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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에 반대한다 ㅣ 도란스 기획 총서 1
정희진 엮음, 정희진.권김현영.루인 외 지음 / 교양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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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평등’이라는 담론이 수많은 젠더/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한국 사회 현실을 젠더와 섹슈얼리티,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연구 모임 도란스의 첫 기획 총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책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양성평등 담론에 대한 비판은 남성/여성의 범주와 개념 자체의 허구성을 밝힘으로써 개인이 좀 더 젠더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동시에 성적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의 존재와 투쟁을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젠더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자 한다.” 기존의 ‘양성’평등의 의미는 이성애 속의 여성과 남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양성평등 담론은 가부장제 속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벗어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젠더플루이드, 안드로진 등의 젠더퀴어 또는 인터섹스 등을 포괄하지 못한다. 또한 책은 양성이라는 이분법으로 젠더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은 기존의 가부장제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성 중심적 논리임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이 단순히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섯 명의 저자는 각자 다른 관점을 통해 양성평등 담론을 해체하고 재해석한다. 정희진의 글은 남녀 양성이라는 통념을 있는 그대로 반박한다. 남성과 여성은 일종의 규범이지 현실이 아니며, 이러한 규범 속에서 남성의 지위와 여성의 지위는 대칭적일 수 없다. 그렇기에 양성평등 담론에서의 평등의 기준은 어디의 속하는지를 묻는다.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성적 소수자라 불리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젠더퀴어의 존재를 통해 양성이라는 개념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이 챕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느낀 지점은 “양성은 두 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다. 글은 이 문장에 앞서 언어, 인종, 지역적 사례를 들며, 어느 한 쪽이 대칭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지목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강자의 권력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A을 규정함으로써 범주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평등하다 말하는 것은 오히려 권력을 쥔 B가 A를 지배한다. 정희진은 양성평등 담론의 전개가 이와 같이 전개되었음을 지적한다.

 

 두 번째 챕터를 쓴 루인의 글은 양성이라는 이분법적 사회에서 퀴어의 의미, 존재성과 가시화 방식을 논한다. 이를 위해 고위직 남성의 성추문 사건들을 큐레이팅하고, 음란(성)이 범죄가 되는 한국사회의 성문화를 비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서 성적 타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논한다. 루인은 2014년 전 지방검찰청장이 공연음란죄로 체포된 사건을 끌어온다. 해당 사건을 통해 범죄가 언론을 통해 큐레이팅 하는 방식을 논하고, 음란 행위는 그 자체로 폭력이며 범죄인지, 공연음란죄의 공공성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음란 행위를 심각한 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는지를 이야기한다. 루인을 이를 위해 퀴어 정치학, 퀴어 범죄학을 이용한다. 글은 퀴어는 규범과 불화하고, 퀴어 정치학은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에 따른 역할을 부여하는 권력 작동 구조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트랜스젠더퀴어가 한국에서 처음 등장하게 된 계기가 범죄로써 언론에 알려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섹슈얼리티를 젠더적 규범에 따라 범죄로 규정해왔다는 역사를 증명한다. 이에 이어, 퀴어 범죄학의 비평 개념을 채택하여 전 지검장의 성추문 사건을 재검토한다. 섹슈얼리티와 공공성의 문제가 범죄라는 카테고리로 얽혀 들어갔을 때 등장하는 ‘건전한 사회적 통념’과 ‘보통인’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루인의 글은 전 지검장 사건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대신, 이를 통해 섹슈얼리티와 공공성의 문제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을 통해 규정되는지 사유한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을 토픽으로 삼은 권김현영의 글은 오직 연령만으로 양성에게 동일한 기준을 부여하는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내부의 모순을 드러내며 양성개념의 이중성과 모순을 드러낸다. 실제 가해자는 성인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의 수는 남성 가해자와 여성 가해자의 사건이 비슷하게 등장하는지 등을 지적하고, 청소년의 몸을 타자화하지 말고 사회적 몸으로 볼 것을 제안하면서, 한국의 남성 문화 내에서 남자 청소년과 여자 청소년의 섹슈얼리티가 매우 다른 의미로 재현되고 실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의제강간죄의 연령 기준은 젠더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모순을 파고들어 양성 개념에서 연령이 어떻게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지를 탐색한다. 류진희의 글은 양성평등 패러다임 이후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을 다룬다. 메갈리아에 대한 정치적 분석을 하면서, 여성 혐오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젠더 논쟁 대신 매체 자체와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을 주목한다. 온라인 공간이 더 이상 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도 온라인 공간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메갈리아 혹은 트위터 페미니스트를 논하고, 기존 페미니스트와 영 페미니스트들의 연대 가능성을 논한다. 핸채윤의 글은 양성평등 담록 밖의 주체들의 투쟁을 분석할 대 양성 개념과 한국 사회상을 다룬다. 동성애가 이성애적 가족주의를 위기에 빠트린다는 한국 개신교의 논리에 맞서, ‘동성애와 개신교’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재해석한다. 글의 접근 방식은 단순히 성서에 기반한 개신교 세력의 동성애 혐오를 분석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 개신교가 동성애 혐오를 어떻게 끌어와 이용해왔는지를 분석한다. 동시에 타자사 발명되는 방식을 분석하며, 여성의 타자화와 동성애의 타자화가 유사한 맥락으로 전개되었음을 밝히고, 이러한 과정에서 양성 중심의 젠더개념을 재구성하고 해체할 것을 요구한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를 퍼낸 도란스는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를 젠더와 섹슈얼리티, 탈식민주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연구 노동 집단이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페미사이드가 가시화되고, 메갈리아의 등장과 함께 벌어진 온라인 상의 ‘젠더 워(Gender War)’가 일어났으며, 트위터 등의 SNS를 기반으로 한 영 페미니스트들이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활동을 벌이는 지금, 도란스의 연구는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한국 현대사에 적용해 지금의 현상을 도출해내는 작업을 이어간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젠더 이슈가 터지는 지금, 한국 사회 속 젠더 이슈를 탐색하는 도란스의 연구를 접한다면 그 원인을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를 경유하는 현대사, 개신교가 득세하고 인터넷과 SNS의 빠른 보급 등으로 이런 저런 상황이 벌어지는 한국에 알맞은 이론을 탐구하는 도란스의 연구는 앞으로도 중요한 자료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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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 - 보통의 행복, 보통의 자유를 향해 달린 어느 페미니스트의 기록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 지음, 정미화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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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기와 페미니즘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의 책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의 소개글은 ‘보통의 행복, 보통의 자유를 향해 달린 어느 페미니스트의 기록’이라고 책을 소개한다. 스무 살,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한 개인이 우울증과 약물에 빠져 살다가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활력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는 얼핏 듣기에는 다분히 신파적인 감동실화 영화의 줄거리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기 전, 저자인 카트리나가 온라인 문학 비평 저널 <시드니 리뷰 오브 북스>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페미니즘과 문화, 정치에 대한 글을 써오던 사람이라는 것을 되새겨 봐야 한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오랜 시간 글을 써오던 사람이 달리기와 페미니즘을 자신의 삶에 녹여낸 에세이를 쓴다고 할 때, 어떤 기대감이 생길까?

 

 사실 달리기와 페미니즘은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소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소재를 이어서 들었을 때 떠오르는 사진이 하나가 있다. 바로 1967년 보스턴 마라톤을 공식적으로 완주한 첫 여성 마라토너 캐서린 스위처의 사진이다. ‘여자가 마라톤을 뛰고 있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라톤 6km 구간을 지나던 캐서린을 저지하려는 두 마라톤 감독관과, 그러한 감독관을 저지하려는 스위처의 코치, 번호표를 떼어버리려는 감독관의 위협을 무릅쓰고 달리기를 이어가는 스위처의 사진. 그는 결국 4시간 20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올해, 스위처는 다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해 그 때와 같은 261번 번호표를 달고 4시간 44분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다.

 

 물론 캐서린 스위처는 ‘공식적인’ 첫 여성 마라토너이기에, 이전에도 장거리 달리기를 하려던 여성들은 많았다. 스위처가 마라톤을 달리게 된 계기가 된 비공식적으로 처음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 로베르타 깁을 비롯해, 20세기 초부터 마라톤과 크로스컨트리 등 다양한 장거리 달리기 대회에 참가하려 한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출산을 위한 몸에 무리가 온다””자궁이 떨어진다””달리기 선수의 몸에는 여성성이 결여된다””달리는 여성의 모습은 여성 같아 보이지 않는다”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달리기를 하기 위해 저항해왔다. 카트리나는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를 통해 이러한 여성 달리기의 역사를 정리하고 조명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낸 페미니즘 에세이로 책을 써내려 간다. 달리기를 하는 여성에게 그 목적은 다이어트뿐인가? 여성은 남성처럼 그냥 내켜서 달리기를 할 수는 없을까? 밤과 새벽에 조깅을 하는 여성은 왜 범죄의, 시선성희롱의 표적이 되어야 하는가? 스포츠브라, 여성용 러닝화 등 여성용 달리기 용품은 이다지도 늦게 나왔고, 핑크색으로 가득할까?

 

 카트리나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성 달리기의 역사와 그에 따른 질문들은 달리기라는 아주 단순하고 누구나 원할 때 할 수 있는 행위마저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제한 당한다. 기원전 마라톤 평원을 달린 페이디피데스에서부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마라톤의 역사 속에서 여성 마라톤의 역사는 고작 45년 밖에 되지 않았다. 카트리나는 책의 첫 챕터인 “나이키의 ‘She Run The Night’”행사에 참여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시작한다. 밤거리를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 자유롭게 달리는 것과, 여전히 핑크빛과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회자가 공존하는 행사는 아직도 여성의 달리기가 남성의 달리기와 온전히 같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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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이 책 전반에 걸쳐서 달리기와 페미니즘의 이야기만 풀어내는 것은 아니다. 장거리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써 느끼는 성취, 스무 살 때 닥쳐온 슬픔과 그것을 털어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페이디피데스에서부터 이어지는 장거리 달리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 등 역시 책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여성이며 페미니스트인 저자의 관점을 더해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라는 한 개인의 인생이 책 속에 녹아 든다. 그 경험을 통해 페미니즘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부분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 그로 인한 삶의 관점과 태도의 모습이 카트리나의 글을 통해 느껴진다. 페미니즘의 이론과 운동을 논하는 책은 아니지만, 그것이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닿아있는지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은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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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청년 새끼 - 망가진 나라의 청년 생존썰
최서윤.이진송.김송희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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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철마다 투표도 안 하는 개새끼가 되는 세대. (누가 규정한 것인지는 몰라도) 결혼, 출산, 연애라는 의무를 포기한 세대. 노오력을 할 생각은 못할 망정 눈만 높아 취직도 못하는 세대. 세상에 불만은 많으면서 바꾸려고 움직이지 않는 세대. 대학은 나왔으면서 생각은 없어 보이는 세대. 승리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 고가의 스마트폰을 이용하지만 가난한 세대.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며 탈조선을 외치는 세대…… 맞는 말과 틀린 말이 뒤섞인 청년세대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서 청년의 목소리가 담긴 말이 얼마나 있을까? X세대, 삼포세대, N포세대까지 이어지는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말 가운데 청년이 직접 내세운 이름이 있을까? [캠퍼스 씨네21] 기자인 김송희, 비연애인구 잡지 『계간홀로』의 발행인 이진송, 독립잡지 『월간잉여』의 발행인 최서윤 세 사람이 모여 쓴 『미운 청년 새끼』는 현재 청년세대로 불리는 사람의 입과 손으로 써내려 간 진짜 청년의 ‘썰풀이’이다.
 
 먹고사니즘, 정치, 문화, 연애 주거 다섯 가지 챕터로 구성된 『미운 청년 새끼』는 아르바이트부터 인턴과 취직, 고시원, 연애와 비연애, 일베와 메갈 그리고 페미니즘 등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야기를 청년세대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아니, 토해낸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우리는 떠들어야 했다’라는 제목의 대담으로 시작하는 책은 세 저자가 왜 떠들기라도 해야 했는지, 떠들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한다. 『미운 청년 새끼』는 대담에서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시작한다.
 
 날카롭고 생생하며 익숙하고 필요한 이야기가 ‘갑을병정의 정정정정’, ‘청년 대상화와 여성 대상화’, ‘흙자식이라뇨?’, ‘N포세대라는 말은 불편하다’, ‘연애라는 대국민 팀플’, ‘장거리 통학러의 슬픔’과 같은 제목의 글들로 펼쳐진다. 2016년 하반기에 개봉한 영화 <아수라>와 <나, 다니엘 블레이크>, SNS에서 거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행정부의 “빻음’을 만천하에 알린 가임기 여성지도, 완벽하진 않지만 드디어 청년세대에게 뭔가 승리했다는 느낌을 일깨워준 탄핵정국 등 책이 출간된 현재의 시점과 멀지 않은 이야기가 여러 글에 나누어 담겨있다. 청년세대의 하루하루는 왜 이렇게 엉망진창인지, 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 힘든 시간인지, 과연 청년이 자신의 힘으로 온전한 집과 직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미운 청년 새끼』는 N포세대니 뭐니 하는 청년세대에 대한 네이밍은 청년을 대상화하고,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보다 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선별해온 기성세대에 대항한다. 내온 최서윤, 이진송, 김송희 세 저자는 기자로, 독립잡지 발행인으로, 트위터와 웹진, 블로그로, 보드게임과 단편영화로 목소리를 내왔다. 투표만큼, 거리의 시위만큼 중요한 것은 목소리를 잃지 않는 것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공감과 연대를 내포한다. 동시에 책을 읽는 또래 세대에게 목소리를 낼 용기와 필요성을 전해준다. 『미운 청년 새끼』는 여전히 팍팍한 내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탄핵으로 승리를 맛보았지만 정작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는 세대에게 함께 떠들자고 이야기한다. 시대정신이 무슨 거창한 말일까. 지금을 사는 우리의 썰이 시대정신임을 『미운 청년 새끼』를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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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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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저수지의 개들>을 좋아한다.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을 두고 10분 정도 이어지는 오프닝의 대화 장면은 굉장히 잘 짜인 장면이고, 멋진 대화 장면으로 가득한 타란티노 영화 세계의 시발점과도 같다. 동시에 그 장면은 미소지니로 가득하다. 타란티노는 타란티노 본인을 포함한 여러 미스터들에게 ‘Like a Virgin’에 관련한 질펀한 농담으로 가득한 대사를 주고, 관객에게 그것을 보며 낄낄거리며 웃기를 종용한다. <재키 브라운>이나 <데스 프루프> 같은 여성중심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타란티노이지만, <저수지의 개들>의 오프닝에서 드러나는 미소니지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장면을 좋아했고, 지금도 그 장면이 영화 속 인물관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좋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문화비평 에세이인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저자 록산 게이도 비슷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bitch’와 같은 여성 비하적 단어로 가득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도 있고, 어떤 영화나 드라마의 미소지니적인 면을 인지하면서 그 작품을 좋아하기도 한다. ‘핑크색을 좋아하지 않는다.‘’남성과의 섹스를 거부한다.’ ‘제모를 하지 않는다.’ ‘진하고 센 화장을 즐겨 한다.’ 같은 정형화된 페미니스트의 모습과 록산 게이의 모습은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아니다. ‘페미니즘: 복수명사’라는 서문의 제목처럼, 그는 페미니즘은 천편일률적인 무언가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페미니즘엔 여러 갈래가 있고, 페미니즘을 따르는 사람의 젠더와 인종 역시 다양하며, 그렇기에 각자가 지지하는 페미니즘을 존중하고 공존하여야 한다. 


 록산 게이는 자신의 정형화된 페미니스트, 전문가적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님을 밝힌다. 그는 자신이 나쁜 페미니스트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부족한 페미니스트임을 고백하면서도 페미니즘 이슈에 자신의 발언권을 더하고 영화, 음악, 드라마 등 문화 속 성차별적인 면을 지적한다. 자신이 부족한 페미니스트일지언정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책의 추천사를 이렇게 적었다.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대한 저항이자, ‘우리’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고, 동시에 규범화된 페미니즘은 불편하지만 자기만의 신념은 숨기지 않겠다는 ‘나의 페미니즘’이다”


 아이티계 흑인이자 미국인이고 여성이며 페미니스트인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자신의 관점으로 ‘록산 게이의 페미니즘’을 담아낸다. 로빈 시크의 노래 ‘Blurred Lines’와 <노예 12년>, <헬프>와 같은 영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등의 드라마 속 인종과 젠더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강간문화와 여성의 생식권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 담겨있다. 그의 개인사적이면서도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에세이는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답을 준다. 물론 그의 모든 말이 옳다고 할 수 없고, 책을 읽는 독자의 페미니즘은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나쁜 페미니스트』에 담긴 젠더와 인종에 대한 에세이를 통해 다양한 페미니즘에 대한 존중과 지지,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것. 이것이 록산 게이가 말하는 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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