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도서관에 눌러 앉아 책을 읽던 시절에 책을 고르는 기준이랄 게 없었다.
그날그날 눈에 띄는 표지나 제목의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장르가 생기고, 작가가 생기고, 문체에 대한 호불호가 생겨났다. 그러면서 독서의 우선순위를 나누는 약간의 기준이 생겼다. 기준이래봐야 결국엔 취향, 선호도 정도였지만.
제대로 대학 공부를 시작하고 독서에 깊이를 더 해가고, 번역 공부를 시작하며 책에 대한 애정이 배로 늘어나면서 책을 요리조리 뜯어보기 시작했다. 번역서의 제목들을 공부해보니 외서가 한국 시장으로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변화에 적용된 수많은 요소들은 알면 알수록 흥미로웠다. 책 표지와 내용의 괴리가 느껴질 땐 책 내용과 상관없이 실망스러움이 느껴졌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표지를 봤을 때 그 안에서 함축된 의미가 느껴지는 책을 발견하면 어떤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알면 알수록 흥미로웠다.
우연한 기회에 한 출판사의 출간 예정인 책 리뷰어에 참여했다. 역사 관련 인문서적이었는데 초고를 먼저 보고 약간의 의견을 보태는 일이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얼마나 설레고 신나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 제본된 원고를 읽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책이라는 한 덩어리가 책의 표지, 일러스트, 글꼴 등등등 얼마나 많은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매개체인지 생생하게 직접 체감하고 나니 책 한 권의 소중함, 귀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때 처음 출판사, 출판 편집에 대한 자각이 생겼다.
먼저 내 책꽂이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소장본들 중 유난히 비중이 높은 출판사 몇 군데가 눈에 띄었다. 다시 그 책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출판사의 색깔이란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운 게 책이고, 흥미로운 게 출판이었다. 그때부터 좋아하는 출판사들의 블로그를 하나하나 이웃추가해 출간 소식이나 다양한 정보를 받고 있다.
책, 번역, 출판에 대한 애정이 날로 날로 커져가던 중, 중국어·번역 공부를 하는 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들이 많아 책상 위에 꽂힌 비중이 가장 많은 애정 하는 출판사 더라인북스(자주 들여다보려고 책상에 꽂기도 하지만... 더라인북스의 책들은 색감이 예뻐서 더 애착이 간다)에서 '1인 출판'에 관한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판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만난 1인 출판사 '책덕'의 자유 일꾼 김민희 님의
<이것도 출판이라고:
여성 코미디언에 빠진 너드걸의 출판 프로젝트>
내가 사랑하는 책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해 책을 펼치고 추천사를 읽자마자 나는 '덕통사고'를 예감했다. 동네 책방 운영자 네 분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작가의 대단함, 멋짐에 '아, 이거 다 읽고 나면 출구는 없는 거로군.'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