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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이 책은 고발도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하더라도 전쟁으로 파멸한 세대에 대해 보고하는 것일 뿐이다.”
역사책 속에서 제1차 세계대전은 대게 이런 식으로 서술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고, 독일을 뒤에 업은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어서 러시아, 독일,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이탈리아, 그리스, 미국 등등등 도미노처럼 연이어 세계 각국이 전쟁에 뛰어들고… 서로 밀고 밀치는 전투가 4년간 지속되다 마지막 독일의 항복으로 끝이 났다는 이야기로.
그러나 독일이 패배했고 연합군이 승리했다는 결과만으로는 읽을 수 없는 전쟁의 실상이 있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학도 지원병 파울 보이머와 그의 전우들이 겪은 전쟁의 참모습을 세세하게 그려낸 전쟁 소설이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칸토레크 선생의 선동에 의해 반친구들과 함께 독일군에 자원입대한다. 전쟁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른채 곧 끝날 줄 알고 참전한 전쟁은 대단한 진전도 없이 4년 동안이나 이어졌고, 죽지않기 위해 죽여야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실태를 알게된다.
죽지 않기 위해 죽여야하고, 죽어가는 동료 옆에서 내가 살기 위해 먹고 물건을 탐하고, 광기와 분노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는 참혹한 현실.
작가 역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데,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작가의 모습이자 당시 전쟁에 끌려간 젊은이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보이머와 그의 동료들을 통해 군대와 전쟁의 부조리함, 명예욕과 권위의식에 빠져있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비판하며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그와 더불어 전쟁으로 잃어버린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삶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죽이는 기술을 해온, 이전과 완전히 단절된 세대의 절망… 탁자 위에서 서명만 하고 선동만 하는 무책임한 권력자들로 인해 얼마나 무고한 젊은 세대가 생명을 잃고 인간성을 잃고 미래를 잃게 되는지..
특히 소설 마지막에서 이 작품의 제목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담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알게되는데, 전쟁은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고뇌와 죽음과 고통을 들여다보지 못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여운을 남겨주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또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문장이었다. 숨을 잠시 멈추게 만들 정도로 사실적이고 세세하게 전쟁의 참상을 서술하면서도 순간의 감정과 주인공의 감상을 그려낸 비유와 묘사가 아름답다(?) 느껴지기도 했다. 전쟁을 묘사하는 문장인데 문장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싶지만, 그만큼 레마르크의 문장이 좋았다는 뜻.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내 표현의 한계;;)
참혹한 현실을 그려내면서도 순간순간 젊은이들의 쾌활함도 함께 담아낸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레마르크의 글이 좋아서 이후에 발표한 <개선문>과 <사랑할 때와 죽을 때>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 열린책들 x 영다사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