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신앙이라는 말이 있다. 신을 신 자체를 사랑함으로써 신앙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 부족한 것을 빌미로 제가 이만큼 당신을 믿고 따르겠으니,
하느님 당신은 나에게 이 것을 주십시오, 혹은 소거해주십시오 하고 요청하는 것이다.
3장에서 세라는 신과 일종의 구두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스스로 그 안에 속박된다.
어쩌면 그녀의 욕망 생활에서 숭고함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 무엇도 포기하고 싶지 않으면서, 정당하지 않은 합리화를 하는 그녀의 모습.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 포기하면서, 응당 본인이 겪어야할 고통이라고 여기는 세라.
성당에서는 미사 전후로 이런 말을 읊는다.
Dominus vobsicum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Et cum spiritu tuo /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신은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세라에게 신은 인격을 부여하여 사랑했다가 미워할 수 있는 존재이다.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그날의 이별 이후 곁에 없지만 항상 존재했던
모리스에 대한 태도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