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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인 Lean In - 200만이 열광한 TED강연! 페이스북 성공 아이콘의 특별한 조언
셰릴 샌드버그 지음, 안기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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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후원을 간청하며 한강에 투신한 일이 있었다. 아무리 관심을 얻기 위한 퍼포먼스였다고 할지라도 목숨을 담보로 한 일이었기에 박수를 보낼 수 없었다(물론 애도는 표하지만). 어찌됐든 나는 남성연대라는 단체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역차별 당한다는 남성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었다. 모두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마땅하고 남성들의 입지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육아에 살림에 집안일을 모두 도맡아하며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여성이 존재한다. 그들은 돈을 벌면서도 당당하지 못하고 항상 무엇인가에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을 낮춘다. 자식들과 남편의 불만에도 안절부절못하고, 직장에서 동료나 상사의 질책에도 안절부절못한다.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물론 아이도 갖지 않았으며 출근과 퇴근만 열심히 반복하면 모든 집안일은 엄마가 대신해주는 꿈과 같은 현실에 살고 있으나 이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있다. 이런 때에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라는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Lean In)'을 운명처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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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24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회가 여러모로 발전했는데도 여성은 여전히 상당히 이른 나이부터 결혼을 염두에 두라는 사회적 압력을 받는다(34쪽)'고 이 책이 말하듯 나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니 대학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결혼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가정생활을 원활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내가 대학을 선택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황당하다. 아니 어쩌면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가정생활과 직업을 잘 병행할 여자를 찾는 남자의 눈에 들 수 있을까가 더 솔직한 생각이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그때의 내 생각이 나 혼자만의 가치관으로 비롯한 것은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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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역할을 바꾸고 새로운 도전거리를 추구하는 데 조심스러웠다. 새로운 영역에서 일해보라고 설득하고 대화를 시도하면 여성들은 "제가 그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흥미로울 것 같지만 그런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 자리에서도 배울 것이 아직 많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답변을 남성한테서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60쪽) |
나도 모르게 전통적으로 내게 요구된 역할모델처럼 수행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면서 내 흥미와 요구는 조절하면서 살아가게끔 이 사회가 나를 조종했고 난 그것을 이겨내기엔 너무 나약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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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들에게 결혼은 손해이니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지도 않고 완벽한 일하는 어머니로 살아남는 법에 대해서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일을 하며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여성들을 응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일하는 어머니들에게 '시간 관리만큼이나 죄책감 관리가 중요하다(210쪽)'고 이야기하며 일과 가정에서 절대로 달성하지 못할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해 스스로를 탓하게 만드는 상황은 만들지 말라고 말한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슈퍼우먼에 대한 경외감, 사실 그것이 결혼을 결정하는 데 많은 부담을 주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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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책임과 자녀 양육의 책임을 부부가 분담할 경우 아내는 죄책감을 덜 수 있고 남편은 가정에 더욱 관심을 쏟으며 아이들도 잘 성장한다. (...) 여성에게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는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성이 살아가며 부딪히는 도전을 정복할 수 없는 산처럼 느끼게 만들어 여성을 불필요하게 두려움에 떨게 한다. "대체 그녀가 어떻게 가정과 직장 일을 모두 감당해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로 일하는 여성의 기를 처음부터 꺾는 경향이 있다.(44~45쪽) |
여성만이 애초에 가정과 직장 일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여성은 나와 비슷한 결정 과정을 거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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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자들은 "맙소사,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저리 비켜요. 내가 할게요!"라는 여성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해서 '어머니의 문지기 역할maternal gatekeeping'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아버지는 아내에게서 자녀 돌보는 방법을 배운다. 따라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육아 참여를 격려할 수도, 방해할 수도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다. 만약 아내가 문지기처럼 행동해서 육아 책임을 맡기기 주저하거나 남편의 노력을 비판한다면 남편이 하는 부모 역할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남편이 진정한 동반자가 되기 바란다면 남편을 동등하게 자신과 같이 유능한 짝으로 대우해야 한다.(169~170쪽) |
미래의 남편에게 원망 담긴 바가지를 맘껏 긁는 대신 더 현명한 방법으로 사태를 이겨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내가 일과 가정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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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또 매우 흥미로웠던 점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자명한 진리(?)를 현실적으로 풀어낸 부분이었다. 나는 사실 취집을 가는 여성들에 대한 적지 않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저렇게 자신의 가치를 포기하며 살고 싶을까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하다가도 나도 저렇게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은근슬쩍 앞의 비판이 자격지심에서 비롯한 것임을 드러냈다. 나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상기시키는 사람을 대하면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불편해(250~251쪽)'지고 스스로 '다른 여성의 선택에 위협을 느껴(253쪽)'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사회적 공헌을 무시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변화이다. 내가 이 책에 감사하는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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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자신이 직장에서 기울이는 노력을 동료들, 대개 남성 동료들과 비교한다. 남성은 집에서 하는 일이 여성에 비해 훨씬 적은데도 말이다. 밖에서 일하는 여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집 안에서 기울이는 노력을 가족에게만 헌신하는 전업주부와 비교하기까지 한다.(190쪽) |
남과의 비교가 인생을 좀먹는다는 것은 누누이 들어왔지만 이 책은 다른 방향에서 내 인생에 경종을 울렸다. 한동안 이 책에 대해 생각할 것 같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