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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그리고 가정 -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2023 노벨경제학상
클라우디아 골딘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10월
평점 :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리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미국에서 남녀 소득격차의 원인을 추적, 분석한 책이다.
책은 지난 100년간 미국 여성들을 5개 집단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100년 동안, 대학 및 대학원 교육, 전문직을 위한 자격 취득에 소요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즉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나이가 과거 20대 초반(거의 대학을 안 가던 시대)에서 20대 후반으로 이동해갔다. 여기에 보조생식술의 발달로 커리어를 어느 정도 쌓고 40대의 나이에 아이를 갖는 것도 가능해졌다. 현재는 집단 5의 시기로, 커리어와 가정을 동시에 꾸려나가려는 시기다. 만약 '올라가거나 나가거나'가 결정되는 시점이 30대 초중반이 라면 여성은 우선 일부터 열심히 해서 파트너가 되거나 테뉴어를 받고 나서 그 다음에 가정을 꾸리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승진 연령이 높아지면서 가정을 더 늦게 꾸리거나, 아니면 어린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승진 준비를 해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요 승진 심사까지 커리어 경로는 어린아이가 있는 여성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강도 높은 시간 투여를 요구한다. 어느 쪽을 택하든 문제가 발생하고 여성에게는 더욱 그렇다.
채용, 승진에서의 남녀 차별, 직장 내 성희롱 등이 남녀 소득격차의 원인 아닌가? 이는 다분히 지난 세대 이야기이며, 학교 졸업 후 커리어 초반에는 남녀 소득격차가 거의 없다고 한다 (미국 이야기!).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고소득 전문직일수록 남녀의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 발견되는 것. 이 격차는 아이가 있는 여성에서 매우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남성이 주로 선택하는 직종(예. 의사, 엔지니어 등)과 여성이 주로 선택하는 직종(예. 간호사, 교사) 간 소득 차이로 인해 남녀 소득 격차가 있는 것이 아닌가? 골딘 교수는 이러한 직종간 소득격차는 실제 남녀 소득격차의 1/3 밖에 설명하지 못한다고 정리한다.
1970년대 말부터 경제 전반적으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시간 요구 정도가 높은 직종들, 이 책에서 말하는 소위 '탐욕스러 일'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보수를 주게 되었다. 아이가 있는 여성들은 더 유연하고 조정 가능한 시간을 원하게 되므로, 지난 몇 십년동안 '초'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 직종에 여성들은 진입하기 더 어려워졌다. 물론 왜 애초에 부부 중에 여성이 더 유연한 일을 많이 선택하는지의 원인은 젠더 규범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저자가 경제학자이므로 여기서 젠더 규범에 대해 정치 사회적인 설명이나 주장을 덧붙이지는 않는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설명해주어서 오히려 메세지가 강력하게 와닿았다.
저자는 남녀 소득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이 구조화되어 있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탐욕스러운 일자리(업무에 시간 투입 및 온콜 상태를 많이 요구하는 일자리)에만 막대하게 주어지는 보상을 덜해야 하고, 지금보다 유연한 일자리를 더 늘리면서 그 일자리가 더 생산적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돌봄을 더욱 지원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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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해법, 당장 실현 가능한 해법은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다.
내가 맞딱뜨린, 그동안 이름 지어지지 못했던 문제를 이렇게 합리적으로 labeling 해준 것만으로 이 책이 너무 감사하다.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하루 4시간 근무제로 전환해도 좋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끝내 거절했던 기억도 새록 났다 (진짜 그나마 유연한 회사였다). 이미 관리자 레벨이라 정말 딱 4시간만 일할 수 없을 것임을 불 보듯 알고 있었고, 또한 향후 승진에서 불이익이 있을 것임을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게 저자가 말한, 탐욕스러운 일자리에서 노동이 구조화된 방식 때문이구나.
과거에 탐욕적 일자리에서 내가 버거워했던 것들을 '시간 요구'와 '경쟁'으로 깔끔하게 정리지어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다. 나의 다음을 생각할 때 이런 요소들을 짚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