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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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서운 것은 결과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나오미의 기분을 맞춰줍니다. 적어도 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것이 습관이 되자 나오미는 정말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되어 다음번에는 아무리 제가 진지하게 임해도 실제로 그녀를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승부는 실력에 의해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기세'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동물전기입니다. 하물며 내기를 할 때는 그것이 더욱 강하게 작용해서 나오미는 저와 결전하면 처음부터 저를 압도해 기를 꺾고, 엄청난 기세로 공격하기 때문에 이쪽은 조금씩 쓰러지게 되고 뒤쳐져버립니다.


평범한 직장인 조지가 카페 여급인 나오미를 만난다. 나오미는 조지가 바라던 외모를 가진 여성으로, 그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제외하면 남들과 다를 것 없는 연인이다. 조지는 그녀를 잘 가르치고 길러서 모던한 하이칼라 여성으로 육성할 것을 마음 먹으며, 그녀와 동거하기 시작한다. 연인간의 애틋한 사랑보다는 서로의 니즈에 의해 만난 두 사람은 부부로, 연인으로 간혹 부녀로서의 기묘한 관계를 맺는다. 조지는 나오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나비같은 그녀에게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나오미를 감상하는 것에 어떤 희열과 만족감을 느끼는 조지. 그는 나오미와 완벽하게 갑을관계의 늪에 빠진다.

[치인의 사랑]의 치痴는 '백치미'라는 단어 속 어리석을 치 자를 사용했다. 痴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1. 어리석다, 2. 어리다, 3. 미련하다, 4. 미치다(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5. 열중하다, 등등. 이미 조지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는 어리석은 사랑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조지는 이미 나오미에게 미쳐있어 그녀를 의식하면서 열정을 다했던 초반과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무의식적으로도 그녀가 없으면 메말라 죽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사랑은 비단 조지의 일방적인 애정공세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나오미 또한 점차 제멋대로 행동함에 따라 그녀의 본색이 드러난다. 천박하고 성적으로도 가벼운 행색으로 흔히 아는 '백치미'의 모습을 보인다. 또한 주변 남자들에게 성적 노리개로, 기품있는 여성과는 확연히 비교되는데 이 것은 나오미 또한 치痴인임을 내비친다.

본인의 행실은 조지는 죽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 나오미와 나오미는 절대 불결한 여자가 아닐 것이라는 조지는 누가 더 어리석다 할 수 없을 정도다. 때문에 조지가 하마다에 의해 나오미의 행실을 명확히 알게 된 이후부터의 전개는 극단적이다. 조지는 더욱 찌질해지고 나오미는 더욱 지저분해진다. 숨어서 나오미의 뒤를 밟고, 나오미가 떠난 뒤 그녀를 생각하며 폐인이 되버린 조지, 조지의 곁을 덤덤한 척 떠난 뒤에 허름한 차림으로 짐을 찾으러 오는 나오미를 보면 알 수 있다. 화자인 조지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있어 조지의 찌질함이 부각되어 있을 뿐, 나오미가 화자였다면 분명 그녀 또한 똑같았을 것이다. 아마도 "조지씨는 이렇게 하지 않았는데!"라던지, "내가 이따위 취급을 받는다고? 꺼져!" 라던지의 대사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절대 아쉬워서 조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조지씨를 위해 '특별히' 구원해주는 느낌으로 돌아가는 거라는 독백도 있었을 것 같다.

결국 나오미는 자신을 떠받드는 조지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조지는 여전히 나오미를 추앙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내비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치인의 사랑]을 읽으면서 조지와 나오미, 연인으로 정말 최악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연애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조지가 되본적도, 나오미가 되본적도 있다. 어쩌면 둘 다 되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생각만해도 전율이 흘러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알면서도 우월감을 느끼며 하대 아닌 하대를 한 적이 있는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만해진 다음, 지친 상대방에게 헤어짐을 선고받은 뒤에 더없이 구질구질해져본 적이 있는가?

내가 느낀 결론, [치인의 사랑]은 어리석음을 주제로 한 하이퍼 리얼리즘 작품이다.


본 서적은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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