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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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유치원 졸업 때 내 이름을 가진 아기 공룡이 주인공인 그림을 책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 이후 초등학생 때의 독서는 내게 지루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했지만 그다지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 때 처음 집 주변에 있는 공립도서관 회원이 되었다. 주위 어른들의 칭찬을 받는 것이 좋아 재미있는 책을 찾아 읽었었다. 책이라는 세상 속에 빠져들게 된 것은 빼곡이 들어찬 서가를 거닐며 현실과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맘껏 탐험하며 공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였다. 실제로 중학생 때 대출 기록을 보면, 판타지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 주를 이루었다. 책을 읽는다면, 게임을 하는 것과 다르게 어른들 특히 부모님은 너그럽게 봐주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1년 동안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취향의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기꺼이 감금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책의 표지, 새 책의 냄새, 종이의 질감, 책을 넘기는 느낌이 좋았다. 독서에 집중하면 어느 공간에 있든(복작 거리는 카페, 지하철 속에서라도)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 저자가 서술하는 세계 속을 거닐며 정신적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의 역사: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알베르토 망구엘, 세종)는 꽤나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읽는 행위에 대한 인류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중세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시인 휘트먼 등의 독서가를 넘나들며 은밀한 독서(묵독), 소리내어 읽기와 책 암송, 빅토리아 시대의 여행 필수품 책 꾸러미, 고금의 다양한 책의 판형들을 소개하고 있다. 비록 서양의 독서 역사로 제한되어 있지만, 읽다보면 저자의 박학다식함에 경탄하게 된다. 우리가 글자를 읽고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최초의 독서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두루마리에 띄어쓰기 없이 기록되었던 텍스트가 문장부호와 띄어쓰기가 발명되면서 독서가에게 미쳤던 영향, 나만의 기억 궁전에 수많은 책을 넣어두었던 고대/중세인들과 정보의 홍수 속에 독서를 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설명, 다수의 사람들이 청각으로 받아들이던 독서와 개인적인 시각으로 읽어 내리는 독서, 글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했던 중세의 ‘그림 읽기’ 등을 읽어나가며 “독서의 역사는 아마도 독서가들 각자의 역사일 것이다. 심지어 독서의 역사의 출발점까지도 우연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던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가는 텍스트에 정성을 기울인다. 그들은 텍스트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와 언어의 형태적 변화까지 창조해 낸다. 너무나 감동적이게도, 독서가들은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면서 자신들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과 글로 쓰여진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의미를 만들어 낸다.”(p.61)
고전이 세월의 흐름에 스러지지 않고 꾸준히 그 존재를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는 어느 시대의 독자라도 고전 속에서 ‘인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며 삶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가는 독서를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고 이것이 새로운 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말한 ‘끝나지 않은 독서의 역사’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요컨대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 읽는 수고를 하느냐 말야? (중략)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프란츠 카프카(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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