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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끝나지 않은 선댄스 - 인디언 저항운동의 상징, 레너드 펠티어의 옥중수기
레너드 펠티어 지음, 문선유 옮김 / 돌베개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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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너드 펠티에, 인디언의 이름으로!
《나의 삶, 끝나지 않은 선댄스》 서평

최근 카트리나 사태로 인해 미국의 흑백갈등이 새삼 재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 사회의 인종문제는 흑백갈등뿐만 아니다. 《나의 삶, 끝나지 않은 선댄스》는 FBI요원을 죽였다는 누명으로 연속 종신형을 선고 받고 1976년부터 감옥에서 지내고 있는 인디언 레너드 펠티에의 옥중 수기다.

레너드 펠티에는 인디언 저항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과 같은 밴드가 그의 석방을 위해 뮤직비디오를 찍는 등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양심수다. 레너드 펠티에의 수기는 차별에 맞서 저항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한 개인의 내면과 인디언 생존을 위한 투쟁과 저항운동의 역사를 동시에 보여준다.

미국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마찬가지로 인디언 차별은 사회적인 관습으로 고착화되어 있다. 인디언 ‘문제’에 대한 미국정부의 정책은 시대에 따라 변천해왔지만 원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1860년대 후반 연방정부는 인디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디언 부족의 거주지를 특정한 구역으로 제한한다. 그런다 지정거주지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불모지여서 인디언들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연방정부는 인디언을 백인사회에 강제로 동화시키는 정책을 펴는 등 정책적 변화를 통해 인디언 거주지의 크기를 줄이고 인디언들의 삶을 계속 흔들어놓았다.

레너드 펠티에는 인디언들의 저항과 그에 대한 폭력이 매우 심각했던 1970년대에 활동했다. 레너드 펠티에는 어려서부터 백인경찰들에게 단지 ‘인디언’이라는 이유로 혼나는 한편, 1890년에 일어난 운디드니 대학살과 같은, 철로를 부설할 땅을 빼앗기 위해 정부가 300여명의 인디언들을 학살한 사건들을 들으면서 자라왔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 통틀어 약 2억 명 이상의 인디언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백인들의 분열정책에 의해 제대로 단합하지 못한다.

지은이는 과거 인디언들이 직접 학살당했다면, 지금의 인디언들은 ‘통계’를 통해 학살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우스다코타의 인디언 지정 거주지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빈곤율, 가장 높은 실업률, 가장 높은 유아사망률, 가장 높은 청소년 자살률에 허덕인다. 사실상 이것은 학살이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인디언의 새로운 세대들은 주 정부와 연방정부가 자신들에게 가한 위법행위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캘리포니아의 앨커트래즈 섬 점거, 로톤 요새 점거 사건은 인디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AIM)은 1970년대 활발하게 일어난 인권운동의 흐름 속에서 생겨났고, 도심의 빈민층에 사는 인디언들이 주축이 돼 ‘주권’, ‘조상 땅의 반환’과 같은 적극적인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3년 벌어진 운디드니 점거 및 정부와의 협상 이후 인디언들은 엄청난 공격을 당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죽거나 다쳐도 아무도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주지 않았다. 결국 1975년 FBI에서 직접 인디언 공격을 시작하고, 혼란한 와중에 지은이는 FBI 수사관을 죽였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게 된다.

인디언들의 저항과 그들이 당한 폭력, 그리고 지은이의 무죄석방을 위한 수많은 노력이 책의 주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 끝나지 않은 선댄스》는 희망적인 느낌으로 가득하다. 아마도 감옥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인디언의 전통적인 방식에 기대어 자신의 감정을 다독인 레너드 펠티에의 깊은 사유에서 나온 힘일 것이다. 그는 감옥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결코 감옥살이에 익숙해 질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다시 자유롭게 될지 어떨지 언제나 불안에 떨어야 한다면 그것이 바로 고문이지 무엇이겠는가. 언제나 그것은 당신의 심장에, 당신의 영혼에 상처를 입힌다.”

자신이 겪은 폭력의 경험은 인디언 부족 전체의 상처가 되어 언제고 그의 마음을 헤집어놓는다. 다행히 지속적인 저항운동의 결실 중 하나로 1998년 캐나다 정부에서는 인디언들에게 사과하는 ‘화해헌장’을 제정하고 구제기금을 설립했다.

인디언의 관습에 의해 얻은 이름, 전통적인 종교의식에서 레너드 펠티에는 희망을 찾는다. 그가 외치는 인디언다운 삶은 아마도 전통만을 완고하게 고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삶의 양식을 완벽하게 미국식으로 바꾸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인디언들의 삶은 아직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기에, 인디언다운 삶 또한 진행형이다.

“내 이름 중 하나는 ‘해를 좇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내게 총체적 자유, 곧 감옥 담장 밖의 사람들조차 대부분 결코 성취하지 못할 목표를 상징한다. ‘해를 좇는 바람’이라는 이름을 숙고할 때, 나는 온 몸이 분해 되어 벽돌 담장과 철창을 벗어나 바람을 타고 순결한 햇빛을 지나 하늘 세상으로 나아가는 듯한, 가슴 가득한 자유를 느낀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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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흘러야 한다 - 106일간 이라크 희망의 기록
윤정은 지음 / 즐거운상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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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라크의 고통을 이해하는 길     
윤정은의 <슬픔은 흘러야 한다> 서평

 

<슬픔은 흘러야 한다: 106일 간 이라크 희망의 기록>(즐거운상상)는 2004년 3월부터 6월까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민간인의 시선으로 전쟁에 대한 기록과 보도활동을 해 온 윤정은 기자가 낸 책이다. 이 책은 지은이 자신이 이라크에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내용상 어려운 부분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게 하는 지은이의 생각이 박혀있다. 책의 말미에 실린, 이라크의 통역자 세르민에게 지은이가 보내는 편지가 그 예다.

“당신이 내 앞에서 울 때도, 같이 울어주지 못하는 내가 두려웠어요. 당신을 무감각하게 쳐다보는 내 눈빛을 들킬까봐 두려웠어요, 그래서 당신을 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벽을 멍하니 응시했죠.”

수잔 손탁은 <타인의 고통>이란 책을 통해 전쟁은 이미 ‘정의의 전쟁’과 같은 온갖 수식어가 붙은 데다, 게임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겪은 고통, 이 타인의 고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 수식과 이미지들을 다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슬픔은 흘러야 한다>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지은이는 전쟁이 일상화된 이라크의 거리에서 죽어가는 피해자들의 면면을 담으면서,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실존적으로 고민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면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을 열겠다고 다짐을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전달하는 두려움 때문에 이내 감각이 죽어버린다. 지은이의 고민에는 관념적인 용어도 없고, 난해한 비유도 없다. 솔직하고 정확한 단어, 지은이가 직접 찍은 이라크의 풍경들이 전쟁이 가져다 주는 고통과 지은이의 고민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지은이는 거창하게 평화운동을 생각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이라크의 현실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해 여행을 가겠다.”고 생각하며 이라크로 떠났다. 그 곳에서 지은이는 지진이 일어났다고 착각할 정도로 시끄러운 폭발음과 총성 때문에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자신과는 정 반대로 전쟁에 익숙해진 이라크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미군에 의해서건, 저항세력에 의해서건 민간인 피해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오폭에 의해 어제까지 멀쩡하던 조카가 죽어가고, 자신들의 동료가 당했을 경우 화풀이로 총을 쏘아대는 미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또 죽어간다. 이라크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사용할 수 없고, 밖에 함부로 나다니기 어렵고, 전기와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한데다, 현지인 납치가 유행하는 상황이지만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전쟁의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팔루자에서 피난민들의 증언 채록을 마친 지은이는 “아이들의 눈을 볼 때가 가장 슬프다. 전쟁을 목격하고 사막을 넘어 죽음을 본 그 영혼이 입었을 상처를 생각하면 너무도 슬프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너무나 맑아 그 아이러니한 풍경에 가끔 넋을 잃는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이 아이러니한 풍경이 전쟁의 풍경의 핵심적인 부분을 말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친척들이, 자기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몰라도 묵묵히 살아가야 하고, 묘지가 모자라서 시체들을 다 묻을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감각을 죽이고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전쟁의 승리와 패배는 권력자들의 이야기다. 지은이는 이 아이러니한 삶을 이어가는 민간인들의 죽음이 전쟁의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았음을 비판하고, 전쟁을 통해 죽어간 이름을 불러주고 피해보상을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라크 전쟁이 남긴 가장 커다란 상처는 이라크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민족이 다름을 이유로 이라크와 쿠르드인들의 사이가 나빠진 것은 물론이고, 이웃간에 사이가 좋지 않을 경우 상대를 ‘저항세력’이라고 고발하여 미군에 잡혀가게 만드는 등 모든 인간관계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습관이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을 만날 수 있다. 정신적인 고통은 몸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인지, 지은이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혼자라는 감각 때문에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었을 때 이라크에서 사회주의자로서 여성운동을 하는 여성 에레카를 만나면서 힘을 얻는다. 그리고 전쟁의 풍광이 전달해준 감정에 자신이 제대로 대면하지 않았음을 재발견한다. 어쩌면 희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힘 있는 만남에서 솟아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이해 받지 못해 상처 입고 관계에 자신이 없어질 때,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여정에 대해 함께 나누고 말하고 듣노라면 우리 사이에 있는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경계를 넘어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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