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소박하고, 진실하고, 단순해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 작가, 한국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 박완서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이다.

 

삶을 정면으로 직시하여 아픔과 모순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기어코 따뜻한 인간성을 지켜내고야 마는, 오직 진실로 켜켜이 쌓아 올린 그의 작품 세계는, 치열하게 인간적이었던, 그래서 그리운 박완서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산에서 잃어버린 열쇠가 길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걸 발견한 일을 통해 친절한 누군가 그리고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으로서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다치거나 물것에게 물린 자리에 약을 발라줄 때마다 호오, 호오입김을 불어주면서 입김이라는 곧 살아 있는 표시인 숨결과 사랑의 존재를 느끼게 되고

 

대단한 울보였던 작가가 어렸을 적 깎아지른 듯한 벼랑에 홀로 비상할 것처럼 활짝 핀 그의 자지러지게 고운 날개엔 마침 석양이 머물고 있었던 일 등

 

작가는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거나 스쳐 지나가고 안일하게 넘기고 지나갈 법한 일상 속에서의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거나 외면하지 않고 관심과 애정이 어린 마음으로 고이 차곡차곡 쌓아가고 소중히 바라보며 기억했다.

 

그러한 순간들에 그는 때로는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의 행복감을 느끼며 흠뻑 빠지기도, 불태운 것만큼의 정열, 때로는 본능에 충실했고 유쾌한 상상을 해보기도 하며 눈물겹도록 처절하거나 오해와 편견에 자책을, 살아갈 이유를 더는 못 느낄 만큼 슬픔이라는 어두운 동굴 속에 들어가기도 하며 찬란한 시간 속의 아름다운 것들까지 담겨있다.

 

작가는 속삭이는 작은 마음, 감정, 시간까지 아낌없이 진실하고 충실한 삶을 사셨구나 느껴졌다.

 

이 책은 보석 같은 일기장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아주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상자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기장에 보석 같은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어 매일 조금씩 아껴 보고 싶은 그런 책

 

삶을 살아가며 때로는 진실이 베일에 가려 발견하지 못하거나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은 말 그대로 진실과 거짓을 포함하여 편견, 다른 것에 가려져서 미처 보지 못하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과 반짝임)

그럴 때 이 책이 또 한 번 떠오를 것 같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하고 아껴주고 소중히 지켜내고 발견하여 고이 간직하고 바라봤던 작가 박완서처럼 ...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행복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쓰고 달면서 담백하고 머리에 계속 맴도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P. 175

그중에는 나 자신도 판독 불가능한 것이 있지만 나라는 촉수가 닿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규태 작가님의 일러스트를 좋아하는데 박완서 작가님 책 표지 삽화를 담당하셨다니 표지부터 보는 재미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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