모두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카몽도 컬렉션’에 남은 26점에 달하는 드가의 작품들은 똑같은 액자에 담겨있다고 한다. 형태가 직선적이고 우아한 리본장식의 액자는 드가의 또다른 작품이라 할수 있겠다. 드가는 액자를 스케치하고 외부장식을 세세히 묘사하거나 그림에 따른 액자를 고민하고 그림에 맞는 액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사크 카몽도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조카인 니심 카몽도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프랑스를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 니심의 아버지인 모이즈는 죽은 아들을 통탄해하며 그의 컬렉션을 프랑스에 기증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모이즈의 딸과 그 가족들을 독일의 나치에게 넘겨 죽게했다. 예술을 사랑하는 한 가문의 몰락이 안타깝고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사물들의 미술사 시리즈인 의자, 조명, 화장실 등의 앞으로 발간된 책들이 궁금해졌다.
단지 그림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외의 사물에 관점을 둔 것이 색다르고 흥미로웠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