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개의 이름 - 정수일 평전
차병직 지음 / 창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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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4학년, 노무현 정권이었고 학기초마다 등록금 쟁투가 캠퍼스마다 일어나던 시기였다. 심한 황사때문에 종종 강의가 일찍 끝나던 즈음에 깐수의 인문학부 특강을 들었던 적이 있다.
중국 국비유학생 1호- 중국 공산당 외교부 공무원-북한의 대학교수-아랍인으로 신분을 속여 교수직을 유지하며 남파 간첩으로 활동하다 사형까지 구형받은 소설같은 인생. 이 신나는 스펙타클을 기대하며 갔던 그 강의는 사실 실망스러웠다. 실크로드와 동서교류사에 관한 역사학 강의였지만 내심 그 신기한 인생 얘기나 더 해줬으면 했다. 기대했던 바와 달랐던 것...
그런데 이 분의 소설같은 인생을 담은 책이 창비에서 나왔다.

이 책은 변호사인 저자가 깐수 정수일과의 꾸준한 만남을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가 돌아가신 후 창비에서 출판하였다. 평전이지만 이틀에 걸쳐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식민지, 전쟁, 냉전, 분단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의 이야기라 시대의 굵직한 사건들이 함께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90년대 후반 정수일이 간첩으로 체포되고 이내 사형선고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 실마리를 풀어가듯 그의 출생으로 돌아가 역순행적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가 출생한 일제시대 함경도에서부터 따라가 여러 번 연필로 줄을 치면서 지도도 검색해 찾아보며 읽었다. 읽다 보면 윤동주도 나오고 조명희도 나오고 체게바라, 김일성에 문예봉도 나오고..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툭툭 튀어 나온다. 그래서 자꾸 연대와 사건, 역사 지도를 검색하거나 찾아 보게 되더라. 하, 이 인생 뭐냐..이 거대한 나비효과같은 운명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하여, 톰행크스의 포레스트 검프 생각도 잠시. 이 분의 인생은 영화가 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

실크로드의 시작점이 중국이라고 여겨온 오래된 사관을 벗고 실크로드의 끝자락을 신라까지 데리고 온 운명(정수일이 우연히 가게 된 이라크박물관, 로제르의 책 속 신라 지명을 발견한 순간 p.296) 의 묘사는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함경도, 연변, 베이징과 카이로, 알제리, 동남아와 일본, 북한과 남한을 종횡무진한 그의 인생은 꼭 실크로드와 닮았다. 조명희의 <낙동강>의 첫 문장이 그 물꼬를 틀었는 걸까.
'어린 소년은 무엇인가를 하려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낙동강 칠백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몸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간다."'p.67
이 문장처럼 천천히 꾸준히 노마드의 시대를 굽이굽이 먼저 길 나갔던 한 사람의 외롭고 단단했던 이야기. 자기 인생의 소명을 산처럼 지켜야 했으므로 이 인생이 드디어 소설이 되었다.  

어린 소년은 무엇인가를 하려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낙동강 칠백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몸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간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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