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과 1950년대 -하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6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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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식①] 두 가지의 학살의 원인

  저자는 학살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대량학살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보장되었는가하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다른 말로 그것을 “제노사이드적 정책”이라 볼 수 있다.

  학살 행위는 분명히 인륜을 저버린 범죄 행위이다. 아무리 학살 가해자들이 전쟁과 살인의 광기에 휩싸였다 하더라도 그 배후에 국가나 국가에 준하는 집단의 용인과 옹호가 없다면 학살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제노사이드 연구에 따르면 모든 제노사이드의 공통점 중 하나에는 바로 이 제노사이드적 정책이 존재한다고 한다. 책에서는 국가에 의해 학살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정책들을 따로 제노사이드적 정책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살의 원인을 제공한 이승만정권의 정책들을 이 하나의 개념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쟁의 발발 이후 후방의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창단된 11사단은 거창 신원면 학살 사건으로 유명하다. 11사단의 사단장은 최덕신인데, 그는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부대에게 견벽청야 작전을 명한다. 견벽청야 작전은 일제 만주군의 3광 작전에 유래한 것이다. 최덕신 본인도 일본군 출신이다. 후방 지역의 적군과 민간인을 가릴 거 없이 작전 대상으로 여기는 초토화작전은 대표적인 제노사이드적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제노사이드적 정책은 보상정책과 지휘관들의 전과욕(戰果欲)이다. 한국전쟁 중 만들어진 남부지구 경비사령부는 빨치산을 생포하거나 사살하면 병사들에게 훈장을 주었다. 서남지구 전투경찰대사령부는 현찰로 10만 환 정도의 보상을 주었다.

  문제는 입산하여 게릴라 작전을 펼치는 빨치산을, 그렇다고 군대처럼 특정 유니폼을 지니고 있지 않은 그들을 쉽사리 생포하거나 사살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제노사이드적 정책 외에 또 하나의 원인은 공권력과 테러의 결합이다. 이 결합은 대량 학살이 발생하는 조건을 마련한다. 주목할 점은, 이 학살의 조건들이 전쟁 이전 즉, 미 군정기에 배태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해방 이후 극우에 의해 자행된 테러 사건들을 주목한다.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후 그 해 여름에 암살된 여운형의 경우가 대표적인 테러 피해자이다. 그는 해방 이후 암살될 때까지 10여 차례의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군인과 경찰에 의해 자행된 테러사건들은 그 정도가 지나쳤다. 전라도에서는 독촉국민회 가 적색마을로 여겨지는 마을에 찾아가 백색테러를 가하는 일이 많았다. 이들은 전북 완주군, 부안, 나주, 함평 등에 가서 사상전환서 작성과 독촉국민회 가입을 핑계로 마을 주민들을 괴롭힌 것이다. 오죽했으면 당시 한 신문은 남한 사회에 만연한 테러들을 자제하자는 논설을 싣기도 했다.

  이렇게 빈번히 자행된 테러들을 저자는 “테러의 습성화”라 부른다. 문제는 반공을 매개로 공권력과 결합된 것이다. 그리하여 공권력은 테러 활동을 용인하거나 장려한다. 공권력의 테러화는 1946년 대구에서 일어난 10월 항쟁에 대한 폭력적 진압과 4.3 이후 제주도에서 잔혹한 행위를 하는 서북청년단에 대한 국가의 용인에서 볼 수 있다.

  결국, 전쟁 시기에 학살을 자행하게 되는 군인과 경찰, 청년단, 국가의 공권력은 이미 미군정 시기에 테러의 습성화와 결합을 통해 학살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학살 조건의 마련에 있어 미군정 또한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한다. 해방 이후 세워진 군대와 경찰 조직은 일제 식민지 시기와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친일파이기 때문이다.

  11사단의 지휘관인 최덕신의 경우와 같이 일제시기에 군대 또는 경찰 경험이 있는 자는 초토화작전이나 예비검속 등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남한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군정이 이들을 대부분 등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테러를 방조했다.

  제주 4.3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 47년 3.1시위의 강제 진압에 있어서 제주도 군정청 경찰고문관인 패드리치 대위의 개입이나, 김익렬과 김달삼의 평화회담을 무산시킨 오라리 방화에 대한 미군의 촬영물, 제주4.3사건의 원인은 관심은 없고 오로지 진압만이 관심이라고 말한 브라운의 입장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의식②] 학살의 정치학

  학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극우반공체제와 관련이 있다. 저자는 학살이 극우반공체제의 공고화에 기여를 했다고 보고 있다. 극우반공체제의 공고화에 있어서 학살이 제공한 메커니즘은 2가지가 있다.

  학살 기억에 대한 공포, 즉 “기억의 공포”는 극단적 죽음에 대한 경험으로 학살의 생존자나 경험자는 공권력에 대한 절대적 공포를 가지게 한다. 이 공포는 극우반공체제를 전면적으로 내면화시킨다. 제주도4.3사건, 전국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학살된 보도연맹사건, 부역자처리, 제2전선에서의 민간인 학살 등 학살에 대한 경험이 없는 지역은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내면화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경남 남해 보도연맹원으로 학살된 형을 가진 심옥천은 연좌제의 피해자 중 한명이다. 그의 아들이 경찰대학을 2차까지 붙고 3차에서 떨어지면서 그는 자신의 형의 무덤을 파며 항의하기도 했다.

  심옥천의 연좌제 피해 사례처럼 학살 경험자들은 전쟁 이후에도 끊임없는 감시와 차별을 받았다. 이러한 경험은 “피해의식”을 가지게 하며 극우반공체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공고화된 극우반공체제는 다른 말로 국가보안법체제라 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에게 침묵의 언어를 요구한다. 이 법을 체제의 근간으로 한 남한 사회는 북에 대한 지식이나 정부에 대해 비판적 안목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없게 만든다. 무지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 무지를 통해 우리는 정체성의 상실을 가지게 된다.

  제주도4.3이 북의 노동당의 사주에 의해 일으켜졌다는 공산당 폭동론이나 제주도의 학살 중 가장 큰 피해로 유명한 북촌사건에 대한 오류에서 볼 수 있듯이 학살에 의해 공고화된 극우반공체제는 무지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왜곡까지 자행한다.

  극우반공체제의 공고화는 그 밖에 부역자처리와 한국형 파시즘 동원체제인 북진통일운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 체제는 무지와 왜곡의 체계화를 통해 학살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하는 야만성의 사회를 만들었다.

  학살의 정치학은 학살을 통해 공고화된 극우반공체제가 이후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해자가 의도했든 안했든 분명 전쟁 전후에 있었던 학살은 우리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무지를 통한 정체성의 상실을 되찾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왜곡에 맞서야 한다. 친일파 청산 실패로 인한 무책임의 정치, 학살에 대한 사회적 마비 등 야만성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어있는 책의 결론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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