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58 제너시스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평점 :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 작년에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신종 인플루엔자,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각종 국제분쟁과 테러들, 그로인한 3차 대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퍼져나간 2012년 종말론까지. 정말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암울하기만 한 걸까? 서점에서 이 책을 봤을 때, 단순히 2058이라는 숫자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50년 뒤에 미래, 그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류는 과연 지금처럼 존재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호기심들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암울한 미래를 다룬 SF 소설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미래사회를 암울하고 통제된 디스토피아로 묘사한 소설들을 많이 읽어 왔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빅브라더를 통해 개개인을 완전히 통제하는 사회,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가부장제과 성경을 기반으로 한, 모든 욕망은 거세되고 생식을 위한 성(性)만이 존재하는 ‘길리아드’의 모습 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플라톤이 세운 공화국도, 이들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50년경의 세계는 3차 세계대전과 대규모의 전염병으로 인해 황폐해졌고, 플라톤은 섬에 거대한 방벽을 세우고 선택된 자들만의 나라를 세운다. 그 사회는 철저한 계급사회고, 개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며, 생후 1년이 된 모든 아이를 검사하여, 결과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심지어 ‘제거’해 버리는 나라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나라에서 야기된 문제를 파고들기 보다는, 그 이후의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이 소설의 ‘현재’는 역사학도 아낙시맨더가 학술원 면접을 보는 때다. 그녀는 면접장에서 플라톤이 세운 공화국에 반기를 들었다는 역사적 인물, ‘아담’을 재조명 한다. 바로 아담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액자식 구성의 ‘내화’에 해당하며, 인간인 ‘아담’과 안드로이드인 ‘아트’의 논쟁을 통해 작가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로 들어간다. 그것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이며,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독자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단순히 암울한 미래를 다룬 SF 소설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 vs 로봇의 대화를 따라가며 즐기는 지적 유희.
‘아담’과 ‘아트’의 핑퐁을 하듯 서로 주고받는 설전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를 파악하게 한다. 그들의 논쟁에는 ‘자아’와 ‘진화’ 그리고 ‘본질’과 ‘영혼’의 문제. ‘관념’에 대한 사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열망과 욕망에 대한 관점 등이 들어있다.
또한 제목 ‘제너시스’ 즉 ‘창세기’라는 표현부터, 새 세계로의 변화를 이끈 인물인 ‘아담’ 그리고 그가 구원해 준 ‘이브’까지, 그리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낙시맨더의 스승 ‘페리클레스’에 이르기까지 성격과 그리스 고대 철학자들을 아우르는 비유 또한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지적 유희를 즐기도록 해준다.
과연, 누구를 위한 창세기였을까?
인간 vs 로봇, 아담 vs 아트의 대립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진정한 진화의 승자는 과연 인간이었을까? 로봇이었을까? ‘아트’가 ‘아담’의 탈출을 돕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고 공화국은 ‘대전쟁’을 겪는다. 그 전쟁을 통해 새로운 세상, 바로 ‘아낙시맨더’가 살고 있는 세상이 새로 시작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창세기’이다. 과연 그 창세기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 문제에 대해 이 소설은 커다란 반전을 숨기고 있다. 반전에 대해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지만, 난 여기서 밝히고 싶지는 않다. 영화 식스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었다는 반전만큼이나 뒤통수를 후려치는 강도가 엄청났으니까.
미래나 인간 존재에 대해 한번쯤 궁금증을 가졌다면, 이 책을 읽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