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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새마을운동 - 한 마을과 한 농촌운동가를 통해 본 민중들의 새마을운동 이야기
김영미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로 유명한 새마을운동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억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기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보편적 기억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김영미의 <그들의 새마을운동>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역사학계의 첫 번째 연구서로서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1. [이 책의 문제의식 ①] - 대중의 역사화
김영미는 이 연구서를 민중들의 생활세계와 경험세계를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라고 밝히고 있다. 책머리에 김영미는 기존 역사학의 한계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제도사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역사는 민중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생활사라는 분야가 나왔다. 문제는 생활사에 대한 많은 책들이 생산되었지만 주제와 소재가 빈곤하고 신변잡기적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이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학문이라 했을 때, 민중들의 삶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알자는 김영미의 주장은 역사학의 망각해버린 임무를 깨닫는 것이다. 새마을운동 전후의 이천시. 이 지역의 어느 한 농촌운동가. 이 두 가지는 <그들의 새마을운동>의 가장 큰 소재이다. 소재 자체뿐만 아니라 풀어가는 과정 자체도 국가나 정책적 영향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있다. 어느 역사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민중들의 삶과 이름만이 보일 뿐이다.
만약, 같은 소재라 할지라도 제도사적인 관점으로 접근했다면 분명 국가의 새마을정책이 어느 정당이나 정치 엘리트에 의해 주도되어 준비되었으며, 국제적․정치적․경제적 영향으로 어떻게 변천되었고, 이러한 결과로 이천시의 마을이 이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민중들의 수동성을 강조했을 것이다.
역사의 대중화가 아닌 대중의 역사화하는 김영미의 문제의식은, 소통의 문제로 대중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상황 속에 하나의 대안적 연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이 책의 문제의식 ②] - 발견으로서의 새마을운동
<그들의 새마을운동>을 읽으면서 문뜩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역사학 용어가 떠올랐다. 한국 역사의 타율성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식민 사학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내재적 발전론. 조선 후기에 자본주의적 가능성이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김영미의 입장은 ‘새마을式 내재적 발전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미는 이천시의 아미리와 나래리라는 두 마을 그리고 이재영이라는 농촌운동가의 삶을 조명하면서, 박정희정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발견”된 새마을운동을 거론하고 있다.
“새마을운동 이전에 새마을과 새마을의 지도자가 존재하고 있었다(363쪽)”
“새마을운동은 ‘새마을’이 존재했기에 시도될 수 있었다(373쪽)”
이천시의 아미리와 나래리 그리고 같은 지역에서 새마을운동을 주도한 이재영의 삶을 연구해본 결과, 1970년 정부의 대대적인 새마을운동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그 이전부터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공동체문화가 있었으며, 이것을 토대로 자생적인 농촌의 발전이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아미리는 전쟁 이후 근대적인 교육과 농촌에 대한 변화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청년 이장들의 출현으로 50년대부터 농촌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러한 결과로 50년대에 정미조합을 결성했으며, 이것을 통해 마을의 공동재산을 축적했다. 아미리의 마을회관은 그렇게 모아진 돈으로 걸립한 건물이다.
진주 강씨의 집성촌으로, 일제시대부터 저항적 성격이 강했던 나래리는, 막강한 문중 세력의 보수성을 극복하지 못해 새로운 공동체문화를 창조하지 못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 시기 자체적인 농업개발을 힘을 쓰면서, 관상수와 복숭아 재배를 통해 부농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천 지역을 중심으로 농촌운동을 벌인 이재영은 50년대부터 애향청년회라는 농촌계몽조직을 통해 자발적인 농촌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새마을“운동”이 있기 전에 한국의 농촌은 자발적인 농촌운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쿠테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정부는 자신들의 정당성과 정치적 위기의 해결, 농촌의 발전을 위해 기존의 “새마을”들을 국가가 주도하는 운동 속에 편입시킨 것이다.
3. [이 책의 문제의식 ③] - 역사의 연속성
시간이라는 것은 유기적이다. 지금 현재는 과거화가 되고, 미래는 현재화가 된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발전 도식은 그저 인간이 구분한 경계선일 뿐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인과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뭔가 뚝하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새마을운동이 운동 이전에 있었던 농촌운동을 국가적 차원에서 포섭하여 운영했다는 김영미의 ‘발견으로의 새마을운동’도 어떻게 보면 역사의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영미는 이와 더불어 해방 이후 역사가 식민지 시기의 역사와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김영미의 입장을 잘 설명하는 것은, 해방 이후 주민들의 일상생화․사회운동․국가 수립이 식민지 유산을 토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그녀의 박사 논문이다. <동원과 저항>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한 그녀의 책은 <일제 전시파시즘期 조선민중의 현실인식과 저항>이라는 변은진의 박사학위논문과 더불어 역사의 연계성을 잘 보여주는 글이 아닐까 싶다.
이천시의 아미리는 새마을운동 시기 두 번이나 자립마을로 표창을 받았다. 50년대부터 있었던 자생적인 공동체문화의 영향이다. 재미있는 것은 일제 시기 새마을운동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농촌진흥운동이 시행되었을 때도 아미리가 상을 받은 것이다.
노구장으로 상징되는 아미리의 체제 순응적이고 근대 지향적인 마을의 특성이 이미 일제 시대에 형성되어 그것을 기반으로 새마을운동 시기에 두 번이나 대통령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연속선상에 있는 농촌진흥운동은 김영미에 의하면 2가지의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농촌에 대한 국가의 포섭을 위한 동원 메커니즘(336쪽). 다른 하나는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한 농촌의 위기를 농민의 게으름, 낭비 등으로 설명하는사사화(私事化)방식을 통해 체제에 대한 저항성을 거세시키는 것이다.
김영미의 문제의식은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의 연속성에 대한 강조는 있었지 막상 그것을 실제적인 논증으로 풀어낸 것은 많지 않은 것 같가. 그러한 의미에서 김영미의 <그들의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에 시행된 새마을운동이 어떠한 역사적 연속성의 위에서 시행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연구서다.
4.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점
김영미는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강조한다. 해방 이후의 사건, <그들의 새마을운동>에서 밝혔듯이 박정희정부에 의해 주도된 새마을운동은 적게는 1950년대, 길게는 일제 시대의 역사적 경험들을 기반으로 하여 생겨난 것이다.
해방 이후 울산지역의 좌우대립과 그로 인한 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것을 논문의 주제로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에 접근방향은 해방 이후의 좌우의 대립이 그 이전에 어떠한 모습으로 싹트고 있었는가를 먼저 규명해야 해야 함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식민 시대 때 집단학살의 가능성의 맹아가 어떠한 과정으로 형성되어 한국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계기로 표출되었는가, 실제 보도연맹의 운영에 있어서 일제 시대 전향 단체인 사상보국연맹과 대화숙의 경험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등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있다.
이승만 정부는 통합과 배제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민정체성을 확립시켰다. 보도연맹은 그러한 연장선상 위에서 처음에는 통합의 메커니즘을 통한 국민 만들기 작업이었다면,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는 배제를 통해 구현되었다. 정부 수립 이후 국민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작업들이 다수 이루어졌다. 그 중에 국민보도연맹은 대표적인 조치가 아닐까 싶다.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당연하지만 그 연속적 관계를 찾기가 어려운 이 문제가 다시 한 번 주어졌다. 통합과 배제라는 국민보도연맹이 해방 이전 일제 시대에 어떠한 역사적 기반으로 작동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