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복지국가 만들기에 실패했나
몰리 미셸모어 지음, 강병익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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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복지국가 만들기에 실패했나

미국은 자유의 땅이다. 자유! 미국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도 없다는 유명한 문구 위에 세워졌다. 미국의 보수는 작은 나라를 내세우며 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나라의 보수주의보다도 자유를 사랑하는 보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흥미로웠다. 뉴딜정책도 미국 역사에서 상당히 예외적인 경험처럼 보이는데, 복지국가 만들기라니? 물론 실패했다고 결론내리긴 했지만, 복지의 토대가 매우 약한 미국에서는 어떤 복지투쟁이 있었는지 새삼 궁금해져서 서평을 신청해서 읽게 되었다.

어느 나라의 사람들이나 그렇겠지만 미국의 시민권자도 과세를 싫어했으며, 역사적 경험 때문에라도 미국 시민들은 세금에 더욱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대공황 이후 뉴딜 체제가 세워지고, 민주당은 사회보장체제가 작동하는 국가로 나아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유권자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직접적인 과세보다는 사회보험제도를 활용해서 간접적으로 과세하는 형식을 택했다.

시간이 흐르며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이제 소득세나 사회보험제도도 일반 중산층 시민들의 삶에 제법 타격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국의 자유주의 보수는 국가가 지출을 늘리는 것보다는 감세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지출은 어디로 새는지 모를 돈이었고, ‘복지 여왕’ 같은 부정수급자들에게 낭비하느니 감세를 시행하는 게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물론 감세 정책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는 데에도 유리하다.

복지 여왕에 대한 공격은 많은 중산층 백인이 자신들이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억울하게 세금을 뜯기는 납세자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복지와 사회보장제도의 수혜자는 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백인은 점점 저소득층 유색인종이 복지를 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레이건 정부 시절 복지거부는 절정에 달한다. 결국 민주당도 복지거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느끼고, 뉴딜을 이어받은 위대한 미국 사회를 건설하는 비전을 내려놓게 된다.

이렇게 보수주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조세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게 되면서 미국의 공공서비스는 민간 기업에 의해 제공되고, 소득재분배의 역할을 수행했던 제도들은 그 힘을 잃고 파괴되거나 명맥만 남아 재분배의 역할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조세정치로 인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깊은 갈등, 소외됐다고 느낀 중산층 백인과 빈곤에서 벗어날 사다리를 박탈당한 유색인종 저소득층 사이에는 깊은 골이 생겨 정치적으로 극단화된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정치상황은 참고할 만하다. 경제 지식과 미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어서 사실 본문 읽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마지막에 옮긴이의 글이 없었다면 의미 파악도 힘들었을 것 같다. 어려운 내용을 번역하느라 고심하신 흔적이 느껴진다. 옮긴이의 글을 본문 읽기 전에 먼저 읽었으면 읽기에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한국에서는 잦은 예산 삭감으로 제도가 망가져가고 있고, 최근에는 ‘시럽급여’ 라는 ‘복지여왕’에 버금가는 모욕적인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 시국에 참으로 시의적절한 책이 아닐 수 없다.

*해당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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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 광기와 인정에 대한 철학적 탐구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지음, 송승연.유기훈 옮김 / 오월의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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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 사회는 정신질환을 제거 내지는 배제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당장 조현병에 대한 인식만 봐도 그렇다. 정신병원에 가기도 꺼려하는 한국 사회에서 매드운동과 매드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너무 신선했다. 한편으로는 그것은 장애 당사자 운동이나 성소수자 운동과 같은 맥락 속에 있었다. 정치적 제도를 통한 인정 보조와 상호 화해(특히나, 화해적 태도)가 절실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책.
별개로...어렵기는 정말 어려웠다ㅋㅋㅋㅋㄱ 달리 말하면, 여러 번 읽을수록 좋은 책이다. 사회에서 어떤 ‘정상성‘에 이질감을 느껴본 적 있는 당사자라면 더욱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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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정치사회학 -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
곽송연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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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에도 광주를 기억하는 책이 나왔다. 올해는 5.18 43주년이다. 4.3사건 75주년이기도 하다. 학살 가해자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의 사과로 이번 5.18 추념식이 주목받기도 했다.

이 책의 시작도 바로 그 학살 가해자를 분석하면서 출발한다. <오월의 정치사회학>은 그동안의 5.18 연구에서 조명받지 못했거나 미진한 부분을 보충해나가는 책이다. 특히 가해자의 행동 동기를 분석하고 대중의 침묵을 조명한 점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더하여 국가의 학살 은폐와 학살의 발생 원인을 사회학적 요인으로 분석하여 다룬다.

가해자는 고위 간부+지도자/정규군/준군사조직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집단에 따라 가해자들의 행동 동기는 달라진다. 고위 간부는 이데올로기, 정규군은 동료압력과 이데올로기 주입 효과, 명령복종 등에 따라 행동한다. 저자는 각 집단 행동 동기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가해자와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일반 군인들의 분리를 제안한다. 일반 군인들은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국가의 부름에 의해 의도치 않은 명령을 수행한 국가폭력의 희생자이며 사건의 목격자이다. 이런 지점에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대중의 외면에는 철저한 언론통제가 큰 영향을 미쳤다. 애초 공인방송에서는 검열된 정보가 흘러나오고, 모두가 적(간첩)으로 가리키는 사람들에게서 전해지는 정보만이 진실인 상황이었다. 더불어 도덕적 우위를 가진 사회엘리트들의 침묵(물론 발설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암묵적 동조와 지지를 뜻하게 되었다.
대중들의 침묵 속에서 국가는 계엄령을 내리며 전면적 부인, 해석적 부인, 함축적 부인의 전략으로 5.18을 혼란, 사태로 규정한다. 당시 국가의 논리를 바탕으로 공론장에서 아직도 5.18을 부정하는 상황을 두고 저자는 적극적 제지를 촉구한다.

학살 이후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는 전체주의의 원리, 민주주의의 적대화-민주주의로의 이행이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학살을 가렸다. 5.18의 원인으로는 (존재하지도 않던) 지역주의를 지목하고 5.18 대신 10.26 이후의 혼란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가려버린다. 망각의 홍수 속에서 저자는 국가가 만든 공적 기억에 대항하는 저항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주목하자고 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정치적 학살 이론 모델을 사용해서 여러 변수를 구조적 조건과 주체적 조건으로 분류하고, 변인에 따른 양태를 분석해 학살의 발생 원인을 탐구한다. 사회학 배경 지식을 갖춘다면 이해가 더욱 쉬울 것이다.

학살에 대한 반성과 재발방지는 곧 민주주의의 내면화이다. 이 때문에 5.18이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유의미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반성과 함께 과거 정권의 논리를 답습하고 부인하는 이들이 공존하고 있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고 또 거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는 반드시 반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노사이드의 가해자들은 일반적으로 범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국가안보에 대한 도전 상황에서 지배 엘리트와 군대가 집단학살을 그 전략적 대응으로 선택하는 것에 이미 익숙할 것이며, 이들에 의해 지목된 집단은 대부분 완전히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 P27

한국군은 해방 정국에서 한국전쟁에 이르는 근대국가 건설기와 베트남전 당시 해외 파병에서 이미 두 차례나 집단학살을 학습했다. - P27

따라서 ‘객관적인 적‘으로 지목된 대상은 이른바 ‘정당방위‘로 죽임을 당해도 된다는 논법이 형성된다. - P30

마지막으로 부인은 "가장 직접적이고, 그러나 많은 점에서 가장 교활한 기억 조작의 형태"로 ‘합리적 의문의 외양‘을 띠는 방식을 취해 "근거가 확실한 정보로 상세한 설명을 제시"함으로써 반박되거나 폭로되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 - P127

심지어 지역감정이 폭발적 위력을 발휘한 정초 선거로 평가되는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 이후 진행된 조사 결과 역시 ‘호남인들은 영남인들에 비해 강한 상대 집단 거부감을 가지 않는 것‘(대구 42.6% : 광주 34.9%)으로 나타났다. - P132

국민과 비국민을 결정짓는 잣대로 다시 한번 반공이데올로기가 이용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빨갱이에 대한 학살이 정당화되었듯이 폭도라 명명된 시민들에 대한 학살 역시 정당화되었다. - P177

"빨갱이여서 죽은 것이 아니라 죽고 나서 빨갱이가 되었으며, 누구에게 죽었는가가 이후 이들의 정체성을 결정하였다."는 한국전쟁 시기 학살 피해자의 증언처럼 "폭도라서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죽고 나서 폭도로 명명"되는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 P177

정치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이 합의와 타협의 공간을 위축시키고 정책 입안을 마비시켰으며, 정치적 경쟁자를 끌어내리는 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극단적 대결의 정치문화가 정치적 제약에서 자유로운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 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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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어린 시절 + 청춘 + 의존 - 전3권 - 코펜하겐 삼부작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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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의 유년기는 나의 유년기와 일정 부분 겹쳐보였다.(시차가 백 년이나 나는데도) 성인이 되고 나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가정마저도 내 울타리였다는 데 많이 좌절했는데. 토베의 생은 좌초된 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세 권의 책을 읽으며 나도 함께 흔들렸다. 이처럼 공감 가는 이야기. 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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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 타인의 고통이, 떠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양재화 지음 / 어떤책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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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래서 세계 어디를 가든 장례 문화는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형태는 다를지언정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추모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죽음은 애도받지 못한 채, 송두리째 세상에서 잘려나간다.

제노사이드를 다룬 여러 책들을 읽다 보면, 가위가 색종이를 자르듯이 너무 쉽게 뭉텅이로 잘려나간 사람들이 보인다. 몇십만명이라는 숫자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아 정말 끔찍하구나. 심각하구나. 라는 파편적인 감상에서 멈추게 된다.

다른 책들이 제노사이드가 일어났던 발단전개과정, 학술적 정보 측면에서 더 뛰어날 수 있겠으나 이 책은 실제 학살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오는 무게감을 정말 묵직하게 전달해 준다. 죽은 사람들을 숫자로 마주하는 게 아니라 공간으로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전달해 준다. 학술적인 책뿐만 아니라 이런 책도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 마주하며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제노사이드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혹자는 말한다. 과거는 과거의 일일 뿐 아니냐고. 나는 이 말을 아주 싫어한다. 시간이 과거/현재/미래인 줄 아나? 과거의 모습이 쌓여서 지금의 모습이 되고 현재가 된다. 세계 인권 헌장이 무슨 연유로 만들어졌는가? 대규모 학살 사건에 정부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이 자연스러운가? 사상의 자유는 언제부터 누릴 수 있는 것이었나?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다 보면 손에 쥐고 있는 권리가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기억하겠다는 말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책임진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20세기의 제노사이드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누군가는 여행기 읽고 너무 비장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다. 글쎄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감상평 치고는 오히려 얄팍하고 너무나도 타인의 시선인 게 아닐까.

누가 지금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를 기억하는가? - P22

한국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을 세계 곳곳에 세우듯이, 아르메니아는 민족이 당한 학살의 고통을 널리 알리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하치카르를 세계 곳곳에 세우고 있다. - P33

물론 튀르키예가 과거의 제노사이드를 계속 부인하는 한 이러한 화해는 한시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굳건해 보였던 장벽을 훌쩍 넘어 재난에 처한 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의 보통 마음, ‘인지상정‘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 P43

내가 본 여행가방 중에는 ‘프라하에서 온 마리 카프카‘, ‘빈에서 온 클라라와 사라 포히트만‘의 것도 있었다. - P66

수용소에서 침탈된 존엄은 삶의 존엄이 아니라 죽음의 존엄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주장된 바 있다. (중략)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히니 시체들이 생산됐던 것이다. 죽음을 갖지 못한 시체들, 죽음이 연쇄 생산의 재료로 전락해 버린 비인간들 말이다. - P72

반유대주의나 시민들의 태도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았고 국가의 부재가 유대인 집단학살에 압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 P82

국가가 기능하는 곳에서 국가가 파괴된 곳으로 희생자들을 끌어낸 것이다. - P83

이거 놔, 난 여기 앙코르와트 보러 온 거야! 놀러 온 거라고! 게다가 현지인들한테 돈을 쓰고 있잖아! - P104

어떤 미치광이 과학자가 한 나라를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설계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한 나라의 지식인층을 전부 죽이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될까?‘ - P112

그들의 사진을 가능한 오래 응시함으로써, 적어도 추상적인 ‘숫자‘로만 알던 존재들이 한때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즉물적으로 깨닫는 것만으로도 일말의 가치가 있다. 숫자의 고통보다는 사람의 고통을 가깝게 느끼가가 더 수월한 법이다. - P129

국립도서관 폭격은 이 ‘내전‘의 실체가 한 집단을 물리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괴하려는 제노사이드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히틀러가 아르메니아 학살에서 영감을 얻었듯이,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나치 시대에 대규모로 자행된 분서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 P168

나로 인해 생전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나라의 역사 강의를, 그것도 어설픈 내 통역을 통해 띄엄띄엄 듣게 된 엄마가 "나는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고 지루하다"고 한 말이 나를 포함해 그곳에 ‘비장하게‘모인 사람들의 어떤 반응보다 가장 진실에 가까웠을 것이다. - P175

보스니아에 그토록 깊은 상처를 남긴 전쟁은 불과 10년 남짓한 시간에 ‘상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또한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며, 그들을 탓할 순 없을 것이다. - P184

누가 마리오의 턱뼈를 찾았다고 하면 필요 없다고 할 거예요. 온전히 끌고 갔으니 전부를 내놓으라고. - P216

정부를 상대로 한 저항으로서의 ‘오월 광장의 어머니들‘ 행진은, 독재 정권의 치부를 덮기 위해 상정된 ‘화해법‘이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2006년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그러나 여전히 아르헨티나와 남미를 비롯해 전 세계에는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 P223

그러나 제주는, 4.3 사건은 그 어떤 핑계로도 벗어날 구멍이 없었다. 그것은 발단부터 전개 과정, 결말, 이후의 취급까지 너무나 한국적인 학살이었고, 언제든 미친바람을 타고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참극이었다. - P249

곧, 만에 하나 학살된 민간인 모두가 ‘빨갱이‘였다고 해도 그들 역시 같은 나라의 국민이자 무엇보다 같은 인간이었으며, 어떤 적법한 절차 없이 무참하게 살해당해서는 안 됐다는 당연하고도 자명한 진실 말이다. - P261

살아남은 사람들은 소개령 해세 이후에도 수많은 이웃과 가족이 학살되고 완전히 파괴된 마을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타지에서 생을 이어 갈 수밖에 없었다. - P267

그제야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다크투어는 기실 잊힌 이름들을 부르고 잊힌 얼굴들을 마주 보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익명과 숫자와 망각에 맞서 그 뒤로 사라져 가는 수많은 개인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이었음을 나는 깨달았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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