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악마의 시 1~2 세트 - 전2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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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펴냄



마훈드는 계시를 내려달라고, 유일신교냐 단일신교냐를 놓고 판단해달라고 나를 찾아오건만 나는 이런 빌어먹을 악몽이나 꾸는 멍청한 배우일 뿐인데, 내가 뭘 알겠어, 친구,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살려줘. 살려줘.

- 174쪽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를 출간하고 최근까지도 (2022년 8월) 무슬림 세력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았다. 뿐만 아니라 <악마의 시>를 번역한 자들 또한 협박을 당하거나, 실제로 살해당한 전례가 있다. 작품을 검열당해 국외로 추방당하거나, 금서로 지정당하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종교 전체로부터 공격당하는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래서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더욱 궁금했다. 누군가를 아주 정확히 저격하는 일은 그 대상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살만 루슈디는 봄베이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학업을 마친 부유층이다. 그는 무슬림 교리의 어떤 어불성설과 권력자들의 모순된 행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을 뿐만 아니라 인도와 영국에서 체류하며 무슬림이자 인도인으로서 겪어야할 이방인의 삶 그 자체다. 그 삶을 마법처럼, 시처럼 풀어낸 작품이 바로 <악마의 시>다. 물론 등장인물은 허구다. 그러나 이방인으로서의 인도인,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무슬림의 삶을 인도의 고전에 빗대 전개한 작품인 <악마의 시>는 너무나도 이 삼라만상과 닮아있었다.


<악마의 시>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몇 가지 테마가 있다. 먼저 지브릴 파리슈타와 살라후딘 참차, 두 줄기로 나눈다.

지브릴 파리슈타

1. 마훈드와 지브릴의 테마

2. 나비소녀 아예사 테마

3. 영화 인사로서 지브릴 파리슈타 (알리 콘, 시소디아)

살라후딘 참차

1. 인도에 거주 중인 아버지 창게즈 참차왈라

2. 영국의 아내 파멜라(점피 조시)와 인도의 정인 지나트 바킬

3. 샨다르 카페의 수피안 가家

주요 구도와 몇몇 등장인물을 파악하면 <악마의 시>를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대천사이자 계시자 지브릴과 비행기에서 추락한 후 악마로 변모하는 루시퍼 살라후딘 참차.


<악마의 시>에서는 모든 것이 모호하다. 선과 악, 천국과 지옥, 꿈과 현실, 과거와 미래 등이 그렇다. 작품의 주제를 투영되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동명이인이나 비슷한 이름을 가진 인물, 비슷한 생을 물려받는 자들이 등장한다. 주류였던 무리가 아류로, 아류였던 무리가 주류가 된다. 때문에 정확한 경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악마의 시>의 모호성이 내용의 분별을 더욱 부각시키는 장치로 발현했다. 또한 살만 루슈디의 작품 특징 중 하나인 "마술적 사실주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요소였다.

그런데 왜 <악마의 시>는 무슬림의 공격을 받은 작품이 되었을까? 그것은 캐릭터를 필두로 한 무슬림 인사들의 묘사 때문이다. 작 중 등장하는 마훈드는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마호메트)를 묘사한 인물이다. 무함마드는 실제로 계시를 받은 뒤, 사탄에게 홀렸을지도 모르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는 <악마의 시> 중 마훈드가 지브릴에게 계시를 받고 언급했던 부분과 매우 흡사하며, 실제 무함마드의 아내가 아이샤였던 것 또한 작 중 마훈드의 아내가 아예사인 점과 다르지 않다.

종교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말하기 어려운 작품이지만, <악마의 시>는 작품 그 자체로 아름다운 형식와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담은 명작이다. 정체성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타지에서 악마가 되어버린 참차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 천사의 모습으로 계시를 일삼던 지브릴이지만 일종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모습을 보이며 결국 자살한다. 지옥에서 현생으로, 천상에서 인간으로서의 죽음으로 영점에서 만나 끝없이 멀어지는 두 1차 함수같은 운명이다.

<악마의 시>를 덮은 다음,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진정 선이라고 생각하는 가치는 선이 맞는 것인지, 세상이 주류라고 말하는 것들도 모두 언젠가는 아류가 되어가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로 고쳐 앉아야하는 지 말이다. <악마의 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을 정리하며 서평을 마치겠다.


(...) "자, 이 친구가 하려는 말은 이거야. 실체가 없는 어떤 힘의 장과 실제로 살아 있는 신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고르겠느냐? 좋은 지적이잖아? 어차피 전류에게 기도 드릴 수는 없으니까. 무슨 파동에 천국의 열쇠를 부탁해봤자 소용없는 짓이고."

- 악마의 시1, 133쪽

(...) 지브릴은 한 가지 사소한 사실을 아는데, 지극히 사소하지만 여기서는 약간의 문제가 될 수 있는 일, 그것은 바로 둘 다 나였어, 바바, 처음에도 나였고 두번째도 나였다고. 내 입에서 나온 말, 앞서 선언한 말도 그렇고 이번에 부인한 말도 그렇고, 시verse와 반시converse, 올바른 시universe와 뒤집힌 시reverses, 전체가, 우리 둘 다 알다 시피 내 입은 저절로 움직였으니까.

- 악마의 시 1, 195쪽

"잊지 마라. 세상은 모순적이란다: 난장푼이야. 유령, 나치, 성자, 그 모두가 동시대에 살아 숨쉬지. 어느 한 곳에는 더없는 행복이 있는가 하면 바로 그 옆에는 지옥이 도사리고 있어. 이렇게 엉망진창인 곳은 다시 없을게다."

- 악마의 시 2, 8쪽

'악마는 왜 찾아, 인간이 곧 악마인데?' 그러자 참차의 균형감각이랄까, 말도 많도 탈도 많은 사고방식이 반사적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천사는 왜 찾아, 인간도 천사를 닮았는데?'

- 악마의 시 2,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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