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기傳 - 활자 곰국 끓이는 여자
김미옥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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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성장과 성숙,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건네는 악수>

1. “인생에서 겪는 고통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고통스럽던 유년의 기억과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징징대고, 누군가는 삶의 마지막 자락까지 원망으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한다. 어떤 이는 칼날이 자신을 향하는 바람에 안으로 침잠하다 끝내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한다. 언젠가 어린 시절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던 친구에게 이런 글을 써준 적이 있었다.

- 어린 시절의 상처는 목구멍에 걸려 있는 유리 조각 같은 거래요. 따끔거리고 아파서 목 안쪽으로 넘기겠다고 침 꿀꺽 삼키면, 더 기승스런 이물감으로 목구멍의 여린 살갗을 긁어대는, 그런 유리 조각이래요.
그냥 평생 같이 한다고 생각하래요. 아주 없애버리거나 잊겠다고 결심하면 오히려 더 날을 세우고 기승스럽게 꿀렁댄대요.

맞다, 유년에 뚫려버린 빈 공간은 살아가는 동안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블랙홀로 존재한다. 유리 조각은 목구멍에서 평생 떨어지지 않고 시시때때로, 때로는 아주 가끔, 아니면 드문드문이라도 여린 안쪽 살을 날카롭게 긁어댄다. 세상 좀 오래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이별이란 것도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님을.
그러니 ‘상처’도 억지로 보내지 못한다. 그저 지긋이 들여다보다가 꼭 안아 줄 수밖에 없다. 단지 심통 난 못된 그놈이 너무 건방지게 현재의 내 삶을 휘젓지는 못하게, 소중한 사람들과 내 사이를 훼방 놓지는 못하게 꼭 안아서 달래주면 된다. 슬프지만 그러면 한동안은 그놈도 조용하게 있을 게다. 영원히, 아주 조용해지지는 않겠지만.

2.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미오기’라면 좀 알고 있다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이 말에는 좀 오해의 소지가 있기는 한데, 누가 나에게 어떤 이를 아느냐고 물어오면, 주로 ‘모른다’거나 ‘잘 알지 못한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바꿔 말해 내가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말이다. 주로 몇 년 이상 같은 사무실에서 일로 얽혔던 경우나 혹은 함께 살았던 경우(옆지기, 시부모님, 시누 등), 십여 년 이상을 친구로 밀접하게 지내온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잘 알지 못한다’, 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의 저자인 김미옥 샘과 같이 일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 친분 관계를 유지해 온 것도 아니며, 함께 산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는 말이다.
(사실 나의 이런 성향은 인맥을 중시하고, 없는 인맥이지만 뻥이라도 쳐서 아는 척을 해야 좀 돋보이는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불리하게 작동한다. 그러니 오늘날까지 이 모양 이 꼴로 사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내 꼬라지 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오기’라면 이미 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책을 받고 나서 목차를 훑는데 ‘미오기전’에 나오는 글들이 이미 이전에 다 읽은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내가 그녀의 페이스북 애독자였다는 말이다. 페북에 올라온 그녀의 서평도 물론 공부하듯 꼼꼼하게 챙겨 읽었지만, 나는 그녀의 글 중 특히 자신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는 글이 좋았다. 그런 글은 숨 한 번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그녀의 글을 보고 있으면 굵은 붓으로 거침없이 죽죽 그어대는 것 같지만, 그 끝자락에 커다란 모란 한 송이가 피어나는 듯하다.

3. 삶은 각자의 몫이지만, 유머를 품은 자는 이미 승리한 자이다.

'미오기전’은 김미옥 그녀가 인생에서 만난 상처와 슬픔, 아픈 기억과 화해하며, 결국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얼핏 이제까지 쏟아져 나온 수많은 에세이집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건, 김미옥이 ‘미오기’가 되는 과정은 통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며, 그 맵고 짜고 아프고 슬픈 그녀의 기억들이 그녀의 글 속에서 풀려나오는 방식 역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삶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들은 어째서 모두 다른지, 그리고 인생을 걸어가는 동안 자신에게 칼을 겨눈 자들에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자가 왜 마지막 승자인지를.
더군다나 이 책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김미옥이 '미오기’가 되는 사연은 그것이 어떤 사연이 되었든 어김없이 웃음으로 매듭지어지는 걸 볼 수 있다. 페북에서 읽을 때도 언제나 그녀 글의 마지막 부분이 좋았다. 유머를 품은 자는 이미 자신의 삶에서 이긴 자다. 그래서 ‘김미옥’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가 책을 내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녀는 ‘미오기전’로 화답을 했다.

4.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는 성숙함이 우리를 구원한다.

김미옥 작가의 '미오기전’은 단순한 에세이집을 넘어선다. 한 인간의 삶과 성장의 기록이다. 읽다보면 그녀가 아니라 읽는 사람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 (시어머니가) 갑자기 치매가 왔다. 그녀는 다른 며느리들 다 있는 데서 내게 욕을 퍼부었다.
“너는 김장을 해서 시누이에게 갖다 바친 적도 없는 나쁜 년이다.”
집안의 김장 비용은 내가 냈다.
그녀의 머릿속은 전근대와 현대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며느리란 살림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시집에 충성하며 남자에게 고분고분해야 했다. (p64-65)

그녀의 시어머니는 사실 다른 어떤 며느리보다 그녀를 편애했었다. 돈 잘 벌고, 유능하고, 잘나가는 그녀에게, 시어머니는 있지도 않은 점포를 주겠다고 뻥을 친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전,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자, 그동안 돈 잘 벌어 당당한 며느리에게 억눌렸던 가부장제가 부여한 갑으로서의 본능이 살아 꿈틀댄 거다. 아니다, 사실은 자신이 가부장제 하에서 받았던 상처만큼 되짚어 며느리에게 퍼부은 거다.

각자는 자기 몫만큼의 삶을 끌어안고 걸어간다. 단지 상대의 상처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건 결국 ‘내 안의 상처’를 보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발이 묶여 자라지 못한 아이는 여전히 오래 전 그 길바닥에서 징징거리며 자기 길을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점포를 가지고 뻥을 치던 그녀의 시어머니도,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미오기’를 시기 질투하며 입술을 앙다물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들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아직도 길바닥에서 떼를 쓰며 뒹굴고 있는 ‘오래전 그 아이’를 달래러 가는 건 어떨까 싶다.

그래서 그녀의 다음 말들을 오래 오래 곱씹어 본다.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간다.

- 서글픈 기억이 다시는 내 인생을 흔들지 않기를 바라며 쓴 글이다.
쓰다 보니 웃게 되었고 웃다 보니 유쾌해 졌다. (프롤로그에서)
- 나쁜 기억은 끝끝내 살아남는 무서운 생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마음을 열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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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지음 / 이유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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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생에서 겪는 고통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고통스럽던 유년의 기억과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징징대고, 누군가는 삶의 마지막 자락까지 원망으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한다. 어떤 이는 칼날이 자신을 향하는 바람에 안으로 침잠하다 끝내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한다. 언젠가 어린 시절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던 친구에게 이런 글을 써준 적이 있었다.
- 어린 시절의 상처는 목구멍에 걸려 있는 유리 조각 같은 거래요. 따끔거리고 아파서 목 안쪽으로 넘기겠다고 침 꿀꺽 삼키면, 더 기승스런 이물감으로 목구멍의 여린 살갗을 긁어대는, 그런 유리 조각이래요.
그냥 평생 같이 한다고 생각하래요. 아주 없애버리거나 잊겠다고 결심하면 오히려 더 날을 세우고 기승스럽게 꿀렁댄대요.
맞다, 유년에 뚫려버린 빈 공간은 살아가는 동안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블랙홀로 존재한다. 유리 조각은 목구멍에서 평생 떨어지지 않고 시시때때로, 때로는 아주 가끔, 아니면 드문드문이라도 여린 안쪽 살을 날카롭게 긁어댄다. 세상 좀 오래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이별이란 것도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님을.
그러니 ‘상처’도 억지로 보내지 못한다. 그저 지긋이 들여다보다가 꼭 안아 줄 수밖에 없다. 단지 심통 난 못된 그놈이 너무 건방지게 현재의 내 삶을 휘젓지는 못하게, 소중한 사람들과 내 사이를 훼방 놓지는 못하게 꼭 안아서 달래주면 된다. 슬프지만 그러면 한동안은 그놈도 조용하게 있을 게다. 영원히, 아주 조용해지지는 않겠지만.
2.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미오기’라면 좀 알고 있다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이 말에는 좀 오해의 소지가 있기는 한데, 누가 나에게 어떤 이를 아느냐고 물어오면, 주로 ‘모른다’거나 ‘잘 알지 못한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내가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말이다. 주로 몇 년 이상 같은 사무실에서 일로 얽혔던 경우나 혹은 함께 살았던 경우(옆지기, 시부모님, 시누 등), 십여 년 이상을 친구로 밀접하게 지내온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잘 알지 못한다’, 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의 저자인 김미옥 샘과 같이 일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 친분 관계를 유지해 온 것도 아니며, 함께 산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는 말이다.
(사실 나의 이런 성향은 인맥을 중시하고, 없는 인맥이지만 뻥이라도 쳐서 아는 척을 해야 좀 돋보이는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불리하게 작동한다. 그러니 오늘날까지 이 모양 이 꼴로 사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내 꼬라지 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오기’라면 이미 좀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책을 받고 나서 목차를 훑는데 ‘미오기전’에 나오는 글들이 이미 이전에 다 읽은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내가 그녀의 페이스북 애독자였다는 말이다. 페북에 올라온 그녀의 서평들도 물론 공부하듯 꼼꼼하게 챙겨 읽었지만, 나는 그녀의 글 중 특히 자신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는 글이 좋았다. 그런 글은 숨 한 번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굵은 붓으로 거침없이 죽죽 그어대는 끝자락에 커다란 모란 한 송이가 피어나는 듯한 글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3. 삶은 각자의 몫이지만, 유머를 품은 자는 이미 승리한 자이다.
'미오기전’은 김미옥 그녀가 인생에서 만난 상처와 슬픔, 아픈 기억과 화해하며, 결국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얼핏 이제까지 쏟아져 나온 수많은 에세이집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건, 김미옥이 ‘미오기’가 되는 과정은 통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며, 그 맵고 짜고 아프고 슬픈 그녀의 기억들 그녀의 글 속에서 풀려나오는 방식 역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삶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들은 어째서 모두 다른지, 그리고 인생을 걸어가는 동안 자신에게 칼을 겨눈 자들에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자가 왜 마지막 승자인지를.
더군다나 이 책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김미옥이 '미오기’가 되는 사연은 그것이 어떤 사연이 되었든 어김없이 웃음으로 매듭지어지는 걸 볼 수 있다. 페북에서 읽을 때도 언제나 그녀 글의 마지막 부분이 좋았다. 유머를 품은 자는 이미 자신의 삶에서 이긴 자다. 그래서 ‘김미옥’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가 책을 내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녀는 ‘미오기’로 화답을 했다.
4.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는 성숙함이 우리를 구원한다.
김미옥 작가의 '미오기전’은 단순한 에세이집을 넘어선다. 한 인간의 삶과 성장의 기록이다. 읽다보면 그녀가 아니라 읽는 사람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 (시어머니가) 갑자기 치매가 왔다. 그녀는 다른 며느리들 다 있는 데서 내게 욕을 퍼부었다.
“너는 김장을 해서 시누이에게 갖다 바친 적도 없는 나쁜 년이다.”
집안의 김장 비용은 내가 냈다.
그녀의 머릿속은 전근대와 현대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며느리란 살림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시집에 충성하며 남자에게 고분고분해야 했다. (p64-65)
그녀의 시어머니는 사실 다른 어떤 며느리보다 그녀를 편애했었다. 돈 잘 벌고, 유능하고, 잘나가는 그녀에게, 시어머니는 있지도 않은 점포를 주겠다고 뻥을 친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전,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자, 그동안 돈 잘 벌어 당당한 며느리에게 억눌렸던 가부장제가 부여한 갑으로서의 본능이 살아 꿈틀댄 거다. 아니다, 사실은 자신이 가부장제 하에서 받았던 상처만큼 되짚어 며느리에게 퍼부은 거다.
각자는 자기 몫만큼의 삶을 끌어안고 걸어간다. 단지 상대의 상처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건 결국 ‘내 안의 상처’를 보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발이 묶여 자라지 못한 아이는 여전히 오래 전 그 길바닥에서 징징거리며 자기 길을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점포를 가지고 뻥을 치던 그녀의 시어머니도,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미오기’를 시기 질투하며 입술을 앙다물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들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아직도 길바닥에서 떼를 쓰며 뒹굴고 있는 ‘오래전 그 아이’를 달래러 가는 건 어떨까 싶다. 그녀의 다음 말들을 오래 오래 곱씹는다.
- 서글픈 기억이 다시는 내 인생을 흔들지 않기를 바라며 쓴 글이다.
쓰다 보니 웃게 되었고 웃다 보니 유쾌해 졌다. (프롤로그에서)
- 나쁜 기억은 끝끝내 살아남는 무서운 생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마음을 열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온다.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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