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는 게 싫은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바뀔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기다려주며 넌지시 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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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라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밤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이다. 밤이란 하늘을 향해 드리우는 대지의 그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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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대한 표현 뿐아니라 한국음식에 대한 표현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글.
공감되는 부분이 곳곳에 있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글...

그런 환경의 씨앗이 언어며 다른 문화 곳곳에 깊숙이 파묻혀 있다. 내가 잘먹거나 어른들에게 제대로 인사하면 친척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예뻐."
예쁘다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는 말과 동의어로까지 사용되는 곳이다. 이렇게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한국에서는 생일날,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는 의미에서 이 음식을 먹는 전통이 있는데 이제 내겐 이 음식에 새로운 의미가 생겨 신성하게까지 느껴졌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국물을 들이켜고서 부드럽고 미끌미끌한 미역을 오물오물 씹었다. 그 맛은 고대의 어떤 바다 신이 바다 거품 속에서 벌거벗은 채로 해초를 포식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마치 엄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나박김치는 배추와 무가 장밋빛 소금물에 절여 나오는 음식이다.

내가 된장찌개와 잣죽을 직접 만들었던 것은, 엄마를 돌보는데 실패한 기분을 심리적으로 만회해보려는 노력이자 한때 내 안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고 느낀 문화가 이제 위협받는 기분이 들어 그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이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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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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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속에서 있을법하면서도 동화같은 이야기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니까 조용해졌어."
"그러네요."
"다들 너무 자기 말만 하잖아. 세상이 중학교 교실도 아니고 모두 잘난 척 아는 척 떠들며 살아. 그래서 지구가 인간들 함구하게 하려고 이 역병을 뿌린거 같아."
"마스크 안 쓰고………… 떠드는 놈도 있어요."
"그런 놈들이야말로 혼쭐이 나야 해."
"아………… 하하."
나도 모르게 광대가 실룩거렸다.
"마스크가 불편하다 코로나에 이거저거 다 불편하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할거야 떠들잖아. 근데 세상이 원래 그래. 사는 건 불편한 거야."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했다. 도울 것을 돕고 나눌 것을 나누고 내 몫의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 나만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사죄하기 위해 가족을 찾을것이다.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면 사죄의 마음을 다지며 돌아설 것이다. 삶이란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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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이기 이전에 사람을 사랑하는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착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착하게 살고 싶었다.
다만 착하게 사는 데도 기술과 맷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 P10

형사란 내 앞에 앉은 한 사람,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이 세상을 향해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 P31

형사가 기억해야 할 질문의 미학은 관찰과 관용의 마음으로 상대를 향해 평가와 편견 없이 묻는 것이다. 질문할 때는 내 개인의 경험치와 기준을 내려놓아야 한다. - P31

때로 삶은 더럽고 비루한 방식으로 우리의 따귀를 치지만, 옳은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그로 인해 근본적으로 훼손되지는 않는다. 옳은 사람들은 늘 위기와 복병에 맞닥뜨리지만, 그 모든 것을 딛고 끝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 P37

점점 더 아는 게 많아지고 매사에 명확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온갖 사건들은 내게 사람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세상은 그렇게 흑백으로 선명하게 갈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모르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 P48

모르는 인생 앞에, 쉽게 안다고 표현 못 하는 타인 앞에 나는 내내 그러할 것이다. 영원히 잘 모르므로 눈과 손발이나마 부지런히 굴리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 P48

먼저 가본 자와 나중에 그 길을 걷는 자가 서로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을 봐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본 자라서 품고 있는 두려움과 안 가본 자라서 끓어오르는 용기를 서로 나누고 자극을 주고받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평행선처럼 걸어가면서도 같은 수평선과 지평선을 나란히 바라볼 수 있는 관계를 꿈꾼다. - P54

경청이란 단어는 흔히 쓰이지만, 실제로 경청을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은 대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급하고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타인이 자신의 말만 쏟아내는 상황이라면 내 경험에 견주어 들리기도 전에 평가부터 하게 되니, 내 해석과 감정을 배제하고 상대방이 말하는취지를 있는 그대로 헤아리며 듣기란 점점 요원해진다. 게다가감정적으로 엉켜 있는 대상을 만났을 때는 이미 흘러간 감정까지 차오르면서 제멋대로 지껄이는 상대에게 화부터 나고, 자꾸만 트집을 잡고 싶어진다. - P67

우리는 흔히 마음이 아프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대화 양상이나 욕구가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똑같다. 아프나 아프지 않으나 제 말을 들어주길 바라는것은 마찬가지이고, 상대에게 강조하고 싶은 감정은 거듭 입에올린다. 상대의 시간이 화법이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주고,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 듣고 묻는 사이에, 화자가 스스로 차츰 진정하게 되는 것도 결국 다 똑같지 않을까 한다. - P73

기억은 대체로 인간이 계속 살아가게끔, 어떻게든 우리더러 살아보라고, 편들어주고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더 좋은 기억이 다른 기억을 안아버리고 풀어준다. - P87

후각은 슬픔처럼 강렬하다. - P118

우리에게는 이렇게 자주 내 일에 대한 성과와 보답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비로소 다음을 향해 넘어갈 수 있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한다. - P165

그 시절 내가 여자 형사로서 수없이 벽에 부딪친 건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깔려 있던 성차별과 ‘여자가 뭘 할 수 있겠어‘하는 세간의 편견만은 아니었다. 편견은 대중 속에서 무리지어 있기도 했지만, 개개인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보려는 자의 발목을 붙들었다. 이를 쉬이 탓할 수 없는 이유는 내 안의 편견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편견과 고뇌보다는 실제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범죄자와 맞닥뜨린 후부터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 P195

때로 두려운 마음이 현장에 보이지 않는 확성기를 켠다. - P197

철학도, 믿음도 멀리 있지 않았다. 사람의 모양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고 있었다. - P236

오랜만에 만난 친구 덕분에 나는 주로 무엇을 기억에 담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인지 생각한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크고 작은 선택을 내려야 했던 그 모든 순간으로부터 나는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인정한다.
나에게 가장 자유롭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P248

체면이란 사전적 정의로는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체면의 기준과 정의는천차만별 다르다. - P258

‘열두 살 어린 제자와 교제‘ 등의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를 보면서, 말을 업으로 다루는 자가 어떻게 이리 경박하고 무례한가 나는 괴로웠다. 어떤 자들은 꼭 자기 사고만큼의 언어로 한 사람의 생을, 나아가 세상을 더럽힌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 P267

자신의 경험치를 뛰어넘어 상대의 진실을 들어주고, 내가 좋은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에게 진정 필요한 말을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수시로 절감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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