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자
정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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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영원히 이어지는 유랑이라면 지금 이 순간은 무슨 의미일까?

모두가 유랑의 운명을 피할수 없다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수시대나 십자군 전쟁 시대나  현재나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문명이 발전하고 인간의 이지가 우주로 뻗어가는 시대가 와도  인간의 의식은 제자리 걸음인듯하고 인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과거에 했던 참담한 실패와 참혹한 역사를 되풀이 하는 것외에 다른길은 없는걸까?

 

자신은 불사의 존재라 말하는 이가 있다.그는 메시아도 아니고 평범한 인간.단지 죽음의 순간 전생을 기억해 내고 연속해서 유랑하는 삶의 비밀를 이해하게 됐을뿐.

그는 전생에 자신을 죽인 케이를 용서하고  영혼의 해탈을 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브라힘은 너무 먼 존재이다.그가 깨달은 단절되지 않는 존재의 영속성은 -그도 죽음의 순간에야 깨닫긴 했지만 -실감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쪼개서 확대해 보다보면 어느 순간  쪼개진 부분들이 전체와 동떨어진 별개 것으로 보일때가 있다.벽돌과 서까래를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완성된 집의 모습을 알수 없듯이. 

삶이 무엇가를 위한 영원한 유랑의 여정이라면 부조리하고 희망없어 보이는 지금 이 순간의 의미도 당장 알수 없을뿐  어떠한 의미가 있겠지.

 

다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우리 모두가 유랑자이고 끝도 없는 여정을 함께하는 어느순간이든 마주칠수 있는 동반자들이라면 조금은 덜 외로워하고 서로에게 고통주지 않으면서 삶이라는 이 길을 갈수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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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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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사람 낚는 어부란 말이 나온다. 종교적 색채가 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여산이 세상의 끝에 선 이들을 강에서 낚는 모습에서 이 말이 떠올랐다.허상으로 가득찬 삶에 지치고 갈곳 잃은 소희를 만난 곳도 강이었고,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아이를 잃고 투신한 이령을 건져올린 곳도 강, 새미와 준호를 만난 곳도 강이었다.소희를 따라 정착한 영필까지 강마을 주민들은 이력을 알수 없는 여산을 제외하곤 모두 지난한 삶의 풍파에 지친 갈곳 없는 이들이다.
반동인물로 등장하는 정묵과 조폭들의 과거사까지 언급되는데 강마을의 가장인 여산의 내력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하다가 그가 안내자이자 수호자이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가하고도 다시 자신의 이름마저 버리고 한산암에서 수행하는 한 노스님 앞에 나타난 여산
그는 여느 사람처럼 봉래산을 넘어오지않고 강에서 나타났다.길을 개척하며 강물에 젖은 옷이 채 마르지도 않은 상태로.
마치 산 같고 거슬림 없는 자연의 일부 같으면서도 가짜 투성이 불모성 엉터리 것들을 마음에 들어하는 존재.
스님이 아니라 여산이  마을의 기원이 되고 버려진 이들의 구심점이 되는 인물로  그려진건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속세의 연을 끊고 도를 닦아 죽기전에 깨우침을 얻는다해도 그건 스스로의 구원일뿐 타인에 대한 구원은 되지 못하니까.

 

강은 생명의 원천이자 재생의 상징으로 강물에 젖은 채로 나타난 여산은 강의 생명력을 상실하지 않은 인물이다.그리고 그가 상실하지 않은 강의 생명력과 치유력,포용력은  황폐해진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수 있는 재생의 기회가 되였다.
상처받고 유기된 이들이 그들처럼  폐기처분된  불후(不朽)의 폐허장으로 변해버린 드라마 세트장을 삶의 공간,순환이 있고 온기가 있는 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세상에서 이탈되어 도피한 이들이 진정한 가족이 된 건 조폭과의 일전이라는 위기를 통해서였다.
은근히 소희와 이령을 배척했던 새미는 한바탕의 술과 춤 파티후 과거를 쏟아냄으로써 경계를 허물고 소희의 품에 안기고 정묵과의 싸움으로 쓰러진 여산을 향해 준호는 "와부지"라고 외치며 그들을 비로서 하나의 진짜 가족으로 만드는 방점을 찍는다. 조폭들과의 부대낌을 통해 서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 그들은 혈연으로 인한 가족이 아닌 선택으로 인한 가족 된 것이다.

 

이 한바탕 소동극 속엔 인간과 문명에 대한 조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웃음과 따뜻함이 있었다.   
버려지고 '한 똥통의 구더기'라고 조롱받는 인생들도 서로에게 구원이 되고 낙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몰려드는 불도저,포크레인,덤프트럭 소리와 함께 다가올 더 큰 위기가 예상되고 그들의 다음 장이 녹록하지 않다해도  책장을 덮는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은건 이제 그들이 진정한 가족으로 함께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이 인간에 의해 속절없이 파괴되는 현실을 목도할때 다음 싸움은 패배하고 그들의 도피처이자 낙원인 강마을은 파괴의 위험에 휩싸일수도 있겠지만 절망의 끝에서 인생이 선물로 준 서로라는 존재로 인생은 계속되고 생명의 강물도 흐를 것이다. 
가치있는 것을 위한 싸움은 헛되지 않다.
무모하다 하여도 어렵다 하여도 그들은 그들만의 낙원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서로 잡은 손을 놓지도 않을 것이다.위풍당당하게 서로를 지키키 위해 싸우며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장 소제인  "인생이여 고마워요" 란 인생의 쓴 맛을 본 그들이 비로서 찾은 서로에 대한 찬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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