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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 자전 고전 - 아버지와 아들, 책으로 말을 걸다
김기현.김희림 지음 / 홍성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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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정의와 경험이 있겠지만, 나에게 좋은 선생은 ‘문턱을 낮춰주는 사람’이다. 다가가기 어려운 어떤 영역의 지식을 쉽게, 그리고 학습자의 이해까지 낮춰주는 사람, 이것이 좋은 선생의 요건이 아닐까. 물론 공부는 철저히 개인의 역량이다. 그러나 그 문을 열어주고, 줄탁동시의 도움을 주는 스승이 없다면 그 깊이를 온전히 누리기는 힘들다. <부전, 자전, 고전>이라는 책 앞에 나는 왜 ‘선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까. 아마 이 책 나오는 3명의 선생 때문일 것이다. 

 

1. 첫 번째 선생 


말할 것도 없이 이 "책”이다. 고전의 중요성은 피곤할 정도로 들어왔다. 지나치게 불었던 인문학 열풍으로 지나가는 사람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면 한두 권의 고전 이름쯤은 들을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고전이란 읽지 않아도 머리맡에 있고, 휴대폰을 열면 거기에 있는, 적어도 매주 두 번은 들어야 할 지루한 일상의 것이다(성경). 그러나 그래서, 너무 일상적이라서, 그 깊이를 알기도 전에 권태를 느끼는 연인처럼 고전/성경과 관계가 부정적으로 형성되기에 십상이다. 

 

이 책은 그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 고전이 간직한 시대를 넘어온 고수의 숨결을 드러내며, 이름만 알던 고전의 의미가 저자들의 관점을 거쳐 분명하게 밝혀진다. 독자로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동안 제목만 알고, 혹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체 참 많이도 여기 저기에 고전을 인용 했었다. 이제야 드러나는 그 의미에 얼굴은 달아올랐지만, 진짜가 가진 놀라움에 풍성한 만족감을 경험한다. 위대한 저자들은 또 얼마나 고마울까. 클릭 한 번으로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지금에 누가 그 이전의 쓰인 어려운 글을 읽으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책장 한켠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그들을 깨우는 힘이 있다. 

 

내용도 기가 막힌다. ‘존재’, ‘타자’, ‘폭력’, ‘국가’, ‘정의’, ‘사랑’, ‘진리’, ‘자유’, ‘세상’, ‘학문’을 주제로 아버지는 신학의 고전을, 아들은 철학 고전을 매개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10가지 주제는 서로 긴밀한 연계성을 가진다. 편지라는 유기적인 전달 매체를 통해 ‘존재(나는 누구인가)’에서, 나와 다른 ‘타자’로, 그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의 문제로 흘러, 결국 ‘학문’에까지 다다른다. 어쩌면 10가지 주제는 누구나 살아가는 일상이며, 경험하는 삶이 아닐까. 고전을 통한 이런 삶의 교훈은 가벼운 시대에 무게감을 더해 준다.   

 

2. 두 번째 선생 


참 특이한 사람, 아빠, 신학자, 김기현이다. 만나보면 그저 이웃집에 있을 것 같은 흔한 아저씨지만, 읽을 때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탁월한 학자가 된다. 동시에 그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높은 깨달음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리에까지 내려놓는다. 글은 매끄럽고, 간결하며, 분명하다. 내용은 어디 하나 걸리는 곳도 없이, 난해한 신학의 고전을 깔끔하게 해석한다. 무엇보다 텍스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근거 있는 비평, 미덕과 한계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은 고전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독서와 글쓰기에도 큰 깨달음도 준다. 

 

잘 쓰인 글 덕분에 1장 <고백록>에서 ‘기억’과 ‘시간’으로 설명하는 ‘존재’ 빠져 읽다 보면, 어느덧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에 다다른다. 가만히 그가 풀어주는 신학의 고전을 읽고 있노라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가지지 않아도 충만함 느낀다. 덕분에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배운다. 뿐만 아니라 “신을 사랑하여 신학자가 되고 신을 사랑하는 길로써 신학을 선택한 아빠(170)”라는 그의 고백에서 진리에 대한 열정과 태도 좋은 가르침이 된다. 

 

사실 이 책은 그가 좋은 선생임을 증명받는 보증서이다. 이 책은 그가 좋은 아버지와 스승으로 살아왔기에 가능한 책이다. 훌륭한 작가도, 위대한 선생도 많지만, 다음 대를 넘기기가 어렵다. 심지어 “목사, 선생 자녀 중에 잘 된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통설 있을 만큼, 목회자의 자녀 양육에 양단이 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아버지와 선생이 되었다. 물론 책에서 아들을 “타자”로 대하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에 맞추려 했던 모습을 반성하지만, 완벽한 사람이 없기에 그런 모습조차 그를 더 긍정적이게 한다. 직접 언급 하지는 않지만,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끌어낼 수 있었던, ‘정직한 대화’와 '본이 되는 삶'이 책에 곳곳에서 발견된다. 

 

3. 세 번째 선생 


아들, 철학도, 김희림이다. 많은 독자들은 <어떻게 그런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요>를 통해 이미 이와 같은 충격을 맛보았다. 7년전 독자들은 성숙하고 날카롭게 질문하던 열정적인 어린 맹수를 기억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 소년의 성장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철학의 고전을 소개하며,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무거운 주제에 눌리기 보다, 자신 만에 관점으로 책을 해석하고, 때로는 비판하며, 고전,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가 이 책의 키 맨이다. 전작과 달리 그의 편지는 뒤에 위치하여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 철학으로 응답하는 구조를 가진다. 아버지가 보낸 신학의 관점을 철학의 눈으로 확장한다. 따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아버지 보다 한 가지 더 과제를 부여받는 데 바로 주제에 대한 신학과 철학의 연관성을 찾는 것이다. 김희림은 완벽하게 이 일을 수행한다. 다른 영역 사이의 교집합을 능숙하게 찾아내는 그를 보며 완숙한 학자의 면모를 보게 된다. 

 

훌륭한 학생이던 이 20대 청년은 이제 좋은 선생까지 되었다. 일반인은 잘 접하지도 못하는 ‘베르그송’, ‘레비나스’로부터 서양 고대 철학자와 작품들, 심지어 동양의 ‘묵자’와 ‘금강경’까지 능숙하게 설명한다. 고전의 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영어, 독어, 프랑스어, 그리스어까지 공부하며 텍스트를 이해하는 그에게서 앎에 대한 지독한 열정을 배운다. 어떻게 이많은 책들을 읽고, 쓰고, 자신의 것으로 갈무리해 가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인생은 시간인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관건이지(27)”라는 아버지 가르침 때문인지 아무래도 그의 시간은 나의 시간과 무게가 다르다. 이미 그는 나의 선생이다. 

 

결론


고전과 선생들은 책 속에서 서로를 읽고, 해석하고, 비평하며, 놀라운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아버지를 통해 아들의 글이 이해되고, 아들을 통해 아버지의 글이 해석된다. 신학과 철학의 만남은 아담과 하와의 하나 됨처럼 그제야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고전의 속살을 벗겨지고, 시대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이 던져진다. 덕분에 짧은 편지로 책(고전) 전체를 본 느낌이고, 그 세부의 내용까지 도전하고픈 열정이 일어난다. 이 책은 고전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선생이 아닐까. 새해에는 책에 흐름에 따라 제시된 ‘고전’과 편지의 말미에 제시된 ‘함께 읽고 싶은 책’을 따라 나만의 여행을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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