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과 1950년대 -하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6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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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식①] 두 가지의 학살의 원인

  저자는 학살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대량학살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보장되었는가하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다른 말로 그것을 “제노사이드적 정책”이라 볼 수 있다.

  학살 행위는 분명히 인륜을 저버린 범죄 행위이다. 아무리 학살 가해자들이 전쟁과 살인의 광기에 휩싸였다 하더라도 그 배후에 국가나 국가에 준하는 집단의 용인과 옹호가 없다면 학살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제노사이드 연구에 따르면 모든 제노사이드의 공통점 중 하나에는 바로 이 제노사이드적 정책이 존재한다고 한다. 책에서는 국가에 의해 학살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정책들을 따로 제노사이드적 정책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살의 원인을 제공한 이승만정권의 정책들을 이 하나의 개념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쟁의 발발 이후 후방의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 창단된 11사단은 거창 신원면 학살 사건으로 유명하다. 11사단의 사단장은 최덕신인데, 그는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부대에게 견벽청야 작전을 명한다. 견벽청야 작전은 일제 만주군의 3광 작전에 유래한 것이다. 최덕신 본인도 일본군 출신이다. 후방 지역의 적군과 민간인을 가릴 거 없이 작전 대상으로 여기는 초토화작전은 대표적인 제노사이드적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제노사이드적 정책은 보상정책과 지휘관들의 전과욕(戰果欲)이다. 한국전쟁 중 만들어진 남부지구 경비사령부는 빨치산을 생포하거나 사살하면 병사들에게 훈장을 주었다. 서남지구 전투경찰대사령부는 현찰로 10만 환 정도의 보상을 주었다.

  문제는 입산하여 게릴라 작전을 펼치는 빨치산을, 그렇다고 군대처럼 특정 유니폼을 지니고 있지 않은 그들을 쉽사리 생포하거나 사살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제노사이드적 정책 외에 또 하나의 원인은 공권력과 테러의 결합이다. 이 결합은 대량 학살이 발생하는 조건을 마련한다. 주목할 점은, 이 학살의 조건들이 전쟁 이전 즉, 미 군정기에 배태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해방 이후 극우에 의해 자행된 테러 사건들을 주목한다.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후 그 해 여름에 암살된 여운형의 경우가 대표적인 테러 피해자이다. 그는 해방 이후 암살될 때까지 10여 차례의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군인과 경찰에 의해 자행된 테러사건들은 그 정도가 지나쳤다. 전라도에서는 독촉국민회 가 적색마을로 여겨지는 마을에 찾아가 백색테러를 가하는 일이 많았다. 이들은 전북 완주군, 부안, 나주, 함평 등에 가서 사상전환서 작성과 독촉국민회 가입을 핑계로 마을 주민들을 괴롭힌 것이다. 오죽했으면 당시 한 신문은 남한 사회에 만연한 테러들을 자제하자는 논설을 싣기도 했다.

  이렇게 빈번히 자행된 테러들을 저자는 “테러의 습성화”라 부른다. 문제는 반공을 매개로 공권력과 결합된 것이다. 그리하여 공권력은 테러 활동을 용인하거나 장려한다. 공권력의 테러화는 1946년 대구에서 일어난 10월 항쟁에 대한 폭력적 진압과 4.3 이후 제주도에서 잔혹한 행위를 하는 서북청년단에 대한 국가의 용인에서 볼 수 있다.

  결국, 전쟁 시기에 학살을 자행하게 되는 군인과 경찰, 청년단, 국가의 공권력은 이미 미군정 시기에 테러의 습성화와 결합을 통해 학살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학살 조건의 마련에 있어 미군정 또한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한다. 해방 이후 세워진 군대와 경찰 조직은 일제 식민지 시기와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친일파이기 때문이다.

  11사단의 지휘관인 최덕신의 경우와 같이 일제시기에 군대 또는 경찰 경험이 있는 자는 초토화작전이나 예비검속 등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남한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군정이 이들을 대부분 등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테러를 방조했다.

  제주 4.3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 47년 3.1시위의 강제 진압에 있어서 제주도 군정청 경찰고문관인 패드리치 대위의 개입이나, 김익렬과 김달삼의 평화회담을 무산시킨 오라리 방화에 대한 미군의 촬영물, 제주4.3사건의 원인은 관심은 없고 오로지 진압만이 관심이라고 말한 브라운의 입장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의식②] 학살의 정치학

  학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극우반공체제와 관련이 있다. 저자는 학살이 극우반공체제의 공고화에 기여를 했다고 보고 있다. 극우반공체제의 공고화에 있어서 학살이 제공한 메커니즘은 2가지가 있다.

  학살 기억에 대한 공포, 즉 “기억의 공포”는 극단적 죽음에 대한 경험으로 학살의 생존자나 경험자는 공권력에 대한 절대적 공포를 가지게 한다. 이 공포는 극우반공체제를 전면적으로 내면화시킨다. 제주도4.3사건, 전국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학살된 보도연맹사건, 부역자처리, 제2전선에서의 민간인 학살 등 학살에 대한 경험이 없는 지역은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내면화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경남 남해 보도연맹원으로 학살된 형을 가진 심옥천은 연좌제의 피해자 중 한명이다. 그의 아들이 경찰대학을 2차까지 붙고 3차에서 떨어지면서 그는 자신의 형의 무덤을 파며 항의하기도 했다.

  심옥천의 연좌제 피해 사례처럼 학살 경험자들은 전쟁 이후에도 끊임없는 감시와 차별을 받았다. 이러한 경험은 “피해의식”을 가지게 하며 극우반공체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공고화된 극우반공체제는 다른 말로 국가보안법체제라 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에게 침묵의 언어를 요구한다. 이 법을 체제의 근간으로 한 남한 사회는 북에 대한 지식이나 정부에 대해 비판적 안목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없게 만든다. 무지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 무지를 통해 우리는 정체성의 상실을 가지게 된다.

  제주도4.3이 북의 노동당의 사주에 의해 일으켜졌다는 공산당 폭동론이나 제주도의 학살 중 가장 큰 피해로 유명한 북촌사건에 대한 오류에서 볼 수 있듯이 학살에 의해 공고화된 극우반공체제는 무지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왜곡까지 자행한다.

  극우반공체제의 공고화는 그 밖에 부역자처리와 한국형 파시즘 동원체제인 북진통일운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 체제는 무지와 왜곡의 체계화를 통해 학살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하는 야만성의 사회를 만들었다.

  학살의 정치학은 학살을 통해 공고화된 극우반공체제가 이후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해자가 의도했든 안했든 분명 전쟁 전후에 있었던 학살은 우리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무지를 통한 정체성의 상실을 되찾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왜곡에 맞서야 한다. 친일파 청산 실패로 인한 무책임의 정치, 학살에 대한 사회적 마비 등 야만성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어있는 책의 결론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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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 삶을 위한 죽음의 연구
허버트 허시 지음, 강성현 옮김 / 책세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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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제의식①] 기억의 정치성

  저자는 기억의 정치성에 주목하고 있다. 국가는 기억을 조작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기억을 조작하는 이유는 국가의 통제를 원활히 이루기 위함이다. 국가의 지도와 훈육에 순종하는 시민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지속성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개인의 기억은 개인의 고유한 영역이 아니라 집단적 기억의 맥락에 있다는 것이다. 기억을 바탕으로 구성된 역사는 역사를 쓴 사람의 선택력, 즉 패러다임․이데올로기․시각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국가가 기억을 조작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은 언어이다. 언어는 “인식의 기초를 형성하는 이데올로기와 신화의 전달자이자 형성 요인(264쪽)”이기 때문이다. 집단이 구성될 때에는 언어를 매개로 한다. 언어를 통해 사회적 약속을 형성하여 질서와 문화를 수립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역사는 재구성된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규율과 가치관에 맞는 내용들로 구성된다. 역사를 통해 공식화된 기억은 바꾸어 말하면 신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역사와 신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화의 내용은 사회화를 거쳐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신화는 대량 학살이 발생할 수 있게 하는 “절멸의 언어”의 형성 요인이 된다. 결국, 모든 국가는 조작된 기억을 필요로 하고 이 조작 과정을 통해 신화가 창출된다는 점에서 대량 학살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잠재적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억의 조작은 정치권력의 한 형태이다. 국가의 규율에 적합한 순종적이고 모범적인 시민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 조작을 바탕으로 국가의 정당성을 받쳐주는 국가 신화가 탄생한다.

  그러면 기억이 무엇이기 때문에 국가는 기억을 조작하려는 것인가. 기억은 현실 인식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억은 현재를 규정짓는 역사의 주요 구성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조작되어지고 통제되었다는 것은 지난날 독재 정권에 의해 빨갱이담론이 재생산되고 지역주의가 정치인들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민주화를 계기로 다원화된 사회로 발전했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기억에 대한 국가의 간섭은 약해졌지만, 최근 뉴라이트에 의해 생긴 “국사교과서 파동”은 이러한 기억 조작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식②] 마비된 학문  

 

  저자는 제노사이드를 분석의 대상으로 보지 말 것을 요구한다. 책 뒤에 역자는 저자를 소개하는 글을 따로 싣고 있다. 그 중에 저자가 제노사이드를 연구라는 목적을 저자의 다른 책에서 인용하고 있다.

“제노사이드 연구는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인간 삶의 파괴를 방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방법론은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349쪽)”

  즉, 그는 제노사이드를 인간의 삶을 위한 차원에서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제노사이드를 단지 과학적 엄밀함만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회과학적 방법에 대해서 주의를 준다.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창안했으며, 1948년 UN에서 채택된 제노아시드 협약이 통과되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친 라파엘 렘킨의 제노사이드 이해에서 출발한 제노사이드 연구는 렘킨이 정의한 제노사이드와 이를 축약하여 받아들인 제노사이드 협약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벌인 제노사이드 논쟁 속에 저자가 없다는 점은 이를 시사한다. 저자는 제노사이드가 뭔가라는 정의에 대해 소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노사이드 이해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제노사이드라는 궁극적 인간 파괴 행위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듣자는 것이다. 생존자들의 기억과 이에 대한 역사화는 “망각에 대항한 기억의 투쟁”이 된다.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당시 있었던 일들을 글로 고발하고 이를 계기로 제노사이드를 연구한 “프리모 레비”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레비는 궁극의 비인간화에 대한 자신의 경험들을 증언함으로 생존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잠재적 제노사이드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대량 학살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공포를 주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와 단 2발의 위력으로 두 도시를 파괴하고 전쟁을 종결시킨 핵폭탄이 그것이다. 홀로코스트와 핵폭탄의 관계를 통해 제노사이드 연구의 한 지평은 연 로버트 제이 리트턴은 “마비”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마비는 인간 삶의 반복적인 파괴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핵심적 개념이다. 리프턴은 이러한 마비는 전문가들에게 더 현저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여기서 전문가라 함은 제노사이드 연구자를 의미하는데, 인간 삶의 파괴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상대화시켜 분석하기 때문이다.

  리프턴의 마비 개념을 설명하는 저자의 입장에서 제노사이드에 대한 그의 연구 입장을 알 수 있다.

[문제의식③] 기억과 제노사이드

  기억은 제노사이드, 대량 학살이 발생하게 하는 요인을 형성한다. 기억이 가지고 있는 정치성 때문이다. 국가에 의해 조작된 기억은 국가 신화를 창출한다. 미국 건국 아버지에 대한 무오류성을 공유한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국민국가 형성에 대한 정치적 신화를 구성하려는 국가의 욕망을 지적한다.

  이 신화는 대량 학살이 가능하게 하는 “절멸의 언어”를 형성하는 요인이 된다. 절멸의 언어는 국가 신화에 의해 정의된 외부 집단을 부정적 특성화, 비인간화시킨다.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부정적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악의 힘과 결탁한 존재, 주인의 신성을 더럽히는 존재, 집 없는 방랑자, 더러운 존재, 고리대금업자, 혁명적인 존재, 공산주의자, 자본가, 우물에 독을 풀고 기독교인의 아이들을 죽여 그 피를 의례에 사용하는 존재” 등으로 불렀다.

  비인간화된 외부 집단에 대한 부정적 상징은 학살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비인간화1) 과정 속에 인종주의적 용어와 더불어 색깔 상징주의 사용을 수반한다고 했다. 빨간 색을 공산주의와 연관시켜 독재에 불온한 발언을 하거나 행위를 한 자들을 인간의 사회적 삶을 포기하게 만든 “빨갱이”담론 역시 이러한 비인간화 과정의 한 예일 것이다.

  국가 신화는 또한 절대 복종을 요구한다. 복종은 대량 학살에 심리적 조건을 마련한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히만이다.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진 정치사상가인 한나 아렌트는 1960년대 초반 전범 재판을 받는 아이히만을 관찰한 결과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학살의 가해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이 행하고 있는 행위가 악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하는 이유를 복종에서 찾고 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을 통해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권위에의 복종은 공공 교육 체계를 통해 정치적 사회화로 재생산된다. 저자는 책에서 나치가 독일 소년, 소녀들에게 어떠한 교육을 행해왔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재생산 과정을 통해 억압과 부정의를 무시하는데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기억은 국가에 의해 조작되어져 국가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국가 신화로 탈바꿈된다. 이 신화는 대량 학살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마련하는데, 학살 대상을 비인간화시켜 학살 행위를 정당화하는 절멸의 언어와 권위에의 복종 등이 그것이다.

[문제의식④] 도덕적 상상력

  저자는 인간 삶의 파괴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제노사이드를 연구한다. 하지만 생존자의 이야기와 증언은 대량 학살에 대한 문제의식은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파괴의 예방 그 자체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규약상 의무가 있는 국제주의(260, 268쪽)”를 제시한다.

  규약상 의무가 있는 국제주의는 인류 공통의 인권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독립선언2), 프랑스의 인권선언 등의 인권의 역사적 기초 위에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것이다. 즉, 완전한 인간성을 교육하는 체계를 갖자는 것이다.

  저자는 리프턴과 마터슨의 “종의 심성”과 켈먼과 해밀턴의 “권위의 탈집중화”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국가적 인식을 벗어나 국제적․인간적 인식을 갖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뭔가 공감을 일으키기 어려운 느낌이 든다. 278쪽에 매컬로라는 사람의 “타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윤리적 행위에 대한 창조적 가능성을 식별하는 능력”인 도덕적 상상력을 언급하는데, 오히려 제노사이드 연구의 대안에 있어서 이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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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새마을운동 - 한 마을과 한 농촌운동가를 통해 본 민중들의 새마을운동 이야기
김영미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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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로 유명한 새마을운동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억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기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보편적 기억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김영미의 <그들의 새마을운동>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역사학계의 첫 번째 연구서로서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1. [이 책의 문제의식 ①] - 대중의 역사화

  김영미는 이 연구서를 민중들의 생활세계와  경험세계를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라고 밝히고 있다. 책머리에 김영미는 기존 역사학의 한계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제도사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역사는 민중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생활사라는 분야가 나왔다. 문제는 생활사에 대한 많은 책들이 생산되었지만 주제와 소재가 빈곤하고 신변잡기적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이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학문이라 했을 때, 민중들의 삶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알자는 김영미의 주장은 역사학의 망각해버린 임무를 깨닫는 것이다. 새마을운동 전후의 이천시. 이 지역의 어느 한 농촌운동가. 이 두 가지는 <그들의 새마을운동>의 가장 큰 소재이다. 소재 자체뿐만 아니라 풀어가는 과정 자체도 국가나 정책적 영향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있다. 어느 역사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민중들의 삶과 이름만이 보일 뿐이다.  

  만약, 같은 소재라 할지라도 제도사적인 관점으로 접근했다면 분명 국가의 새마을정책이 어느 정당이나 정치 엘리트에 의해 주도되어 준비되었으며, 국제적․정치적․경제적 영향으로 어떻게 변천되었고, 이러한 결과로 이천시의 마을이 이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민중들의 수동성을 강조했을 것이다.

  역사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역사화하는 김영미의 문제의식은, 소통의 문제로 대중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상황 속에 하나의 대안적 연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이 책의 문제의식 ②] - 발견으로서의 새마을운동

  <그들의 새마을운동>을 읽으면서 문뜩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역사학 용어가 떠올랐다. 한국 역사의 타율성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식민 사학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내재적 발전론.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적 가능성이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김영미의 입장은 ‘새마을式 내재적 발전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미는 이천시의 아미리와 나래리라는 두 마을 그리고 이재영이라는 농촌운동가의 삶을 조명하면서, 박정희정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발견”된 새마을운동을 거론하고 있다.

  “새마을운동 이전에 새마을과 새마을의 지도자가 존재하고 있었다(363쪽)”

  “새마을운동은 ‘새마을’이 존재했기에 시도될 수 있었다(373쪽)”

  이천시의 아미리와 나래리 그리고 같은 지역에서 새마을운동을 주도한 이재영의 삶을 연구해본 결과, 1970년 정부의 대대적인 새마을운동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그 이전부터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공동체문화가 있었으며, 이것을 토대로 자생적인 농촌의 발전이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아미리는 전쟁 이후 근대적인 교육과 농촌에 대한 변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청년 이장들의 출현으로 50년대부터 농촌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러한 결과로 50년대에 정미조합을 결성했으며, 이것을 통해 마을의 공동재산을 축적했다. 아미리의 마을회관은 그렇게 모아진 돈으로 걸립한 건물이다.

  진주 강씨의 집성촌으로, 일제시대부터 저항적 성격이 강했던 나래리는, 막강한 문중 세력의 보수성을 극복하지 못해 새로운 공동체문화를 창조하지 못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 시기 자체적인 농업개발을 힘을 쓰면서, 관상수와 복숭아 재배를 통해 부농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천 지역을 중심으로 농촌운동을 벌인 이재영은 50년대부터 애향청년회라는 농촌계몽조직을 통해 자발적인 농촌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새마을“운동”이 있기 전에 한국의 농촌은 자발적인 농촌운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쿠테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정부는 자신들의 정당성과 정치적 위기의 해결, 농촌의 발전을 위해 기존의 “새마을”들을 국가가 주도하는 운동 속에 편입시킨 것이다.

3. [이 책의 문제의식 ③] - 역사의 연속성

  시간이라는 것은 유기적이다. 지금 현재는 과거화가 되고, 미래는 현재화가 된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발전 도식은 그저 인간이 구분한 경계선일 뿐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인과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뭔가 뚝하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새마을운동이 운동 이전에 있었던 농촌운동을 국가적 차원에서 포섭하여 운영했다는 김영미의 ‘발견으로의 새마을운동’도 어떻게 보면 역사의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영미는 이와 더불어 해방 이후 역사가 식민지 시기의 역사와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김영미의 입장을 잘 설명하는 것은, 해방 이후 주민들의 일상생화․사회운동․국가 수립이 식민지 유산을 토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그녀의 박사 논문이다. <동원과 저항>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한 그녀의 책은 <일제 전시파시즘期 조선민중의 현실인식과 저항>이라는 변은진의 박사학위논문과 더불어 역사의 연계성을 잘 보여주는 글이 아닐까 싶다.

  이천시의 아미리는 새마을운동 시기 두 번이나 자립마을로 표창을 받았다. 50년대부터 있었던 자생적인 공동체문화의 영향이다. 재미있는 것은 일제 시기 새마을운동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농촌진흥운동이 시행되었을 때도 아미리가 상을 받은 것이다.

  노구장으로 상징되는 아미리의 체제 순응적이고 근대 지향적인 마을의 특성이 이미 일제 시대에 형성되어 그것을 기반으로 새마을운동 시기에 두 번이나 대통령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연속선상에 있는 농촌진흥운동은 김영미에 의하면 2가지의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농촌에 대한 국가의 포섭을 위한 동원 메커니즘(336쪽). 다른 하나는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한 농촌의 위기를 농민의 게으름, 낭비 등으로 설명하는사사화(私事化)방식을 통해 체제에 대한 저항성을 거세시키는 것이다.

  김영미의 문제의식은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의 연속성에 대한 강조는 있었지 막상 그것을 실제적인 논증으로 풀어낸 것은 많지 않은 것 같가. 그러한 의미에서 김영미의 <그들의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에 시행된 새마을운동이 어떠한 역사적 연속성의 위에서 시행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연구서다.

   

4.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점

  김영미는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강조한다. 해방 이후의 사건, <그들의 새마을운동>에서 밝혔듯이 박정희정부에 의해 주도된 새마을운동은 적게는 1950년대, 길게는 일제 시대의 역사적 경험들을 기반으로 하여 생겨난 것이다.

  해방 이후 울산지역의 좌우대립과 그로 인한 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것을 논문의 주제로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에 접근방향은 해방 이후의 좌우의 대립이 그 이전에 어떠한 모습으로 싹트고 있었는가를 먼저 규명해야 해야 함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식민 시대 때 집단학살의 가능성의 맹아가 어떠한 과정으로 형성되어 한국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계기로 표출되었는가, 실제 보도연맹의 운영에 있어서 일제 시대 전향 단체인 사상보국연맹과 대화숙의 경험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등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있다.

  이승만 정부는 통합과 배제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민정체성을 확립시켰다. 보도연맹은 그러한 연장선상 위에서 처음에는 통합의 메커니즘을 통한 국민 만들기 작업이었다면,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는 배제를 통해 구현되었다. 정부 수립 이후 국민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작업들이 다수 이루어졌다. 그 중에 국민보도연맹은 대표적인 조치가 아닐까 싶다.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당연하지만 그 연속적 관계를 찾기가 어려운 이 문제가 다시 한 번 주어졌다. 통합과 배제라는 국민보도연맹이 해방 이전 일제 시대에 어떠한 역사적 기반으로 작동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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