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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 기억의 파편들은 사방에 조각조각 떠 있다. 사소함으로부터 출발하나, 도저히 건져낼 수 없을 것만 같던 기억들이다.
누구에게나 외딴 방은 있게 마련이다. 다만 우리들의 그 공간들은 정말 외딴 곳에 동떨어져 묻힌 상태임에 비해 작가의 방은 지금 이 순간 모두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점을 차이로 들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소유하고 싶게 된 것은, 노출하지 못한 나의 조각난 과거가 이로 인해 어떤 손으로 건져짐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지나 그 자리에 있던 외딴 방. 다시는 가보고 싶지 않을 곳. 사소한 몸짓 하나로 돌이키지 못할 결과를 초래해버리는 우리의 운명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던 그 곳. 그곳에 관한 기억은, 희재언니의 가슴 아릴 만큼 처참한 사랑의 기억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찢기는 듯한 아픔을 선사해 주는 기억들. 글로나마 토해 내버린 후에야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글을 읽는 내내 문장을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했다. 이렇게 생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정말 이 소설이 사실투성이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렇게나 많은 고독한 기억을 안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아프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외딴 방’을 끝내 비워낼 수 없는 공간에 대한 단상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 시절을 지나왔던 작가도, 기록에 한없이 파묻혀 살았던 독자들도 끝내 잊어내지 못할 기억. 자신만의 외딴 방을 떠올리며 언제라도 생생히 그려낼 수 있도록 하는 통로가 될 외딴 방의 이야기. 나로 말하자면, 어두운 교실에 갇혀 있던 유년기의 고립된 자아나,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칼집을 내야만 살 수 있었던 청소년기의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가둬두고 싶은 세월의 긴긴 밤들, 차마 글로도 토해낼 수 없었던 숨죽인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다.
그러나 갇힌 이야기들을 힘겹게 털어낸 후에도 결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었던 작가를 떠올리며 깨달은 것은, 지난 과거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를 토해내며 잊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좁은 살집을 헤집고 들어와 꿈쩍하지 않으려는 쇠스랑을 억지로 빼내려 할수록 더욱 상처만 남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딴 방의 탄생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감춰진 아프고 창피한 과거들을 굳이 꺼내놓지 않고서도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소설이 아니던가. 가슴이 아려오는 현실 속에서도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담고 있는 글이 아니던가. 다만 이 글을 쓰신 작가가 너무 많이 아프지는 않기를 바란다. 모두가 함께 아픈 기억을 공유함으로 인해 그 짐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