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애사
이광수 지음, 이상배 편저 / 열림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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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예측되는 영화는 보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기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시대극이나 사극이 그렇다. <<왕과 사는 남자>> 아들이 예매해 주지 않았다면 보기를 망설였을 것이다. 결론은 좋았다. 너무 좋았다. 어두운 극장에서 펑펑 울다 눈물 범벅이된 서로를 보고 우리 부부는 빵 웃음이 터져버렸다. 기대없이 봤던 영화는 깊은 여운을 주었다. 그러다 단종 이홍휘라는 인물이 궁금해졌다. 책으로 만나야 했다. 단종, 그 남자를 만나야 했다.

반려인 남편이 먼저 책 구매를 물어왔다. 먼저 나온 책들도 있었지만, 출판사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구입했던 열림원 서적에 만족도가 꽤 높았고 그대로가 아닌 편저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다기에 궁금했다. 기존의 이광수저자의 단종애사는 구어와 한자로 가독력이 떨어질 것 같았는데 이상배 저자(아동문학가)의 편저라면 누구나 읽기 좋겠다 싶었다. 읽히지 않는 책은 손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주위에 선물도 하고 싶어 몇 권 더 구입했다.

1441년(음력 세종 23년 7월 23일) 8월 18일
조성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깊은 슬픔을 짊어질 아이가 태어났다. -p12
단종의 탄생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책은 어린 왕의 성장과 슬픔을 담담하게 적어냈다.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은 1457년 6월22일 경복궁을 출발해 여주와 원주를 거쳐 7일만인 28일에 영월 청령포에 도착했다. 영월로 유배돼 1457년(세조 3)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내몰려 머물렀던 청령포. 앞으로는 서강 물줄기가 크게 휘감아 돌고 뒤로는 험한 암봉이 가로막고 있어 절해고도에 뒤지지 않는 유배지였다. 단종의 유배지를 고른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세종의 총애를 받던 신숙주다. 김종서,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을 지켜달라는 세종의 고명을 받들지 못했던 신숙주는 정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종을 억압하는 데 앞장섰다.
강으로 둘러싸인 육지의 섬에 갇힌 어린 왕은 남몰래 흐느꼈다.

금부도사 왕방연은 돌아가는 길에 청령포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시조를 읊었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은 임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의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하늘도 단종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해 여름 장마는 매우 지독했다. 큰물이 들어 청령포 단종어가까지 넘치자 단종은 두 달 만에 영월 읍내의 관풍헌으로 이송됐다. 노산군은 자신의 마음을 시로 읊었다.

달 밝은 밤 두견 울 제
수심품고 누 머리에 기대었으니
네 울음 슬퍼 내 듣기 더욱 애닳구나….

p198 단종의 자규사(子規詞)



위태롭게 이어가던 단종의 운명은 삼촌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일으킨 복위운동이 발각되며 끝을 향해 달렸다. 세조의 명을 받은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영월 관풍헌을 찾았을 때 단종은 보이지 않았다. 금부도사는 단종을 찾을 생각도 않고 울었다고 한다. 단종의 나이 열여섯이었다.

억울하게 떠난 단종의 시신은 서강과 동강이 만나는 강변에 버려졌다. 백성들은 눈물을 지었지만 삼족을 멸한다는 말에 그 누구도 거두려하지 않았다. 늦음 밤, 호장 엄흥도는 '선을 행하다 화를 입는다면 내가 달게 받겠다'며 아들셋과 시신을 동을지산 선산에 묻고 밤마다 남몰래 문안을 드렸다. 그 후 1698년 숙종에 이르러서야 단종으로 복위됐고 무덤은 장릉(莊陵)으로 봉해졌다.

돌멩이 하나, 소나무 한그루 스치는 바람도 단종의 넋이 깃들어 있다는 영월, 릉을 감싸는 소나무들마저 봉분을 향해 머리를 조아린다는 장릉. 그리고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묻어준 엄흥도의 충절의 마음이 책과 함께 내게 들어왔다. 봄빛 책을 들고 영월을 찾아가야겠다.


단종, 그 남자를 만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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