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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길, 개정판
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길”(Finding and Fulfilling the Central Purpose of Your Life)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이유요 인생의 참된 의미이자 목적은 바로 ‘소명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무거운 제목을 붙일 만큼 충분한 가치와 자격이 있다.
일생일대의 중대한 관심사요 고민거리인 ‘소명’에 대해서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체로 설명한 책이다. 일일 묵상집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26장에 걸쳐서 ‘소명’에 관한 전 영역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한 번 읽고 흘려버릴 가벼운 책은 아니다. 오히려 묵직한 주제를 진지하면서도 심오한 분위기로 간결, 명확하게 다룬 묵상집으로써, 매 장마다 소명의 진리를 한 가지씩 심도 깊게 언급하고 있다. John Stott가 짧게 극찬한 바와 같이, 저자 Os Guinness의 분명한 식견이 문학, 전기, 성경, 역사, 경험 등을 넘나들면서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고 해서 주제를 벗어난다거나 번잡한 느낌은 전혀 없다. 1장부터 마지막 26장까지가 ‘소명’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다각적이면서도 통일성 있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이 글은 1~2년의 준비과정이 아닌, 저자의 전 생애에 걸쳐 완성된 묵상의 열매요 최고의 역작이다.
언뜻 보기에는 ‘행동’에 호소하기보다는 단순히 ‘지식’의 깊이만을 더해주는 이론서 정도로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의 이성에 깊이 호소하고는 있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까지 고무시키는 실천서이다. 독서 중에 수시로 감탄사와 깊은 찬사가 이어질 것이다.
저자는 ‘소명’과 관련된 왜곡되고 일그러진 편견과 오해들을 일일이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이토록 왜곡된 소명관(召命觀)이 나오게 된 시대적, 사회적 배경과 원인을 분석해 주며, 참된 소명의 발견을 방해하는 현대 사회의 다양한 특징들―상품화, 세속화, 다원화 등―도 조명해 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기독교적 소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위인들의 의견들을 수렴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소명을 발견하는 원리와 방법, 소명의 길을 걷는 데 겪게 되는 다양한 유혹들―자만심, 질투, 탐욕, 나태함―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않는다.
저자는 소명에 대한 왜곡된 인식들을 하나씩 다루면서 그 맹점과 위험성을 경고한다.
소명에 대한 그릇된 시각으로는 흔히들 이원론이라 칭하는 ‘카톨릭적 왜곡’이 있다. 이는 소명에 ‘영적인 것은 고차원적이고 세속적인 것은 저차원 적’이라는 잘못된 등식관계를 성립시킨 왜곡이다. 반면에 ‘개신교적 왜곡’은 소명과 직업을 동일시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명을 평가 절하하는 한편 직업의 위치를 지나치게 높이 격상시키는 오류를 낳았다.
또한 저자는 소명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원칙과 노하우를 제시해 준다.
그리스도인들은 현대세계의 영적 도전에 민감해야하며 이를 깊이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소명은 다차원적인 것으로, 세상과 사회를 무시한 채 개인적인 재능만을 고려한 이기적인 목적 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명은 반드시 개인적인 동시에 공동체적이어야 하며, ‘사회변혁’의 요소를 담고 있어야 한다.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재능과 소망간의 연결고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재능만이 소명을 찾기 위한 변수는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고려해야할 변수들에는 집안 전통, 자신이 경험한 인생의 다양한 기회, 하나님의 인도, 보여주시는 것을 하려는 태도 등도 포함된다.
소명은 반드시 명료성이나 구체성을 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초자연적이며 신비적인 것이어서, 수 차례의 탐색과 시행착오를 거쳐 수정과 시정의 연속작용으로 발견되어져 가는 것이다. 소명은 완료형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흔히들 ‘소명’ 하면, 어떤 임무를 수행하도록 파송되는 것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그 이상이다. 소명에도 분명한 과정이 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따로 구별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어 ‘우리를 바로 서게 하는 과정’을 거쳐 ‘우리를 보내는 것’에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 중 어딘가에 포함되어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imitating Christ)이 우리가 소명의 과정(길)을 걷는 최고의 방법이자 원칙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단순한 모방이나 경직성이 아니라, 참된 의미의 독창성이요 창조성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역설적이면서도 심오하다.
우리는 소명의 대상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소명은 ‘상대적 다수’(사람들)를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마치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신호를 포착하는 데에만 급급한 이동 레이다처럼 줏대 없이 세상과 사람들의 의견에 휩쓸리고 만다. 그 대신 우리는 ‘절대적이신 한 분’만을 우리 소명의 유일한 청중(the Audience of One)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단순히 여론의 생각과 주변의 움직임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온도계’같은 삶에서 벗어나서 원리와 원칙으로 환경을 변혁시키는 ‘온도 조절 장치’같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해 소명을 따른다는 것은 믿음의 경주 속에서 우리 눈을 하나님께만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 책은 소명에 관한 왜곡된 시각들을 꼬집고, 소명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원칙과 방법들을 제시해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소명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쉽게 빠지고 마는 유혹들에 대해서도 경고해 준다.
저자는 소명을 둘러싼 유혹들로 자만심(자존심), 질투, 탐욕 그리고 나태함을 대표로 지적한다. ‘자만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에 대한 경이감에 교묘한 우월의식이 개입되어 나타나는 죄악으로써 ‘고상한 마음이 짓는 탁월한 죄악’이라고 정의된다. ‘질투’는 ‘다른 사람의 행복이나 성공을 보면서 슬퍼하는 것’을 의미하며, 낙담과 비난과 파멸의 집합체가 분노, 불평, 실망 등으로 표현되는 파괴적인 죄악이다. ‘탐욕’은 모든 것에 값을 매겨버리는 현대 상품화 사회가 교환매체에 불과한 돈을 능력 있는 영적 실체로 만든 주원인으로써, 결코 충족될 수 없는 밑 빠진 독과 같다. 끝으로 ‘나태함’은 영적 영역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나타나는 생명력 고갈 상태이며, 편안과 안락을 추구하는 현대 소비주의가 빚어낸 지루함과 안주함과 무기력 상태인 동시에, ‘성공’과 ‘만족’의 불일치에서 오는 상실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4~17장까지 수록된 이 네 가지의 유혹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절로 무릎을 꿇게 하며 회개를 자아내게 한다.
진정으로 인생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 소명과 비전 때문에 눈물 흘리고 밤잠을 못 자며 괴로워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소명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대가라도 지불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조심스럽고도’―이 책의 진지성과 품격 때문에― ‘강력하게’―이 책이 주는 강한 도전과 유익 때문에―추천하고 싶다. 그것도 한 참 뜸을 들이며 그들을 안달하게 만들면서…. 이 책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자들에게 섣불리 권장하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절하시키는 행위요 저자에 대한 모독이라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소명」은 이 시대에 소명을 추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장 좋은 ‘입문서’이자 관계된 모든 책자들의 ‘최종 완결판’이다. 부르심의 영역에 관한 최고의 ‘백과사전’이며, 소명 때문에 밤잠을 못 자던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될 것이다. 누군가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길’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 온다면, 이 책의 독자들은 확신에 찬 단호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일관된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다 : ‘소명’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