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 독도와 외규장각 의궤를 지켜낸 법학자의 삶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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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어릴 때 부터 들어왔고, 그렇게 알고 있지만 이 사실에 대한 근거를 심도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무언가에 대해 주장하고, 말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백충현 선생님은 그 힘을 법적 근거에서 많이 찾으시려 노력하셨다.

                

1. 독도는 우리 땅

백충현 선생님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증거로 일본에서 독도를 그들의 영토라고 표시하지 않은 고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국가에서 발행한 관찬지도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관판실측일본지도라는 그 증거를 찾아내었다. 관판실측일본지도는 일본측에서 매우 권위있는 관찬지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이 지도를 공개하기 꺼려했다. 백충현 선생님이 이 지도에 대해 알아볼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백충현 선생님이 가장 먼저 이 지도를 발견한 곳은 메이지 대학 박물관이었다. 하지만 관계자는 이의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했다. 여러 서점에 이 지도를 구할 수 있나 알아보았지만, 서점 주인들은 이 지도가 워낙 귀해 아마 구하기 힘들 것이라고한다. 하지만 백충현 선생님은 이에 굴하지 않고, 서점 주인들에게 부탁하고 계속 이 지도를 찾아다닌다. 그 결과 그는 일본 도쿄 충경당이라는 고지도 전문점에서 1998년 약 1억이라는 거액을 내고 이 지도의 판본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외교적 상황때문에 그는 이 지도를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는 생전에 그 지도를 공개하지 못하고, 이 책을 통해 관판실측일본지도가 최초로 공개된다.

2.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서

1866년 병인양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박해, 학살에 대항하여 프랑스 함대가 우리나라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프랑스에게 외규장각 의궤를 약탈당했다. 우리는 프랑스에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요구했지만, 프랑스측은 맞교환 형식으로만 의궤를 반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즉,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문화재를 주는대신 외규장각 의궤를 받아오는 것이다. 2000년 실제로, 우리나라는 이러한 형식의 반환에 대해 합의했다. 백충현 선생님은 이에 분노했다. 프랑스가 외규장각 의궤를 점유하고 있는 것은 국제법 상으로 엄연히 위법임은 근거로 들며, 우리는 완전히 외규장각 의궤를 반환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의 사후인 2011년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5년단위 대여 갱신이라는 조건 하에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올 수 있었다.

백충현 선생님께서는 생전에 그의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일본에서부터 구해온 관판실측일본지도도 2017년 출판된 책으로 처음 공개가 되었고, 외규장각 의궤도 2011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사후에 우리나라 정부는 그의 업적에 대해 인정하고 훈장을 수여했다.

나는 이 책을 그저 한 인물의 일대기로 볼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와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백충현 선생님의 업적을 보며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이렇게 우리의 것에 관심이 없던 나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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