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오해
E, Crystal 지음 / 시코(C Co.)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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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저지르는 수많은 실수는 '말'과 연관되어 있다. 욱하고 치미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말, 입이 근질거려 '이건 비밀인데…' 기어코 내뱉는 말, 조언이랍시고 함부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는 말……. 우리는 말실수를 거듭하며 '말'이 지니는 파괴적 힘에 대해 학습한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아끼게 된다. 내가 뱉은 말로 인해 나와 가까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상처받는 일이 생길까 봐 두렵다. 그리고 끝내는 내가 상처받게 될까 무섭다.

 때로는 '말'이 아닌 '침묵'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언어'라고 말할 것이다. 언어가 없는 인간의 삶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익히 알고 있다시피 언어는 사람 간 의사소통의 도구이다. 그뿐만 아니라, 언어는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은 언어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러한 능력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와 장소를 가려 말을 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을 아닐 것이다. 내가 건넨 위로의 말이 상대의 오래된 상처를 후벼 파는 칼날이 될 수 있다, 어떤 이가 농담으로 툭 던질 말에 다른 어떤 이는 무너질 수도 있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누군가의 뇌리에 박혀 오래도록 남아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잘’ 말한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인 것이다. 단순히 재치 있게 말하고, 똑똑한 발음으로 말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것만이 ‘잘’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때문에 '말'로 상처를 주고받은 경험이 있음에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든 머지않아 정년퇴직을 앞둔 이든 인간관계와 소통이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결국 ‘침묵’만이 답인 걸까.




 <비밀과 오해>에서 세 자매는 그 누구도 5년 전 ‘사건’에 대해 나서서 설명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걱정과 불안, 사랑을 드러내는 게 두렵다.







 33쪽에서 셋째 ‘비주’가 둘째 ‘유주’에게 불안함을 숨기고 속마음과 다른 질문을 하는 부분은 서로에 대한 세 자매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세 자매는 서로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서로를 멀리하고 외면한다. 각자가 쌓아올린 침묵의 벽이 견고해질수록 이들의 관계는 더욱 위태로워진다. 각자 품고 있는 비밀을 서로에게 감추느라 오해는 깊어져만 갔다. 그리고 장장 5년간 쌓인 오해는 셋째 ‘비주’가 토해내는 울분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너무도 쉽게 풀렸다. 비로소 제대로 마주하게 된 진실 앞에서 세 자매 간 벽은 단번에 허물어졌다.

 <비밀과 오해>를 읽으며 나를 돌이켜봤다. 그동안은 누군가에게 말실수를 하지 않았는지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번엔 내가 지켜온 침묵에 대해 생각했다.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삼켜버린 말. 혹은 나를 지키기 위해 삼켜버린 말. 과연 침묵은 어느 때이고 금이 될 수 있을까.

#장편소설

#비밀과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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