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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조지 오웰의 《1984》
현 사회가 차츰 닮아가는 세상 -
빅 브라더, 오브라이언, 윈스턴, 줄리아 《1984》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이다. 평화부, 진리부, 애정부, 풍부부 이 책에 나오는 주요기관들이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 당의 세 가지 선전 문구다. 텔레 스크린, 마이크로폰, 스파이단, 사상경찰, 감시와 통제를 위한 시설과 인력들이다. 2분 증오, 증오주간, 숙청, 증발,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실시되는 일들이다.
당과 빅 브라더가 하는 일이 완벽하다는 사실을 깨지 않기 위해 과거가 계속 조작되어지고 이전의 증거들은 말살한다. 저속한 노래를 만들어 보급 유통 시키고 산업은 항상 초과달성으로 보도한다. 서로 감시하고 고발해서 언제 어디서 체포 구금을 당할지 알 수 없다. 잠꼬대와 표정까지도 유죄의 근거가 되고, 유·무죄의 명확한 기준이 없다.
권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인간과 진리는 발붙일 곳이 없다.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려고, 물품의 소모를 위해 전쟁을 하고 전쟁은 끝나지 않는 통치의 수단이다. 언어는 점차 줄어들고 사고는 단순해진다. 신념을 품고 저항하며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세뇌되어 만족한 상태로 원해서 죽음을 맞이한다. 공동의 적을 가지고 늘 어려움 속에 살며 증오가 근본 에너지가 된다.
미래가 점점 좋아져 이상적인 세상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는 예상과 기대의 반대편에서 디스토피아, 끔찍한 세상을 그린 소설《1984》가 보여주는 우리의 앞날이다. 그렇게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 정도까지야 가겠나. 걱정스러운 것은 현실이 소설의 사회를 닮아간다는 점이다. 소설은 전제주의, 전체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모습을 그린 것 같지만 자본주의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과거에는 염려 속에 경고의 의미가 강했다면 이제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실생활로 다가오고 있다는 게다.
언뜻언뜻 들리기는 중국에서 범죄예방과 범인검거를 위해 생체정보를 이용하는데 몇 초에 전 국민의 신상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고 한다. 컴퓨터의 성능이 나날이 개선되어 기계로 하지 못할 영역이 급속도로 축소되어 간다. 숨을 곳은 없어지고, 찾아내는 시간이 더욱 단축되는 게다. 이게 바람직한 발전이요 좋다고만 볼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다는데 심각한 우려가 있다. 정보력을 좌우하는, 기술력이 강한 개인이나 집단의 영향력이 점점 증대되어 마침내는 모든 것이 그의 수중에 들어가고 마음대로 통제 감시되고 조작 관리될 수 있다는데 섬뜩함이 있다.
소설 속에 윈스턴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들, 특히 중상류층에게 어느 순간, 그 어디도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다. 진실은 기억할 수 없고 그대로 행동할 수도 없다. 가정도 결코 안전하지 않고 가족을 믿을 수 없다. 남녀 간의 사랑도 허락을 받아야 하고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사소한 일에도 생명을 걸어야 하고 결과는 항상 비극적이다. 급속한 과거와의 단절이 통치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실재하지 않으면서 실재하는 빅 브라더, 은밀히 한 편인 듯하지만 그것마저 통치의 한 수단이 되는 오브라이언, 육체의 고통 속에 인격적 말살과 어쩔 수 없는 배신을 하고 감정조차 말라버린 윈스턴과 줄리아, 그 어디에도 구원의 빛은 보이지 않고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 희망은 애초에 없으니 기대하지 말라는 투다.
몇 해 전에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 시합을 했다. 언론들은 그래도 감(感)에 있어서 이세돌이 유리할 것이니 인간에게 승산이 있을 것 같다고 했었다. 단순히 말하면 어림셈이 더 나을 거란 얘기지만 컴퓨터에게 어림셈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단 단위까지 순간에 정확하게 답을 내니 감이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게다. 인간이야 망각을 하고 왜곡도 일어나지만 기계야 그런 게 없으니 백번을 물어도 긴 시간이 흘러도 정확한 답이 나온다. 인간의 힘과 기능이야 한계가 분명하지만, 기계는 부피가 작아지고 용량이 늘어남이 눈부신 속도로 이루어지니 인간이 당해낼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곧 인간이 백전백패(百戰百敗)하는 때가 온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기능에 밀려 많은 일자리를 빼앗겼다. 저비용 고효율이라 하지만 거의 전 분야에서 밀려나는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인간이 결정적으로 이 분야는 낫다고 할 것이 급속히 줄어들게다. 아직은 인간의 통제를 받는다고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기계끼리 모든 걸 처리하는 완전자동화의 시대가 올 것이고 그들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 인간을 가볍게 넘어서게 될 것이다. 그러면 《1984》에서 보여주는 인간에 의한 지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상상하기 어려운 세상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통제하기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생명이 공장에서 양산될지 모른다.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알기 어려운 세상, 잘 못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시대를 얼마 안가 맞이할 수 있다. 어쩌면 불행한 앞날을 보면서도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지도 못하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어리석은 종(種)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