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 근래 웬만한 식당은 “물이나 밑반찬은 셀프 SELF”로 가져다 먹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편리하고 또 효과적이라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인식을 가장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음식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퍼다 먹는 부페식 식당이 인기를 누리고 괜찮은 외식 코스로 자리잡은 것을 보면, 우리는 이미 셀프를 스스로[셀프로] 내면화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저자는 셀프 권하는 사회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세세하게 추적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셀프 헬프(self-help, 자조)의 뿌리는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자기계발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미 대륙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요청될 수밖에 없었던 ‘동기부여’의 동력원으로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기계발 또한 195, 60년대 폐허에 가까웠던 토양에서 먹고 살기 위한 부를 축적하는데 필요한 동기부여로서 출발한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 시작된 자기계발은 사회가 발전하고 황무지가 도시가 된 이후에도 거짓된 필요를 강요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왜? 그것이 사회의 기득권층에게 이로우니까. 예컨대 필자가 예시하듯이, 기업의 CEO에게 이로운 직원은 솔선수범해서 회사일에 매진하고, 회사가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알아서 동기부여를 박카스마냥 쭉쭉 들이켜 스스로 일의 능률을 높이는 그런 직원인 것이다.
온갖 열정의 수사와 희망의 서사로 치장한 자기계발은, 사실 식당에서 알아서 스뎅컵에 정수기 물을 따라 마시는 몸짓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그 몸짓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류도 다양하게 그 몸집을 한껏 불린 자기계발 시장을 우리는 아무런 비판도 의문도 없이, 때로는 얼마 없는 자비를 털어가면서까지 소비하고 있다.
그래서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일차적으로는 무분별한 자기계발 소비를 지양할 것을, 이차적으로는 자기계발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쌓을 것을, 그러니까 나를 채찍질하지 말고 사회를 국가를 채찍질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책이며 강의며 예능까지 자기계발의 담론으로 칠갑된 작금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책은 불온하게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불온한 감정이야말로 바로 나를 돌아보고 이 사회를 돌아보는 성찰의 출발점이다. 물음표의 끝이 왜 굽어 있겠는가. 뒤를 돌아보고 안을 들여다보는 인간의 고뇌와 성찰을 형상했기 때문이다. “물은 셀프”의 ‘셀프’를 돌아보고 “힐링캠프”의 ‘힐링’을 뜯어볼 때, 그러니까 너무나 당연시되는 것들을 애써 굽어보기 시작할 때에야 진정한 변화는 가능하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당연함에 물음표를 던지는, 불온한 만큼 정당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