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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나쁜 부자들 - 부자들의 99%는 나쁘다
안재만 지음 / 참돌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1. Prologue
2011년, 나는 나꼼수와 청춘콘서트를 만난다. 그냥 착하게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을 갖고 살던 나에게 굉장히 억울한 깨달음을 주었던 고마운 이들이다. 이 나라의 소위 권력층이란 사람들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그 속에서 청춘으로 살아남기 위해 정신적으로 어떻게 무장해야 할지 많이 생각하게 했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고 나의 정치적 식견이라는 것이 너무도 미미한 것이었구나 하고 다시 나만의 밀실로 숨어 들어가고 있던 차였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도 어언 반 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을 만난 건 뭐랄까? 사그러들던 사회에 대한 내 관심의 불씨를 지피기 위한 노력이랄까? ㅋㅋ
제목만 보고 '나쁜 부자놈(?)'들에 대한 고발이구나 추측하고 책의 중간 어디쯤을 촥하고 펼쳤는데 음... 거기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명함을 두 개 이상 파라? 합법적인 범주 안에서도 뒷돈을 챙길 수 있다;; 뭐 이런 느낌? 으잉? 이건 내가 원하던 내용이 아닌데;; 여기에서 이 책 읽기를 포기해야하나 어쩌나 하다가 에잇 하고 읽어가기 시작했는데 왜 하필 내가 처음 편 부분이 저런 부분이었을까 하마터면 많은 내용을 놓칠 뻔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한국의 아름다운 자본주의는 을들의 시체 위에 놓여 있다. 밑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나지만 위에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경제성장의 축배를 들고 있다. (27쪽)
2. 지하경제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 TV토론회에서 지하경제란 말을 잘못 사용했다가 된서리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땐 사실 나도 지하경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고 지하경제를 활성화 시켰다가는 뭔가 큰일이 나나보구나 정도만 생각했다. ㅋㅋㅋ 근데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명박 정부를 지나면서 국가 부채가 어마어마한 규모가 되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이런 점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기존 당의 이미지를 벗고 상당부분 복지에 힘을 쓸 것임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세수확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이것을 기존에 열심히 세금내던 국민들에게 더 뜯어내는 것은 누가 봐도 가혹하므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돈을 끄집어 내려는 노력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한 지하경제의 양성화는 내 눈에는 너무도 불가결한 것인데 '있는 자'들의 눈에는 쓸데없는 짓이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아가려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나보다. 필자는 이렇게 전한다. "진짜 지하경제와 전쟁을 치르게 되면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 이상으로 '있는 자'들로부터 공격받는 정부가 될 것이다"라고.
정당하게 살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생기는 사회는 가능성마저 잃게 된다는 것을 윗분들은 아실는지.(124쪽)
3. 가진 자들의 횡포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은 초반에 나온 '어느 청년 편의점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처럼 투명한 지갑을 들고 꼬박꼬박 누군가 쥐어주는(?) 돈을 갖고 아둥바둥 사는 사람은 가진 자들의 횡포를 직접적으로는 느끼지 못한다. 간접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며 살 뿐이다. (최근 너목들이란 드라마를 보면서도 힝; 없는 사람이 고용하는 국선전담변호사는 절대 저렇게 열심히 변호해주지 않을 거다. 결국 법도 있는 사람들 편이구나 하는 걸 느끼는 뭐 이정도;;) 그런데 이 청년 편의점주의 자살 이야기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이세상의 아픈 부분을 보게 해 주었다. 본사와 가맹점주 간의 갑을관계는 하루이틀 일이 아닐 것이지만 한 청춘을 끝으로 몰고간 횡포는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남양유업 사태가 공분을 일으키고 권력을 남용하는 그들의 모습에 분노를 터뜨리면서도 그들의 영원한 '을'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이제 조금은 더 가까이에서 그들의 아픔을 살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동네 파리바게뜨, 미니스톱... ㅠ)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 씨와 박경철 씨가 우리나라의 이상한 기업행태에 대해 말했을 때,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하는 질낮은 우리나라 재벌들의 졸부근성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서도 그와 비슷한 재벌들의 일감 몰아주기, 조세피난처, 정부에 대한 로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든 내가 가진 재산을 떼어먹히지(?) 않고 자식에게 증여하려는 재벌들의 눈물겨운 사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조세피난처는 이 책에서 제일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 가장 최근의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최근 jtbc 썰전에서 전두환 전대통령 자택 압수수사에서 발견된 불상을 옮기는 사진이 이 주의 사진으로 소개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기상천외한 재산지키기가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가 된다.
독자들도 여러 번 봤을 것이 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 사례인 영국 이튼 칼리지 졸업생 2000명 전사 사건.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둘째 손자이자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 왕손도 이 이튼 칼리지 출신이며,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했다. 우리는 과연 언제쯤 그들의 희생을 볼 수 있을까? '나 혼자 생고생하고 있다'는 믿음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만연해지면 그 사회는 결국 무너진다.(216쪽)
4. Epilogue
저자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 고군분투한 느낌이 든다. 나와 같이 나쁜 부자들의 실체를 알고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과 동시에 지금부터라도 나쁜 부자들처럼 살아 재산을 불리고 싶은 사람이 모두 이 책을 읽고 만족하게 하고 싶었달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이 한 편 한 편은 살아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엮이는 과정에서 죽어버렸단 느낌이 들었다. 전체를 하나로 녹이는 느낌이 부족한 탓이다. 그러나 고발적 문체와 인간적인 정서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점은 만족한다.
가장 최근의 이슈까지 다루고 있어 마치 오늘자 신문 칼럼을 읽는 것같은 생생함까지 느낄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읽으시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