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 2
김필균 지음 / 제철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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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이름의 꿈과 현실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

학생 때 이따금 어머니께 편지를 쓰면 무척이나 감동하시는 모습에 쑥스러워하면서도 내 문장이 썩 나쁘지 않았군? 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글짓기 대회에서 몇 번인가 상을 타면서 나도 글 쓰는 재주가 있는 건 아닐까?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방황하던 사춘기 시절, 운 좋게도 내가 현실을 피해 숨어든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그땐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 속에는 당장이라도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행복함도 있었고, 내 불행과는 비교도 못 할 만큼 끔찍한 삶도 있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가르쳐주는 책도 있었고, 흥미진진한 역사 책도 있었다. 수많은 이야기들은 세상에서 피해 숨고 싶은 어린 마음이 다시 꿈을 꾸고 살아가게 해주었다.

혹시 글 쓰는 재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레발은 내게 가장 완벽했던 도피처 도서관에서 자연스럽게 희망이 되었고, 내 꿈은 책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 인생이란 게 잘 닦인 고속도로도 아니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흘러 흘러 가다가다 보니 꿈이고, 낭만이고 어디로 갔는지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열심히만 살게 됐다. 그래도 여전히 책은 내 곁에 있었다. 어린 날 습관이란 게 어디 안 가서 결혼에 고비가 찾아왔을 때도 책에서 답을 찾았다. 요리도 책으로 배우고, 육아도 책으로 배우고, 그림도 책으로 배우고, 사춘기를 앞둔 아이들을 위해 청소년을 대하는 법도 책으로 배운다.

아차... 아이들에게 꿈꾸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 꿈이 뭐더라?

뒤늦게 허둥지둥 꿈을 찾겠다고 또 책을 뒤적이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중단된 유학 생활의 한풀이로 중국어를 전공하고, 중국어 공부를 하려고 우연히 읽은 책에서 번역이란 꿈을 찾았다. 당연히 책이 너무 좋은 나이니 번역도 기왕이면 출판 번역이 좋겠다 싶어 하루하루 번역과 관련된 책들을 읽다 보니 글 쓰는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기본적인 언어 실력 외에 번역하고 싶은 책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지고 나니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 같은 게 궁금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김태균 인터뷰집 <문학하는 마음> 북펀딩을 발견했다. 문학 편집자로 10년 넘게 일해 온 프리랜서 편집자 김태균 작가가 문학에 몸담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그림책 작가,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에세이스트, 웹 소설 작가, 문학 평론가, 서평가, 문학잡지 편집자, 문학 기자) 인터뷰한 내용을 모은 책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신박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작가에게는 다른 어떤 특별함이 있을 것만 같고, 평범한 사람들과는 사고방식부터가 다른 어떤 미지의 힘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닐까? 그런 특별함에 대한 동경이 있다.

호기심과 동경이 가득한 마음으로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읽었다. 기본적으로 유쾌하다. '문학' 두 글자에 담긴 어떤 거리감? 무게감? 과 달리 인터뷰어도 인터뷰이도 매우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들이란 게 느껴져서 정말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에 스스로가 깜짝 놀랄 만큼 유쾌한 인터뷰집이다. 김태균 작가님은 '웹 소설'을 써볼까 고민하시던데 이 인터뷰집처럼 재미난 호쾌한 웃음이 담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기대가 된다. 작가님 웹 소설 데뷔 소식 들리면 쿠키부터 열심히 구워야겠다.

각 분야에서 유명한 분들의 입으로 듣는 '문학''문학하는 마음'은 내가 가지고 있던 환상보다 더 멋진 현실이었다. 삶이고 노력이었다. 내가 생각한 미지의 힘, 선천적인 특별함이 아닌 성실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특별함이었다. 사람 냄새가 진동하는 그분들의 노력과 삶은 또 다른 동경을 낳았다.

환상의 나라 같았던 작가나 책 편집자의 삶, 출판업계도 결국은 현실이었다. '꿈'꾸는 사람들의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 고단함을 견뎌내고 버텨내고 끝내 이뤄가는 성실함. 이 현실 속에의 성실함은 환상의 나라에 대한 동경을 넘어 존경과 경애심이 생겨난다. "아, 멋지다!"란 말이 절로 새어 나온다.

"예전에는 급하게, 마흔이 되기 전에 꼭 소설 한 편을 써야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마흔이 넘으니까 오히려 편해졌어요. 인생을 좀 더 길게 보고 한 권이라도 쓰자, 이렇게 바뀌었어요."

그는 계속 쓰는 사람, 그러니 언제라도 반드시 쓸 사람이다.

191p. 정여울, 에세이스트의 마음 中

이 부분을 읽으며 아 그래 '꿈'이란 게 이런 거지... 계속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 그러니 언제라도 반드시 꿈을 이룰 사람. 언제라도 반드시. 뒤늦은 꿈에 조급한 마음에 용기가 한가득 생겨났다.


'문학하는 마음' 그건 아마...

꿈과 현실을 줄타기하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가 가지는 힘,

현실을 살아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꿈꾸게 하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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