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5대 걸작 중 하나로 나머지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기반이 되는 작품이자 작가 스스로 '범죄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라고 칭한 작품이다.
소설은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니코프가 전당포를 방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라스콜니코프는 어머니, 누이와 떨어져 살면서 하숙비를 내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등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인 은시계를 맡기고자 했으나 자신에게 그토록 소중했던 물건이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에서 분노와 염증을 느낀다. 라스콜니코프는 돈은 많지만 인색한 전당포 주인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살해하는 망상을 키워나가다가 주인 노파와 그녀의 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살해한다.
살인은 소설 초반에 이루어지고, 소설의 중반부 이후는 라스콜니코프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 라스콜니코프의 자백과 시베리아 유형생활로 전개가 된다.
두둥. 대놓고 줄거리와 결말을 스포해버리다니 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 글을 읽으며 가슴을 탕탕 치며 몹쓸 글을 읽었노라 야속해하실 분들을 위해 작은 변명을 해보자면, 저.. 저도 결말이 궁금해서 미리 알고.. 아니 찾아보고 읽었습니다...
좀 더 적극적인 해명을 해보자면 실은 이 소설은 대단한 반전을 갖고 승부수를 노리는 책이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요....). 결말에 이르는 과정,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면서 작가가 라스콜니코프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싶은 것들에 대해 물음표를 가져보고 스스로 답해보는 것이 의미있는 책이다. 결말이야 널리 알려진 고전이니까.
가난에서 비롯된 영양 실조, 심약한 정신세계와 망상에 빠져 있는 라스콜니코프는 노파를 살인하고서도 그다지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라스콜니코프를 용의자로 주목하는 판사 포리피리가 그런 라스콜니코프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그 논문에서 어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은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권리가 있고, 그 사람들은 어떤 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암시를 하고 있던데요?
.... 중략 ....
이 분의 논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 같거든. 평범한 사람들은 복종하며 살아야 하고, 법을 어길 권리가 없다는 거야. 평범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비범한 사람들은 온갖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와 법을 위반하는 권리까지 갖고 있다는 거지. 이유는 그들이 비범하기 때문이라는 거고,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논문에서 그렇게 주장한 게 맞는 거지요?" 155쪽
판사 포리피리가 대놓고 라스콜니코프에게 떠보기 질문을 던진다. 라스콜니코프. 당신이 이런 쓰레기 논문을 쓰지 않았는가, 당신은 전당포 살인 사건의 강력한 용의자요 라고 암시하며 질문을 던지자 라스콜니코프를 아래와 같이 답한다. 그 답변이 기가 막힌다. 읽어 보시라.
"저는 뉴턴이 자신의 법칙을 발견하는 데 있어서 수십명, 또는 수백 명이 방해가 되고, 그들의 희생 없이 법칙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들을 제거해야만 하고,... 그럴 권리가 있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과거 역사에서도 솔로몬이나 무함마드, 나폴레옹 같은 입법자와 통치자들은 낡은 법을 폐기했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피를 흘리는 것을 감수했습니다. 이러한 인류의 위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피를 흘린 살인자들이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즉,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두 부류로 나뉘게 되는데, 첫 번째 부류는 평범한 사람들로서 복종하고 순종적인 사람들이고, 두 번째 부류는 법을 파괴하거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피 흘리는 것을 감수하는 걸 허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양쪽 모두 각자 존재할 권리는 똑같이 갖고 있습니다.둘 사이에 전쟁은 영원한 거지요. 새로운 예루살렘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156쪽
툭하면 기절하고 자빠지길 잘하는 심약한 청년 라스콜니코프가 막연히 가난 때문에 희생자로 전당포 노파를 택해 생계형 살인 사건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을 비범한 사람으로 여겼으며 이런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사회에 대해 모욕감을 느꼈었던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예루살램의 도래를 위해서라면 법을 파괴하거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피흘리는 것(하필 자신의 피가 아니라 타인의 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라스콜니코프는 술집에서 대학생들의 대화를 듣고 자신의 망상을 키워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