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인물 중국사 : 공자.맹자 Who? 인물 중국사
이숙자 지음, 이두원 그림, 오준석 외 감수 / 다산어린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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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후기]Who? 인물중국사- 공자 & 맹자 /다산어린이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중국 문명, 그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중국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 동북부에 위치한 한반도, 그리고 고조선, 고구려 등도 중국왕조와 맞닿아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영향을 더 받게 되고 특히 문화 유입이 많았어요 침입도 많이 받았죠

인물중국사 중 3편에 해당되는 공자/맹자편입니다.

흔히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경우가 많죠, 좋은 의미는 아니나 분명 두분은 위대한 사상가임은 틀림없네요

공자를 대상으로 한 영화는 있으나 맹자는 없네요


역사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합니다. 최근 불어오는 한국사, 세계사에 관한 관련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어요. 그 중에서  who? 인물중국사(전 30권)와 한국사(전 40권)는 역사를 배우기에 안성맞춤이며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도서입니다.

중국의 역사를 알고 싶으신가요? 중국에게 배워야 할 점도 많지만 경계해야 할 점도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역사를 알고 한국의 역사를 같이 배워야 합니다.


좋은 구성으로 만들어진 인물 중국사 이제 한번 같이 들어가보아요!

공자와 맹자 주변인물을 한번 보고 갑니다.


어지러운 시대,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듯 어지러운 춘추전국시대에 사상가들이 나타났어요

인과 예를 중시한 춘추시대의 공자, 의를 중시한 전국시대의 맹자는 유교, 유학의 대표적 사상가입니다.


공자편 

1. 학문에 뜻을 두다

공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어머니는 마을 제사를 도와 집안 살림을 꾸렸다. 공자는 궁금한 것이 많아 주변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항상 물어봤습니다. 그러다 열일곱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무렵 노나라 귀족 계손씨가 잔치를 열었는데 공자도 초대받았습니다. 하지만 상복을 입고 있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열아홉 살에 혼인을 하고 관리가 되었습니다. 공자는 주나라 예법에 관한 책을 읽어 예법 전문가로 인정받게 되었고 그러자 제자들이 생겼습니다.


 공자는 권력자 앞에서도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과 길을 지날 때 자로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자로는 공자의 말을 듣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극기복례, 위편삼절>

*역사 바로보기 1에서는 주나와 춘추시대에 대해 알려주고 있어요.


2. ‘인’의 세상을 꿈꾸다

노라나 제후 소공은 삼환을 치려다 오히려 자기가 쫓겨났고 공자도 결국 제나라로 갔습니다. 제나라 경공은 관직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무색 되었습니다. 노나라에 돌아온 공자는 제자를 기르는데 힘썼고 그 무렵 양화가 반란을 일으켜 계손씨, 맹손씨, 숙손씨 가문을 제압한 후 독재 정치를 했다.


몇 년 뒤 양화는 쫓겨났고 정공은 공자에게 중도재로 임명했습니다. 그러자 중도는 아주 살기 좋은 곳으로 변했습니다. 공자의 벼슬은 나날이 높아져 ‘소사공’에서 ‘대사구’가 되어 법을 집행했습니다. 몇 년 뒤 공자는 노나라에서 뜻을 펼치기 어렵다고 생각해 나라를 떠났습니다. <지천명>

*역사 바로보기 2에서는 공자의 사상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어요. 인과 예를 중시했어요


3. 14년 동안 유랑하다.

공자는 위나라로 향했지만 거절당하고 진나라로 향했습니다. 공자가 질문을 하면 안회는 남다른 대답을 해 공자가 가장 아꼈습니다. 노나라의 계환자는 아들 계강자에게 공자를 불러들이라고 했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공자의 제자 염구를 불렀습니다. 진나라에서 초나라의 소공이 불러서 가려고 했지만 진, 채나라의 군대가 막아섰습니다. 하지만 자공을 시켜서 겨우 초나라에게 원병을 청해 벗어났습니다. 초나라에서도 나오고 공자는 염구에 도움으로 14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역사 바로보기 3에서는 공자의 제자들을 소개합니다. (안회, 자공, 자로)제자교육, 자식교육


4. 인류의 스승으로 영원히 남다, 부모에 대한 효가 인의 시작이요 나라에는 예로 대함이요

공자는 평생을 걸쳐 3000명 이상의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중 뛰어난 제자 열 명을 ‘공문십철’이라고 부릅니다. 공자는 칠십 세 때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 사람들에게 삶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공리가 세상을 떠나고 손자 공급만 남게 되었습니다. 연이어 안회가 겨우 마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자로가 위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반란을 진압하다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연이은 충격에 공자는 병으로 쓰러지고 기원전 479년 자공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73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자공과 제자들은 삼년상을 치렀지만 자공은 3년을 더 지냈습니다. 자공과 제자들이 기록한 내용은 논어의 기초 자료가 되었습니다.  


*역사바로보기 4에서는 14년간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닌 주유천하를 소개합니다.

역사 뛰어넘기와 별별인터뷰가 재미를 더해주고 있어요


부모에 대한 효가 인의 시작이요 나라에는 예로 대함이에요

늘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을 사랑해야 그로 인해 인, 예가 생겨나겠죠

유가, 유학, 유교 등 사상의 기초와 완성을 거둔 공자, 본인 뿐 아니라 수많은 제자들로 인해 유학은 이후 중국 왕조의 통치이념 및 사상이 됩니다.

고려시대 유입된 유학은 고려, 조선에도 영향이 크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컸다고 생각이 듭니다.

공자의 유학보다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이용하는 경향이 더 컸다고 생각이 듭니다.

인, 예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맹자편

5. 홀어머니의 엄격한 교육 아래 자라다

맹자는 기원전 372년 추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맹자의 집은 공동묘지 가까이 있어 맹자는 언제나 곡을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이사를 가셨습니다. 장터 근처에서는 장사꾼들이 많아 맹자가 책에 집중을 못하자 또 다시 이사를 서당 근처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맹자는 예절 등 공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8살 때 서당을 가고 열 다섯 살이 되자 서당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공자의 손자 자사의 제자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어느 날, 어머니가 보고 싶어 잠시 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짓던 베를 끊어 맹자에게 다시 학교로 가라 했습니다. 끊임없는 공부를 역설하였네요. 어머니는 마음이 아프셨겠지만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다시 보낸 것 같습니다. 맹자는 유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졌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많은 제자들이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맹모삼천지교, 단기지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생각하셨네요.

*역사바로보기5에서는 전국시대의 시작과 제자백가, 맹자의 생애를 소개합니다.


6.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키다.

맹자는 위나라 혜왕에게 초대를 받았고 혜왕이 죽은 뒤 양왕이 왕이 되었을 때 제나라 선왕이 초빙했습니다. 하지만 선왕도 정치를 못하자 제나라에서 7년간 있다가 떠났습니다. 그리고 등나라 제후 문공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맹자는 좋은 제도를 알려주었지만 문공은 내년에 시행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맹자는 당장 시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왕도정치, 역성혁명>


*역사 바로보기 6에서는 맹자의 사상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성선설


7. 인간의 타고난 선함을 믿다

맹자는 등나라에 2년 동안 있다가 고향 추나라로 돌아왔습니다. 맹자는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담은 책 《맹자》를 썼습니다. 맹자는 제자들에게 성선설을 주장했습니다. 인, 의, 예, 지라는 선한 본성을 간직하려면 끊임없이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했지요. 이것은 유교 사상에도 있는 말입니다.


조선 궁궐에 있는 이름도 여기서 따온 거지요. 이 때는 춘추 전국 시대의 학자들과 학파들을 통틀어 제자백가라고 합니다. 맹자는 성선설을, 고자는 성무선악설을 주장했습니다. 맹자는 속성이 다르면 본성도 다르다고 했습니다. 유가를 반대하는 양자, 묵자 등의 사상가도 나타났습니다. 맹자는 묵자의 겸애 사상은 가족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묵자의 사상을 맹렬히 반박했습니다. 기원전 289년, 84세의 나이로 맹자는 눈을 감았습니다.<제자백가, 성선설>

끝에 나오는 부록편에는 여러 가지 알찬 구성들이 있어요

중국사 퀴즈, 견문록, 고전 한마디. 토론방과 연표 등이 유익하답니다.


공자는 맹자와 달리 세상을 떠나기 전에 불행을 많이 겪었지만 맹자는 많이 겪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겪었는데 책에 소개가 안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공자와 맹자는 비슷한 사상을 주장했지만 공자는 인, 예, 맹자는 의를 중요하게 여겼지요. 맹자는 공자의 후계자라고 합니다.

역사바로보기와 역사뛰어넘기는 세계사에서 배운 내용이네요, 별별인터뷰가 색다른 소재입니다.

결국 공자나 맹자도 자신의 이상을 받아들여줄 나라, 제후 등을 찾아다녔어요. 초대도 있었지만요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전쟁)만을 위한 제후들에게는 실망을, 생각을 들어준 나라에도 오래 있지는 못했어요, 사람의 생각은 이상과 현실로 사상과 이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부국강병에 힘쓴 제후들에게는 말이죠

특히 조건건국에 힘쓴 정도전이 맹자책을 늘 곁에 두었다고 하니 위정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인 듯 합니다.


또한 유학은 신분제와 계급을 인정하였기에 근대 들어와서 발전의 저해가 되었으며 신문물 수용에도 역행하는 부작용이 있었어요. 그래서 조선시대 근대에 들어 외세에 대해 쉽게 무너진 원인이 된 듯 합니다.

이렇듯 유학은 학문과 이념으로만 되어야지 통치이념이나 종교 등으로는 많은 부작용이 있다는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학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 어려운 유학의 이념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이 값진 경험입니다.

또한 유학자들은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서원이 생긴 것 또한 같은 이유일 듯 합니다. 제 고향 김포에도 중봉 조헌 선생의 우저서원이 있어요

나이 대에 따라 15세를 지학, 30세를 이립, 40세를 불혹, 50세를 지천명, 60세를 이순, 70세를 종심 등이라 한 논어 위정편 내용이 잠시 소개가되는데요 아이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저는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이해가 충분히 가는 말입니다. 저는 참고로 불혹이네요


9살 딸에게는 힘든 여정이었으나 12살 아들은 재미있게 읽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평 작성에 큰 도움을 준 아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다산어린이로부터 책만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어보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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