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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 -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어떻게 여론을 만들고 역사의 경로를 바꾸는가
크리스 샤퍼 지음, 김선 옮김 / 힐데와소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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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로운 기술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다만 새로운 기술은 인간의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 방식을 바꾸어 공동체의 사회적 구조를 돌이킬 수 없이 변화시킨다”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를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야기다. 2016년 트럼프의 선거 이후 그의 승리가 SNS를 통해 벌어진 다양한 방식의 활동을 통한 것이었음이 밝혀졌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거대한 해킹>과 <소셜 딜레마> 등의 다큐멘터리 영화나 수많은 기사, 책들이 이를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10년째, 인스타그램 또한 그와 유사한 기간 동안 사용하고 있는 헤비 SNS 유저로써, 위의 이야기는 지난 10년 간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체득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의 맥락에서 박근혜 정권의 ‘댓글 공작’과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검열을 봐왔고, 동시에 ‘#O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박근혜의 탄핵, 미투운동과 현재진행형인 낙태죄폐지 운동을 목격했다. 새로운 기술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이 명제는 SNS를 오랜 시간 사용한 유저라면, 그리고 SNS가 운영되는 방식에 대해 약간이라도 고민을 가져본 이들이라면 얼추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가 크리스 샤퍼가 이 명제를 처음부터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것이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그는, 내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사례들을 언급하기 전 ‘주의력 경제’라 요악할 수 있는 SNS의 작동방식을 먼저 소개한다. 물론 우리는 알고리즘이 내가 인터넷에서 자주 들여다본 상품의 광고를 띄우고, 연관된 유튜브 영상을 소개하고, 영화, 책, 음악을 추천하고, 그러한 계정들을 알려준다는 것을 안다. 크리스 샤퍼가 책의 전반부에서 증명한 것은 이러한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음을 심리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과 유사한 이야기를 하는 계정을 추천하여 내 SNS 피드를 그러한 계정들로만 채우도록 유도한다던가, 유사한 키워드 또는 해시태그를 지닌 콘텐츠만을 긁어모아 소개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인간의 주의력에는 한계가 있으며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주 노출되는 정보들을 우리가 더 쉽게 받아들인다는 설명이 붙는다. 물론 이는 책의 내용을 아주 짧게 요약한 것인 것이다. SNS는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을 통해 입력하는 거의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이름, 성별, 국적, 인종, 결혼/연애 여부, 가족관계, 학력 등 페이스북 정보란에 입력할 수 있는 정보들 외에도, 실시간 위치정보 등의 메타데이터, 내가 직접 정보를 게시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게시물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령 결혼/연애 유무나 반려동물의 유무, 정치성향, 출퇴근 경로 등), 온라인에서 내가 검색하고 보고 읽고 들은 모든 영상, 사진, 문서의 정보 등. 물론 이러한 정보만으로는 내 SNS 계정의 성향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때문에 SNS는 유사한 정보를 지닌 다른 계정들의 정보들을 수집하고 빅데이터화해, 계정들을 다시 특정 군으로 묶어내는 ‘협업 필터링’을 거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다시금 내 스마트폰 화면을 채우고, 이는 다시 ‘협업 필터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피드백 루프’는 왓챠나 넷플릭스 등의 콘텐츠 추천 방식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쉽게 말해, 왓챠는 내가 평점을 높게 준 영화에 평점을 높게 준 이들이 평점을 높게 준 다른 영화들을 추천해준다. 그것이 정보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수집되어 모든 방면에서의 광고와 콘텐츠 타겟팅으로 이어지는 것이 SNS다.


<거대한 해킹>은 이러한 타겟팅이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와 힐러리 어느 쪽에도 표를 주지 않았을 중도층의 사람들에게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2016년 선거 당시 ‘케임브릿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과 함께 특정 성향의 계정들을 분류해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에 동원되도록 했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거대한 해킹>은 ‘케임브릿지 애널리티카’에 대한 내부고발과 폭로에 집중하며 유사한 사건들을 다루지 않았다. 반면 크리스 샤퍼는 1부의 3장에서 SNS를 프로파간다에 특화된 기술로 규정하며 그것이 다른 방식으로 활용된 사례를 보여준다. 여기엔 긍정적인 사례와 부정적인 사례 모두 포함된다. 전자의 경우 2014년 미국 퍼거슨시에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 운동이다. 이는 SNS가 차별에 대응하고 공권력의 탄압에 대응할 조직적인 운동을 가능케 할 창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물론 2018년 시작된 미투운동 또한 긍정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크리스 샤퍼가 이것과 대비시키는 것은 역시 2014년에 벌어진 ‘게이머게이트’ 사건이다. 포챈이나 ‘더러운 서브레딧’ 등에서 활동하는 안티-페미니스트 게이머, 다양상을 포용하려는 게임업계의 방향성에 불만을 가진 백인남성 게이머들이 조이 퀸이라는 여성 게임 프로그래머를 공격한 사건이다. 조이 퀸의 게임에 대한 ‘가짜뉴스’에서 시작된 사건은 조이 퀸에 대한 물리적 협박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게이머게이트’를 통해 모종의 가능성을 본 이들은 성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혐오 등을 내세우며 ‘대안 우파’로 조직화, 세력화되었다. 이들의 활동이 새로이 선거가 치러진 2020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이라면 SNS를 통한 조직적인 움직임일 것이다. 두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책의 2부는 2016년 미국 대선은 물론 우크라이나 합병을 위해 러시아 정부에서 진행한 정보공작과 함께 필리핀, 브라질, 미얀마에서 벌어진 ‘민주주의의 해킹’을 다룬다. 각국의 SNS 사용 실태를 통해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이는 SNS 특유의 확증편향에 따라 퍼져 나가며, 이는 결국 선거의 결과로 이어진다. 이들은 언론탄압, 소수민족 탄압, 정권유지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운용하고 있다. <거대한 해킹>에서도 등장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은 위의 국가들에서 벌어진,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비교적 세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앞서 ‘Black Lives Matter’의 사례에서 언급한 것처럼 SNS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크리스 샤퍼는 2011년 ‘아랍의 봄’을 예시로 들어 그것의 한계를 설명한다. 2011년 이집트에서 독재정권을 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SNS를 통해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행진을 조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의 시작은 어떤 의제를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SNS는 혁명의 속도를 조절하진 못한다. 오히려 그것을 더 가속화한다.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된 혁명은 기존의 정권을 무너뜨린 이후에 다가올 혼란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크리스 샤퍼는 그것이 군부 정권이 들어서고, 쿠데타가 일어나는 등의 혼란이 이어졌던 이유라 설명한다. SNS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화하며 의제를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만, 그것의 속도는 혁명 이후에 요구되는 혼란을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공동체를 형성하진 못한다. 현재 홍콩과 태국 등지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시위, 혹은 한국에서 SNS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러 운동들의 한계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SNS는 하나의 견고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대신, 빠르게 모이고 빠르게 흩어지는 상황을 유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데이터, 민주주의를 조작하다』는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거대서사의 붕괴를 이야기하던 68이후의 담론은 SNS 등장과 발전을 통해 도래한 ‘탈진실’의 거대 서사를 구축했고,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해 하나의 국가나 기업, 조직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다. 물론 일상의 범위에서 우리는 SNS가 우리의 주의력을 충분히 앗아가지 못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다양한 목적을 지닌 복수의 계정을 사용하며 자신에게 들어오는 정보량을 통제한다던가, 특정 알고리즘으로 치우친 듯한 SNS 피드를 마주한다면 새로 계정을 파거나 로그아웃을 하고, 기존 계정의 성향과 반대되는 계정을 팔로우하는 등의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범주에서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SNS를 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자연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샤퍼는 “민주주의는 정보를 바탕으로 깊이 생각하고 서로 설득하는 시민들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이 중요하다. 우리가 소비하는 정보의 온전함을 신뢰할 수 없다면 민주적인 과정 역시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개인의 실천은 물론, 국회, 정부, 기업 경영진 등이 SNS의 허위조작정보 프로파간다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해결책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위터는 트럼프 진영의 허위조작정보 공세를 막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유포하는 듯한 트윗에는 경고문을 달고, 리트윗 버튼을 누르면 ‘리트윗하기/트윗 인용하기’라는 두 개의 선택지 대신 바로 인용 트윗 쓰기로 넘어가고, 링크가 포함된 트윗을 리트윗하기 전엔 링크를 클릭해 뉴스를 확인해보라는 경고문이 뜬다. 이러한 조치는 당연히 트위터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는 동시에 그만큼 트위터 내에서 빠르게 정보가 회전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대선 이후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것을 예정한 것과 다르게, 대선이 끝난 지금도 이 조치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우리는 일정 부분의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정보를 우리의 입에 떠먹여 주는 것을 거부하고 무엇이 독버섯인지 식용버섯인지 구분할 수 있는 감식안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고, 트위터의 조치는 그러한 감식안을 반강제로 갖추도록 유도하는 단발성 예방주사에 가깝다. 우리는 그 이후를 상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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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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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한 심리상담사가 이상증세를 겪는 김지영의 이야기를 기록한 내용을 세세한 단어들로 그려낸다. 소설은 추석이 포함된 2015년 가을에서 시작한다. 82년생인 김지영은 누군가에게 빙의된 듯 행동한다. 남편의 장모처럼, 얼마 전에 죽은 대학 동아리 선배처럼 말을 한다. 가부장제에 토대를 둔 한국 사회 속에서 희생되어 온 여성들이 김지영의 몸을 빌어 다시 돌아온 것처럼 소설의 첫 챕터가 묘사된다. 글은 이어서 1982년, 김지영이 태어났을 때의 시점으로 옮겨간다. 소설은 그의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이 담긴 1982년~1994년, 대학시절이 담긴 1995년~2000년, 첫 직장과 그곳에서의 생활이 담긴 2001년~2011년, 결혼생활을 담아낸 2012년~2015년의 각 챕터로 나뉘어 있다. 김지영의 삶을 세세하게 쫓는 조남주 작가의 문장들로 독자는 김지영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아들을 위해 셋째까지 낳아야 했던 김지영의 어머니, 두 손녀와 막내인 손자를 대놓고 차별 대우하는 할머니, 자꾸만 괴롭히는 짝꿍 남학생의 행동이 다 좋아해서 하는 것이라고 납득시키려는 선생님, 김지영을 “누가 씹다 버린 껌”이라고 표현하는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대학 동아리 남자 선배, 먹기 싫은 술을 강권하며 성희롱적 농담을 일삼는 거래처 부장, 그 밖에 용돈/학업/동아리/취업/임금/육아 등 34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피부로 느껴지는 ‘여자이기에’ 겪는 온갖 차별들이 소설 속에서 그려진다. 이러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으레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거나, 외모가 특별하다거나 등의 성격을 부여받고 사회적인/개인사적인 억압들을 타파하는 어떤 영웅처럼 그려지곤 한다. 지난 3월에 개봉한 <히든 피겨스>라는 작품 등에서 이러한 경향이 드러난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은 소설 전체에 걸쳐 김지영의 평범성을 강조한다. 독자가 책을 펼치면 보게 되는 첫 문단은 기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김지영의 신상정보를 적어 내린다.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에 결혼해 지난해 딸을 낳았다. ~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원 양은 돌이 막 지난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 동안 다닌다.”

 

김지영과 남편의 심리상담사가 소설의 서술자로 설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조남주 작가는 김지영이 34년의 세월, 아니 그의 어머니가 김지영을 낳기 전부터 겪었던 성차별을 덤덤하게 기록한다. 마치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여성이 겪었을 상황들을 세세하게 묘사해나간다. 그렇기에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이라는 인물은 평범성과 객관성을 획득한다. 김지영이라는 이름이 82년생 여성의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이라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기능한다. 동시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김지영이라는 인물에 몰입하고, 자신을 대입하고, 그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여긴다. 책의 문장들은 김지영에게 감정이입할 여지를 많이 남기지 않지만 독자는 김지영에게서 자신이 느껴왔던 감정을 읽어낸다. 이러한 부분이 『82년생 김지영』의 가장 놀라운 성취이며, 생애 거의 모든 순간에 걸쳐 한국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여성이 성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명제의 증거이다. 김지영의 삶을 기록한 심리상담사가 40대의 남성이며, 자신의 아내와 김지영을 통해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차별당하고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있음을 인지하지만, 출산으로 인해 퇴직하는 부하직원을 보며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175페이지에 걸쳐 김지영의 삶을 세세하게 적어 내린 심리상담사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결국 수많은 김지영을 희생시키고 착취하는 위치에 서 있다. 『82년생 김지영』의 마지막은 법제도가 개입하여 유리천장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소설 밖 현실 속, 심리상담사와 동년배의 남성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조남주 작가가 마지막 문단을 통해 내린 결론에 뒤통수가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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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1
정희진 엮음, 정희진.권김현영.루인 외 지음 / 교양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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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성평등이라는 담론이 수많은 젠더/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한국 사회 현실을 젠더와 섹슈얼리티,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연구 모임 도란스의 첫 기획 총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책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양성평등 담론에 대한 비판은 남성/여성의 범주와 개념 자체의 허구성을 밝힘으로써 개인이 좀 더 젠더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다. 동시에 성적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의 존재와 투쟁을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젠더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자 한다.” 기존의 양성평등의 의미는 이성애 속의 여성과 남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양성평등 담론은 가부장제 속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벗어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젠더플루이드, 안드로진 등의 젠더퀴어 또는 인터섹스 등을 포괄하지 못한다. 또한 책은 양성이라는 이분법으로 젠더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은 기존의 가부장제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성 중심적 논리임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이 단순히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섯 명의 저자는 각자 다른 관점을 통해 양성평등 담론을 해체하고 재해석한다. 정희진의 글은 남녀 양성이라는 통념을 있는 그대로 반박한다. 남성과 여성은 일종의 규범이지 현실이 아니며, 이러한 규범 속에서 남성의 지위와 여성의 지위는 대칭적일 수 없다. 그렇기에 양성평등 담론에서의 평등의 기준은 어디의 속하는지를 묻는다.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성적 소수자라 불리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젠더퀴어의 존재를 통해 양성이라는 개념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이 챕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느낀 지점은 양성은 두 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다. 글은 이 문장에 앞서 언어, 인종, 지역적 사례를 들며, 어느 한 쪽이 대칭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지목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강자의 권력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A을 규정함으로써 범주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평등하다 말하는 것은 오히려 권력을 쥔 B A를 지배한다. 정희진은 양성평등 담론의 전개가 이와 같이 전개되었음을 지적한다.

 

 두 번째 챕터를 쓴 루인의 글은 양성이라는 이분법적 사회에서 퀴어의 의미, 존재성과 가시화 방식을 논한다. 이를 위해 고위직 남성의 성추문 사건들을 큐레이팅하고, 음란()이 범죄가 되는 한국사회의 성문화를 비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서 성적 타자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논한다. 루인은 2014년 전 지방검찰청장이 공연음란죄로 체포된 사건을 끌어온다. 해당 사건을 통해 범죄가 언론을 통해 큐레이팅 하는 방식을 논하고, 음란 행위는 그 자체로 폭력이며 범죄인지, 공연음란죄의 공공성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음란 행위를 심각한 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는지를 이야기한다. 루인을 이를 위해 퀴어 정치학, 퀴어 범죄학을 이용한다. 글은 퀴어는 규범과 불화하고, 퀴어 정치학은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에 따른 역할을 부여하는 권력 작동 구조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트랜스젠더퀴어가 한국에서 처음 등장하게 된 계기가 범죄로써 언론에 알려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섹슈얼리티를 젠더적 규범에 따라 범죄로 규정해왔다는 역사를 증명한다. 이에 이어, 퀴어 범죄학의 비평 개념을 채택하여 전 지검장의 성추문 사건을 재검토한다. 섹슈얼리티와 공공성의 문제가 범죄라는 카테고리로 얽혀 들어갔을 때 등장하는 건전한 사회적 통념보통인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루인의 글은 전 지검장 사건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대신, 이를 통해 섹슈얼리티와 공공성의 문제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을 통해 규정되는지 사유한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을 토픽으로 삼은 권김현영의 글은 오직 연령만으로 양성에게 동일한 기준을 부여하는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내부의 모순을 드러내며 양성개념의 이중성과 모순을 드러낸다. 실제 가해자는 성인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의 수는 남성 가해자와 여성 가해자의 사건이 비슷하게 등장하는지 등을 지적하고, 청소년의 몸을 타자화하지 말고 사회적 몸으로 볼 것을 제안하면서, 한국의 남성 문화 내에서 남자 청소년과 여자 청소년의 섹슈얼리티가 매우 다른 의미로 재현되고 실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의제강간죄의 연령 기준은 젠더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모순을 파고들어 양성 개념에서 연령이 어떻게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지를 탐색한다. 류진희의 글은 양성평등 패러다임 이후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을 다룬다. 메갈리아에 대한 정치적 분석을 하면서, 여성 혐오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젠더 논쟁 대신 매체 자체와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을 주목한다. 온라인 공간이 더 이상 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도 온라인 공간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메갈리아 혹은 트위터 페미니스트를 논하고, 기존 페미니스트와 영 페미니스트들의 연대 가능성을 논한다. 핸채윤의 글은 양성평등 담록 밖의 주체들의 투쟁을 분석할 대 양성 개념과 한국 사회상을 다룬다. 동성애가 이성애적 가족주의를 위기에 빠트린다는 한국 개신교의 논리에 맞서, ‘동성애와 개신교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재해석한다. 글의 접근 방식은 단순히 성서에 기반한 개신교 세력의 동성애 혐오를 분석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 개신교가 동성애 혐오를 어떻게 끌어와 이용해왔는지를 분석한다. 동시에 타자사 발명되는 방식을 분석하며, 여성의 타자화와 동성애의 타자화가 유사한 맥락으로 전개되었음을 밝히고, 이러한 과정에서 양성 중심의 젠더개념을 재구성하고 해체할 것을 요구한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를 퍼낸 도란스는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를 젠더와 섹슈얼리티, 탈식민주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연구 노동 집단이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페미사이드가 가시화되고, 메갈리아의 등장과 함께 벌어진 온라인 상의 젠더 워(Gender War)’가 일어났으며, 트위터 등의 SNS를 기반으로 한 영 페미니스트들이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활동을 벌이는 지금, 도란스의 연구는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한국 현대사에 적용해 지금의 현상을 도출해내는 작업을 이어간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젠더 이슈가 터지는 지금, 한국 사회 속 젠더 이슈를 탐색하는 도란스의 연구를 접한다면 그 원인을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를 경유하는 현대사, 개신교가 득세하고 인터넷과 SNS의 빠른 보급 등으로 이런 저런 상황이 벌어지는 한국에 알맞은 이론을 탐구하는 도란스의 연구는 앞으로도 중요한 자료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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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 - 보통의 행복, 보통의 자유를 향해 달린 어느 페미니스트의 기록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 지음, 정미화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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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기와 페미니즘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의 책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의 소개글은 보통의 행복, 보통의 자유를 향해 달린 어느 페미니스트의 기록이라고 책을 소개한다. 스무 살,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한 개인이 우울증과 약물에 빠져 살다가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활력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는 얼핏 듣기에는 다분히 신파적인 감동실화 영화의 줄거리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기 전, 저자인 카트리나가 온라인 문학 비평 저널 <시드니 리뷰 오브 북스>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페미니즘과 문화, 정치에 대한 글을 써오던 사람이라는 것을 되새겨 봐야 한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오랜 시간 글을 써오던 사람이 달리기와 페미니즘을 자신의 삶에 녹여낸 에세이를 쓴다고 할 때, 어떤 기대감이 생길까?

 

 사실 달리기와 페미니즘은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소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소재를 이어서 들었을 때 떠오르는 사진이 하나가 있다. 바로 1967년 보스턴 마라톤을 공식적으로 완주한 첫 여성 마라토너 캐서린 스위처의 사진이다. ‘여자가 마라톤을 뛰고 있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라톤 6km 구간을 지나던 캐서린을 저지하려는 두 마라톤 감독관과, 그러한 감독관을 저지하려는 스위처의 코치, 번호표를 떼어버리려는 감독관의 위협을 무릅쓰고 달리기를 이어가는 스위처의 사진. 그는 결국 4시간 20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올해, 스위처는 다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해 그 때와 같은 261번 번호표를 달고 4시간 44분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다.

 

 물론 캐서린 스위처는 공식적인첫 여성 마라토너이기에, 이전에도 장거리 달리기를 하려던 여성들은 많았다. 스위처가 마라톤을 달리게 된 계기가 된 비공식적으로 처음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한 로베르타 깁을 비롯해, 20세기 초부터 마라톤과 크로스컨트리 등 다양한 장거리 달리기 대회에 참가하려 한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출산을 위한 몸에 무리가 온다””자궁이 떨어진다””달리기 선수의 몸에는 여성성이 결여된다””달리는 여성의 모습은 여성 같아 보이지 않는다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달리기를 하기 위해 저항해왔다. 카트리나는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를 통해 이러한 여성 달리기의 역사를 정리하고 조명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낸 페미니즘 에세이로 책을 써내려 간다. 달리기를 하는 여성에게 그 목적은 다이어트뿐인가? 여성은 남성처럼 그냥 내켜서 달리기를 할 수는 없을까? 밤과 새벽에 조깅을 하는 여성은 왜 범죄의, 시선성희롱의 표적이 되어야 하는가? 스포츠브라, 여성용 러닝화 등 여성용 달리기 용품은 이다지도 늦게 나왔고, 핑크색으로 가득할까?

 

 카트리나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여성 달리기의 역사와 그에 따른 질문들은 달리기라는 아주 단순하고 누구나 원할 때 할 수 있는 행위마저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제한 당한다. 기원전 마라톤 평원을 달린 페이디피데스에서부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마라톤의 역사 속에서 여성 마라톤의 역사는 고작 45년 밖에 되지 않았다. 카트리나는 책의 첫 챕터인 나이키의 ‘She Run The Night’”행사에 참여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시작한다. 밤거리를 수많은 여성들과 함께 자유롭게 달리는 것과, 여전히 핑크빛과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회자가 공존하는 행사는 아직도 여성의 달리기가 남성의 달리기와 온전히 같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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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이 책 전반에 걸쳐서 달리기와 페미니즘의 이야기만 풀어내는 것은 아니다. 장거리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써 느끼는 성취, 스무 살 때 닥쳐온 슬픔과 그것을 털어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페이디피데스에서부터 이어지는 장거리 달리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 등 역시 책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여성이며 페미니스트인 저자의 관점을 더해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라는 한 개인의 인생이 책 속에 녹아 든다. 그 경험을 통해 페미니즘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부분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 그로 인한 삶의 관점과 태도의 모습이 카트리나의 글을 통해 느껴진다. 페미니즘의 이론과 운동을 논하는 책은 아니지만, 그것이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닿아있는지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은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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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청년 새끼 - 망가진 나라의 청년 생존썰
최서윤.이진송.김송희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선거철마다 투표도 안 하는 개새끼가 되는 세대. (누가 규정한 것인지는 몰라도결혼출산연애라는 의무를 포기한 세대노오력을 할 생각은 못할 망정 눈만 높아 취직도 못하는 세대세상에 불만은 많으면서 바꾸려고 움직이지 않는 세대대학은 나왔으면서 생각은 없어 보이는 세대승리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고가의 스마트폰을 이용하지만 가난한 세대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며 탈조선을 외치는 세대…… 맞는 말과 틀린 말이 뒤섞인 청년세대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서 청년의 목소리가 담긴 말이 얼마나 있을까? X세대삼포세대, N포세대까지 이어지는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말 가운데 청년이 직접 내세운 이름이 있을까? [캠퍼스 씨네21] 기자인 김송희비연애인구 잡지 『계간홀로』의 발행인 이진송독립잡지 『월간잉여』의 발행인 최서윤 세 사람이 모여 쓴 『미운 청년 새끼』는 현재 청년세대로 불리는 사람의 입과 손으로 써내려 간 진짜 청년의 썰풀이이다.
 
 먹고사니즘정치문화연애 주거 다섯 가지 챕터로 구성된 『미운 청년 새끼』는 아르바이트부터 인턴과 취직고시원연애와 비연애일베와 메갈 그리고 페미니즘 등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야기를 청년세대의 시각으로 풀어낸다아니토해낸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우리는 떠들어야 했다라는 제목의 대담으로 시작하는 책은 세 저자가 왜 떠들기라도 해야 했는지떠들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한다『미운 청년 새끼』는 대담에서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시작한다.
 
 날카롭고 생생하며 익숙하고 필요한 이야기가 갑을병정의 정정정정’, ‘청년 대상화와 여성 대상화’, ‘흙자식이라뇨?’, ‘N포세대라는 말은 불편하다’, ‘연애라는 대국민 팀플’, ‘장거리 통학러의 슬픔과 같은 제목의 글들로 펼쳐진다. 2016년 하반기에 개봉한 영화 <아수라> <다니엘 블레이크>, SNS에서 거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행정부의 빻음을 만천하에 알린 가임기 여성지도완벽하진 않지만 드디어 청년세대에게 뭔가 승리했다는 느낌을 일깨워준 탄핵정국 등 책이 출간된 현재의 시점과 멀지 않은 이야기가 여러 글에 나누어 담겨있다청년세대의 하루하루는 왜 이렇게 엉망진창인지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 힘든 시간인지과연 청년이 자신의 힘으로 온전한 집과 직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미운 청년 새끼』는 N포세대니 뭐니 하는 청년세대에 대한 네이밍은 청년을 대상화하고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보다 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선별해온 기성세대에 대항한다내온 최서윤이진송김송희 세 저자는 기자로독립잡지 발행인으로트위터와 웹진블로그로보드게임과 단편영화로 목소리를 내왔다투표만큼거리의 시위만큼 중요한 것은 목소리를 잃지 않는 것이다세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공감과 연대를 내포한다동시에 책을 읽는 또래 세대에게 목소리를 낼 용기와 필요성을 전해준다『미운 청년 새끼』는 여전히 팍팍한 내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탄핵으로 승리를 맛보았지만 정작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는 세대에게 함께 떠들자고 이야기한다시대정신이 무슨 거창한 말일까지금을 사는 우리의 썰이 시대정신임을 『미운 청년 새끼』를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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