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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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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울 때 읽으면 맛이 나는 소설,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남이 나에게 말하는 것 말고 내 스스로가 나에게 말하는 것을 찾아갈 줄 아는 용기를 갖고 도전하는 자, 즉 남다르게 볼 줄 알고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이에 대한 헌사이다.


'새소녀'는 알래스카 지역에서 전해지는 전설을 기반으로 하는 소설이다.

알래스카 지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다구와 새소녀는 적대적인 알래스카 두 부족 간의 반목과 갈등 속에서 자라났다. 다구는 소년, 새소녀는 소녀 시절부터 각각 그 둘은 다른 부족에서 살았지만 그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전통부족에서의 삶에서 몇박자 어긋나는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다구는 또래 남자 아이들처럼 수렵 생활과 사냥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낯선 길을 탐사하며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는 '해의 땅'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다. 새소녀는 여느 여자 아이들처럼 집안 일에 묶여 있지 않고 오빠들과 함께 사냥을 다니길 즐긴다.


여기까지 읽으면 어라, 로미오와 줄리엣? 이라고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젊은 두 남녀는 아마 사랑에 빠지고 모험은 계속되겠지 하고 기대하는 뻔하고 쉬운 어린이용 동화 스토리를 보기좋게 비껴간다.


모험은 쉽지 않다. 그리고 모험하는 자는 한 줌의 불완전한 확신을 갖고 살얼음판을 한 발 한 발 딛어 나간다.


아마 여기까지 읽은 이들은 모두 은근히 기대하며 궁금해할 것이다.

'그래서 부족의 규범을 따르는 대신 남다른 삶의 가치를 지니고 실천한 그들의 모험은 성공했대?'


나 또한 할머니에게 빨리 뒷 이야기를 듣고 싶어 무릎에 매달리는 어린 손녀의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소설은 갈등의 연속이라더니만 숨막힐 듯 사건이 전개되었고, 나는 시종일관 안타깝고 조바심이 나는 마음으로 읽었다.




다구는 성공, 새소녀는 실패?

줄거리만 후루룩 들으면

부족의 여자를 구하고 안전하게 생존자를 이끌었으며, 해의 땅을 다녀온 다구는 성공이요,


철저히 짓밟힌 삶을 살다가 복수를 이루고 미친 여자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새소녀는 실패로 보인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는 모험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단편적인 기준으로 가늠하고자 하는 시선이 어쩌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구. 성공적으로 보이는 다구의 삶 속에는 무수히 많은 내적 갈등과 자기 혐오, 실패와 좌절, 분노와 절망이 있었다.


새소녀. 꿈을 쫓아 떠났지만 불행했고 철저히 짓밟힌 것처럼 보이는 새소녀는 삶을 견디어 내고 인내했으며, 복수를 했다. 새소녀에 대해 어떻게 넌 실패야!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동그라미를 말하는 무리에서 네모나 세모, 육각형, 팔각형이 되고자 끊임없이 자아를 찾아나가는 것은 모난 돌이 정맞는 격이 되고 만다. 끊임없이 견제의 대상이 된다. 그 모험을 하는 과정에서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이다.


서늘하고 때론 잔인한 전설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간만에 흠뻑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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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삶의 서재 - 인간의 부서진 마음에 전하는 위안
캐서린 루이스 지음, 홍승훈 옮김 / 젤리판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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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전개는 보통 재미없다. 뻔한 결론 또한 재미없다. 세상에 하고 많은 글들 중에서 자기계발서만큼 뻔한 글이 또 있을까.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읽는걸 주저하게 된다.

 

얼마전 자기계발서에 대한 재미있는(또한 공감되는) 글을 읽었다. 서점에서 집계하는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소설보다 자기계발서가 인기가 많지만 자기계발서를 읽었다는 건 사실 '당신은 낚였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에서는 자기계발서가 성공한 소수의 사례를 쉽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는다. 네가 지금 고통스러운 것은 운명이나 환경 탓이 아니라 당신 개인의 노오력!이 부족한 탓이다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에서 누구나 고통스러운 부분은 있고, 극복하지 못한 것은 네탓이라고 반복적으로 말해대는 통에 오히려 고통을 겪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연대가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음. 공감이 간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나의 삶을 정돈하고 치유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계발서를 읽고 나의 노오오오력!으로 무엇이건 가능하니 실패하면 그것은 내 탓, 혹은 너의 실패는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닌 노오오오력!의 부족 탓이라고 의식의 흐름이 전개되면 곤란하다.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자기계발서를 선뜻 신청하기가 꺼려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내일 삶의 서재'는 세계적인 우울증 치료학자 캐서린 루이스박사가 집필한 책이다. 그런데 책표지부터 띠지까지 극찬 일색이다. 부서진 마음에 전하는 위안이 될 것이라는 부제와 함께 2018워싱턴 퍼스트 인문심리학 추천도서, 오프라 윈프리 추천도서이자 심지어 삶의 지침에 관한 감동적인 드라마라고까지 뉴욕타임즈에서 추천하는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극찬들인가. 뻔한 이야기들 아닐까, 일과 사람, 인생 문제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세계적인 우울증 치료학자가 썼다는 것을 보면 그저 이 책 저 책에서 짜집기해서 무한 파생된 자기계발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 궁금증이 일었다. 약간의 호기심을 갖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책을 신청했고, 뻔한 이야기들 속에서 진솔한 감동의 메세지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세계적인 우울증 치료학자이자 유전학자 캐서린 루이스 박사는 왜 성공하는 삶, 실패하는 삶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는지 밝히며 서두를 연다. 성공한 사람들이 실패와 위기의 순간에서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해나가는지 궁금증이 생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시작된 연구는 단순히 학위를 따는데 도움을 주었을뿐만 아니라 조금씩 저자의 삶 자체를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캐서린 루이스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회에서 평균적인 시선으로 제시하는 사회적 성공, 부, 명예 등을 거머쥘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는데 있지 않다. 자신의 깊은 내면과 맞닿을 수 있는 시련들과 싸우면서, 단순히 해결책을 찾는데만 그치지 않고 처한 시련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 궁극적인 지향점을 두고 있다.

 

그런 면에서 캐서린의 이 책은 성공을 향해 달려가도록 채찍질하는 성공지향형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내면과 자신의 삶을 가다듬고 행복과 성취의 기준점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려고 하는 심리 철학서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심리학자, 사회 저명 인사들, 우리에게 고전이라는 선물을 남긴 저자들의 명언과 그들의 지혜를 하나씩 소개하고 풀어나가면서 삶의 위기 순간을 견뎌내는데 필요한 용기라는 근육을 어떻게 단련시켜나가는지 상세하게 소개한다.

 

수십년 전 일부 사회과학자들이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들은 '유전적 긍정심리학'으로 환자들의 우울증, 불안감, 무기력증을 치료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연구나 치료방법이 좋은 삶, 즉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사회과학자들은 행복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를 몰두하는 일명 행복 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행복을 좇을수록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행복의 역설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다면 캐서린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일의 '성공'보다는 오늘의 '성장'을 하도록.

'성공'은 '성장'의 일부일 뿐.

 

행복은 '동력-실행'이 결정한다.어떠한 상황에서도 뭘 꿈꿔야 할 지 계속 고민하고 액션플랜을 만들어서 바로 실행하라.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거창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매우 확실한 의미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좋은 직장, 집, 배우자를 얻는 내일의 '성공'보다는 삶의 목적을 정해 발견하고, 자기 인식을 높이며,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오늘의 '성장'이 필요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신을 초월하는 것, 곧 성장이다. 성장을 통해 우리는 '겸손'을 배울 수 있다. 성공은 성장의 일부일 뿐이다. 무작정 성공만을 좇아서는 안되고, '지난 과거를 인정하는 오늘의 성장이 없으면 절대 내일의 성공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한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고,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시간은 현재, 가장 필요한 사람은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내 옆의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 그리고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내가 나답게 살도록 자기만의 성지를 마련하고, 삶을 의미있게 살아가도록 명상을 하거나 좋은 멘토를 찾는 등의 실천적 방법을 제시한다.

 

'내일 삶의 서재'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은 삶의 지혜를 설파하는 동양 철학서와 비슷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배웠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내용과 결이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전이 좋은 점은 줄거리나 등장인물을 모두 알고 있다 하다 해도 두고 두고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펼쳐 읽어도 곱씹어볼 지혜와 깨달음을 주고, 성찰하게 하며, 내가 쌓아왔던 고정관념과 언식의 덮개들을 파열시킨다는 것이다. '성공하라, 그러기 위해서 소처럼 움직이고 시간을 쪼개어 너의 것으로 써라'라고 미친듯이 부르짖고 우리를 채근하며 독려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자세를 한결 편안하고 긍정적으로 바꾸어주면서 위기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뭉근히 지혜를 던져주는 탈무드나 동양철학서, 고전 같은 느낌이다.

 

예전에 기사로 접했었는데, '내일 삶의 서재'에서 다시 또 접했던 글이 인상깊다. 몇년 전 섹시함의 대명사인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난소암 발병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양쪽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으면서 남긴 말이다.

LIFE

인생을 살다 보면 온갖 일이 다 생긴다.

사람이 죽기도 하고 파산하여 모은 돈을 다 잃기도 하고

엄청나게 배려해줬는데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그러나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신의 뜻도 아니고 전생의 죄 때문도 아니다.

단지 나만 그 일의 원인을 모를 뿐.

날씨도 마찬가지다.

여름에 우박과 눈이 떨어지기도 하고,

겨울이 봄처럼 따뜻할 때도 있고,

가을이 겨울처럼 서늘할 때도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볼때 여름은 조금 덥고 겨울은 조금 춥듯이,

좋은 마음을 갖고 살면 좋은 일이 생길 확률이 높고,

나쁜 마음을 갖고 살면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니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이미 일어난 일은 일단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문제해결의 시작이다.

이미 지은 지난 과오는 기꺼이 받아들이되

그 과오가 싫다면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기울여 상황을 파악하고 원인을 규명하여

해답을 찾아간다면 문제는 시련이 아니라

하나의 도전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

 

앞서 내가 자기계발서 읽기를 꺼리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개인의 노오력!이 부족해서, 당신이 게을러서, 당신은 이제껏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류의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아온 과거의 내 자신에게 자기 혐오에 빠지거나, 또는 책을 읽고 결심했으나 다시 스물스물 게으름증에 빠져버린 미래의 나 자신을 혐오하게 될까봐. 또 구조적인 어려움, 개인이 처한 상황과 맥락을 쏙 제거한 채 개인의 힘으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로 치환해버리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간단히 탈바꿈시키는- 어찌보면 폭력적인 문제 해결방식에 대한 염증을 느끼게 될까봐. 라는 이유들이 약간 작용했었다.

 

'내일 삶의 서재'는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있게 잘 읽혔던 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들이지만 독자인 우리들을 루저로 몰아붙이거나 채근하지 않고, 삶에 대한 자세나 태도를 어떻게 견지해야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지혜를 알려주는 점이 좋았다. 누가 몰라? 라고 물을 법한 뻔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흔하고 뻔한 것에서 말하는 진실과 진리는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말과 글의 힘을 얻어 오래도록 회자되어 그만큼 흔하게 느껴지고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문장의 의미에 대한 귀함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볼 때 삶의 방향성을 잃었을 때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 곁에 두고 조금씩 읽으면서 단순하지만 정직한 그 진리의 말을 머리로 가슴으로 행동으로 받아들여보고 싶어졌다.

끝으로 책에서 소개하는 '나를 지혜롭게 만드는 10가지 비결'을 옮겨보려 한다. 저자의 말대로 삶이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니까. 지혜롭게 그 길을 밟아봐야지.


나를 지혜롭고 hot하게 만드는 10가지 비결

1. 내면의 열정을 깨워라.

스스로 욕구를 찾아 충족시키기

2.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려라.

우울함과 외로움이 사라지고 즐거운 상상이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3. 마음껏 울어라.

울고 나면,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4. 놓아주고 떠나보내라.

당신을 방해하는 것, 시야를 흐리게 만드는 것,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놓아주어라.

5. 끈기를 잃지 마라.

끈기는 영혼의 보석이다.

6. 끌어안아 통합하라.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면 지금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

7.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신체를 위해 운동을 하라.

8. 숙면을 취하라.

숙면이야말로 외모와 정신에 가장 좋은 자양제이다.

9. 감사를 느끼고 표현하라.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라.

10. 넘치도록 사랑하라.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서 기대고, 힘껏 사랑하고 표현하라!

 

뒤돌아보지 말고 순간을 소유하도록. 사랑하며 살면서 삶의 주인이 되도록. 2020년을 마무리하며, 2021년에 많은 이들에게 책을 빌어 좋은 생각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자유롭게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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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놀면서 두뇌 천재되는 브레인 스쿨 : 두뇌퍼즐편 - 아이의 숨은 지능 깨우는 집콕놀이북 하루 10분 우리 아이 숨은 지능 깨우는 퍼즐놀이북 시리즈
개러스 무어 지음, 김혜림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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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2.5단계로 격상된지 며칠째이다. 일일 확진자가 천명을 웃돌면서 3단계로 올려야 한다는 의료계의 목소리와 경제를 생각하면 좀 더 신중하자는 목소리가 동시에 높은 요즘. 우리집 어린이들 지우개와 탱탱볼은 학원도 학교도 그야말로 아무곳도 나가지 않은 채 집콕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나날이 볼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어린이들이 이불 위에 배깔고 누워서 뒹굴거리며 풀기 좋은 책, 하루 10분 놀면서 두뇌 천재되는 브레인 스쿨-두뇌퍼즐편이다.

 

집콕놀이북이라는 문구에 끌려 서평단에 신청했고,

서평단 신청이 당첨되어 반딱반딱거리는 초록이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 세계 최고의 두뇌 게임 전문가이자 퍼즐 책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인공지능의 한 분양인 머신러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영국에서만 백만 부 이상 책을 팔았고, 30여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명한 작가이다.

 

미리 퍼즐과 숨은 그림을 할 수 있는 책이 올 것이라 예고해두었더니 어떤 책이 올지 미리 알고 있었던 어린이들은 택배 도착 소리에 총알처럼 뛰쳐나갔다. 도착하자마자 끼약. 환호성을 지르면서 풀기 시작~

 

엄마 엄마~ 같이 풀어요 라고 외치며 소파에서 파김치처럼 뻗어있던 내 팔을 당긴다.

  

어디 한번 볼까? 퍼즐을 풀어보세~

  

도형과 숫자감각이 있으면 조금 더 쉽게 풀 수 있겠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낱말 퍼즐에 이어 숫자 퍼즐도 있다. 연산과 스도쿠까지 퍼즐 패턴이 다양해 지루하지 않게 문제를 풀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영어 학원에서 많이 했던 단어퍼즐에서 단어 찾기. 이걸 우리집 어린이들은 정말 좋아한다. 영어학원 다니기는 싫어하지만 이런 영단어퍼즐 학습지받으면 남매가 옹기종기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한 줄씩 지워나가곤 한다. 승부욕이 발동하다가도 같이 찾자며 협동게임으로 변한다.

  

알찬 구성으로 퍼즐과 스도쿠, 주사위 굴리기부터 영어단어 찾기까지 다양한 퍼즐이 들어있어서 퍼즐 도전하기 좋아하는 어린이들이라면 매우 열광할 것 같다.

 

코로나19때문에 지루해하면서 하루종일 심심해를 달고 살던 우리집 어린이들은 눈빛이 번뜩이더니 급기야 11살 누나와 8살 동생이 책 한 권을 두고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갈등이 본격화되기 전에 8살 어린이의 청을 받아들여 잽싸게 한 권은 직접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했다. 수학 문제집을 누나가 푼 걸 동생이 지워가며 풀지는 않으니까 각자 소유할 수 있게 챙겨주는게 맞지!

  

학교에서 줌도 안하고, 하루에서 공부하는 일과라고는 클래스팅에 접속해서 1~2시간 강의듣는게 전부인 둘째는 자신의 책이 도착하자 매우 행복해했다. 답지와 문제를 연신 앞뒤로 왔다갔다하며 풀면서 3일 동안 뚝딱 모든 문제를 다 풀었다.(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문제에 자신이 푼 답과 답지에서 본 정답을 우겨 넣었다.ㅎㅎㅎㅎ)

 

 

리뷰를 쓰며 둘째에게 다시 물었다.

탱탱볼아.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길래 3일만에 뚝딱 다 풀었어?

 

탱탱볼이 뽈록허니 귀여운 두 볼살을 우물거리며 답한다.

응~ 정답볼 수 있는 재미로~

 

 ㅎㅎㅎ 그렇구나. 어린이들의 답변은 늘 예상을 빗나가기 마련이다.

 

정답 없는 인생에서 정답 있는 문제집을 풀면서 너의 마음을 개운하게 했다니 어미는 또 기쁘구나.

 

해가 길어지긴 했지만 아직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겨울날. 이불밖은 위험해를 외치며 유사한 퍼즐책과 스도쿠 책을 사놓으라고 성화를 대며 요청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결국 초록책의 자매품 <하루 10분 놀면서 두뇌 천재되는 브레인 스쿨-두뇌게임편> 파란 책까지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하루 10분 놀면서 두뇌 천재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퍼즐 및 숨은그림찾기 좋아하는 어린이들이라면 두뇌를 굴리면서 지루한 겨울일상을 이겨내기 좋은 아이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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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다 배달합니다
김하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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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에도 뭘 참 많이 배달시켰었지만, 언택트 시대가 되면서 배달시장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생수, 과일, 채소, 고기, 하다못해 색종이나 볼펜 한자루도 배달시키는 시대가 되었다. '뭐든 다 배달합니다'는 쿠팡, 배민, 카카오 플랫폼 노동 200일의 기록을 담은 현장 르포르타주이다.

저자 김하영은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2002년부터 2014년까지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했었다.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화물연대 파업, 비정규직 갈등, 새만금 간척사업, 평택 미군기지 이전 등 사회갈등 현장을 주로 취재해왔다. 평소 연암 박지원의 삶을 동경해 '21세기 열하일기'를 쓰겠다는 장대한 꿈을 안고 퇴사한 뒤 1년 2개월 동안 세계일주를 했으며, <이야기경영연구소>, <피렌테의 식탁>편집장을 맡아 우리나라 구석구석의 보물같은 이야기를 찾아내거나 정책 대안을 추구하는 사회비평을 수행했다.

음. 여기까지는 흔한 직장인의 일반적인 퇴사 및 이직, 그리고 도전 세계여행!의 스토리이다.

그런데 지금부터가 특별한 지점이자 이 책의 탄생 배경이다. 저자는 멀쩡히 편집장을 맡아서 잘 근무하다가 또 다시 뜻하는 바가 있어 퇴사를 하고 2020년부터 배달과 물류센터, 대리운전 등 '플랫폼 노동'이라 불리는 삶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플랫폼 노동의 삶을 차곡차곡 기록한 보고서 형식의 글들을 묶어 책으로 냈다.

이제 우리는 단군신화 고조선에서 마늘을 먹은 곰 웅녀의 민족이 아니라 택배공화국에 살고 있는 배달의 민족 아니던가. 뉴스로 막연히 택배 기사가 코로나로 인한 업무 과중으로 과로사했다는 이야기들, 택배 물류 업계의 어려움을 취재한 한토막 기사들만 접했었다. 누군가 한 번은 택배 업계의 실상과 일상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겨야할 것이고, 그 길을 직접 걸어보겠다는 저자의 열정과 도전에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졌다. 만만치않게 온갖 것을 모두 배달시키는 택배공화국의 당당한 일원으로 그 생생한 날 것의 일기들을 보고 싶어졌다.

저자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한 보도자료로 서문을 연다.

1장 택배 전성시대의 하루, 쿠팡

2장 배달 ON 배달 OFF, 배달의 민족

3장 당신을 배달해드립니다, 카카오 대리운전

4장 플랫폼 노동의 빛과 그림자

에필로그는 '배달을 리스펙트!'로 끝을 낸다.

책을 펼치니 막연히 아는듯 했지만 정확히 알지 못했던 택배 배달 업계의 실상들이 그 세계에 직접 발을 담가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육성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콜을 찾아 달리는 배민- 건별 수수료가 나의 실적이 된다. 엘리베이터 혹은 로비에서 대기하며 몇분이 지체되면 콜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대기를 할 때면 콜 환청을 듣기도 하는 에피소드를 들으니 아. 이제서야 알았다. 왜 우리집 택배 기사님들은 초인종을 누르는 절차 없이 문 앞에 택배를 텅-소리를 내며 던져놓고 가는지 그 이유를 말이다.

생필품을 문 앞까지 신속하게 배달시켜주는 쿠팡맨들은 '영웅'이라 칭송되고 사람들은 "쿠팡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라고 찬사를 보내지만, 사실 쿠팡 물류센터 안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97퍼센트가 비정규직이며, 안전화 작업 용품들이 개인별로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채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일용직 근로자들이다. 일용직인 만큼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노후와 보험을 책임져주지 않는 불안정한 고용형태이다.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대충 들어왔었던 이야기였지만, 현실을 살펴보니 역시나이다. 저자는 물류, 택배업계에 등장한 AI로 인해 일정부분 효율적으로 변한 부분도 있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토로한다. AI가 분명 못하는 일들이 있다. 사람이 해야만 하는 복잡한 공정들도 있다. 그러나 아주 대단한 기술적 숙련도가 요구되지는 않는 작업 환경에서 생각하지 않고 AI가 시키는대로 행동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AI의 팔다리일뿐이다.

택배 및 배달 업계에 등장한 AI로봇도 점점 진화된다면 나중에는 사람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각각 쪼개진 공정의 형태로 수많은 로봇들이 단계를 나누어 처리해내지 않을까. 충분히 예견가능한 일이다.

도로 위의 욕망

그렇다면 도로 위의 배달부, 택배기사들은 왜 직접 고용 라이더가 되지 않는가. 회사에서 꺼리는 것도 있지만 노동시장 공급자들의 속내 또한 복잡하다. 단적인 예를 들어 배달대행 라이더보다 맥도날드나 배민라이더스 직접 고용 라이더가 고용 안정성, 산재보혐,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의 혜택이 있다. 그러나 안정성이 높고 사고가 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보험처리가 잘 되지만 월급제 200만원~250만원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배달대행 라이더들은 건수별로 일한만큼 수익을 낼 수 있다. 어떤 배달대행 라이더가 월 수입 300~450을 찍었네 하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으면 내 몸 조금 더 움직여서 조금 더 돈을 벌 수 있는 배달다행 라이더가 끌리기 마련이다.

저자는 심야 대리운전 또한 기술과 저가 경쟁의 꼬리물기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리운전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문닫은 자영업자들이 쉽게 뛰어들 수 있는게 카카오 대리운전. 그러나 그 덕에 대리운전 시장에서의 노동공급이 많아져 10년이 지나도 대리운전요금은 그대로인 문제가 있다.

저녁 8시부터 기다리다가 겨우 콜을 받고 야간 대리운전을 마친 뒤 집에 가는 버스에 오른 시간은 새벽 2시. 대기한 시간과 일한 시간을 합치면 시간당 5,600원꼴. 최저임금인 8,590원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당이며, 야간 근로 수당도 없어서 생계유지를 이것만으로 하기에는 불안정한 감이 있다. 또 대리운전. 기술발달로 인해 누구나 손쉽게 이용하고, 또 누구나 손쉽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손해를 보더라도 시장점유율을 키우고자 제살깎아먹기를 하며 가격 경쟁을 한 탓에 수수료나 대리운전 요금이 물가인상폭만큼 전혀 오르지 못한 채 동결된 이야기도 짚어낸다.

역시 전직 기자이자 편집장 출신이라 그런가. 택배업계나 플랫폼 배송 업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삶과 노동의 땀방울을 기록하는 것에서 더 확장시켜서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워라밸현상의 이면에는 좌절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 하늘 높이 치솟은 집값을 보며 언제 올지 모르는 현재의 만족을 즐기자는 것은 곧 자포자기가 많았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점을 지적한다. 2019년 이후 '워라밸', '소확행', '욜로'라는 말은 사라지고, 'N잡러'가 등장. 알바의 범위가 넓어지고 부업을 겸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책을 읽으면서 배달시장은 큰 폭으로 늘어났지만 노동공급 또한 함께 늘어나고 단기 알바 개념과 부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됐다.

여덟줄 평

뭐든 다 배달하는 시대. 배달 공화국에 살고 있지만 정작 배달 업계 종사자들의 현실은 역시 안정된 일자리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거침없이 배달업계에 뛰어들어 파이를 나누어가지만 정작 파이의 크기 자체가 크지 않고 기본 소득이 제대로 보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보면 저자의 말대로 사회 자본 공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앞으로 짜장면이 늦는다고, 택배를 문 앞에 던져놓고 갔다고 부아를 내지 말아야지. 택배가 왜 늦는지 따져물고 싶고, 택배 기사님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층층이 눌러대며 왜 그리 오래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는지 화를 내고 싶은 사람들(혹은 이 책의 기억이 휘발되어 버린 미래의 나에게 다시) 이 책을 쥐어주고 싶다. Calm down~ 워...워... 편리한 삶을 영위하고자 할 때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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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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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떤 소설은 뜨겁게 읽히고, 어떤 소설은 단숨에 시원하게 읽힌다. 그리고 어떤 소설은 가만히 잠시 멈추어 서서 숨을 나눠 뱉어야 읽힌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읽다보면 조용 조용 인물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소설, '노라와 모라'가 바로 그렇다. 노라와 모라 소설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쓸쓸하고 외롭다. 인물들과 함께 현실이라는 살얼음판을 딛으며 마음으로 읽어나간 소설이다.

주인공 노라와 모라는 누구인가.

노씨 성에다가 곤륜산에서만 자란다는 돌배나무의 라를 붙여 노라.

모씨 성에다가 가지런한 그물이라는 라를 붙여 모라.

노라의 아빠는 사별했었고 모라의 엄마는 어느날 느닷없이 집을 나갔었다. 노라는 아빠 없이, 모라는 엄마 없이 살았다. 그들의 엄마와 아빠가 재혼을 하면서 노라와 모라는 자매가 되어 7년간 함께 살았다. 모라 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가정은 해체되고, 노라와 모라는 7년 전 서로를 몰랐을 때처럼 살아가게 된다. 연락없이 살던 노라와 모라는 모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만나게 된다.

어느날 집을 떠난 엄마와 아버지. 더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서 울지 않기 위해 모라는 살기 위해 버텼다. 무책임하게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부고를 들으며 모라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는 채 노라를 화장장에 데려간다.소설의 전반부는 노라의 관점에서, 후반부는 모라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김선재의 문장은 담담하고 섬세하다. 그런데 읽다보면 마음이 아리다. 노라와 모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결핍과 아픔이 있다. 그들의 마음 속을 가만 가만 들춰보려니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두 눈 질끈 감고 보려 하지 않는 현실, 상처입은 인물들의 속내가 수면으로 올라온다.

이 소설에서는 생물학적 부모는 모두 자녀에게 당연히 정서적, 물질적으로 지지해줄 것이라는 부모 역할에 대한 환상을 철저히 파괴한다. 모성애. 부성애에 대한 환상을 깨버리고, 현실을 아프게 보여준다. 노라의 엄마는 어떤가. 요리라고는 고구마를 찌고 삶고 으깨고 부칠 뿐이다. 평생 하는 고구마 다이어트를 하는 엄마 덕에 따뜻한 집 밥 한끼 먹어 보질 못했던 노라에게 직장에서 아주머니들끼리 흥얼거리며 점심을 함께 준비하는 풍경은 낯설다.

다섯 명의 여자들이 두 개의 버너에 번갈아 가며 삶고 굽고 끓이며 서로의 입속에 무친 나물을 넣어주거나 갓 지은 밥을 푸고 들고 온 가방 속에서 반찬통들을 하나씩 꺼내 놓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살기 위해 먹는 것이나 먹기 위해 사는 것을 구별하는 게 별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거기에는 슬픔도, 기쁨도 없다. 평생 고구마를 찌고 삶고 으깨고 부치는 게 식사 준비의 거의 전부인 엄마에게서는 찾아볼수 없었던 무섭도록 집중하는 삶이 있을 뿐이다. (p33)

모라의 친부모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린 모라에게 TV를 틀어준 뒤 집을 떠나버린 엄마, 모라를 방치하며 키우다가 인쇄소 사업 실패 후 엄마가 그러했듯 영영 떠나버렸다가 십수년 만에서야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아빠가 모라에게는 가족이라고 이름 붙일 사람의 전부이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그녀들의 현재 삶은 고독하고 인간관계는 단절되어 있다. 그 쓸쓸함이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그건 말이다, 우리들 누구나 쓸쓸해하고 외로워하던 그 어떤 순간의 내 모습이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일거다.

억이란 언제나 왜곡되는 것.

소설을 읽다 보면 어- 어ㅡ하고 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둘이 가족으로서 함께 살았던 7년의 과거와 지금 현재 시점을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어라, 읽으면 읽을수록 노라의 관점과 모라의 관점에서 바라본 현실과 서로가 기억하는 서로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 강퍅한 현실에서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냈던 노라와 모라는 서로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 생활했을 뿐.

노라가 바라보았을 때 늘 곰살맞고 해맑게 웃던 아이 모라는 사실 웃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아픔을 가진 아이였다. 아버지와 말없는 신뢰로 소통한다고 보여졌던 모라는 아버지와 정서적 교감이 없었다.

모라가 바라보았을 때 타인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없이 새침하고 뚱해보였던 아이 노라는 노라의 생각처럼 엄마의 편애를 받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의 무관심과 핀잔, 방관 속에서 한없이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아이였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어도 서로를 알지 못했고, 각자의 기억은 달랐다.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노라와 모라는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각자 자신의 방법대로 몸부림을 치며 그 시기를 견디며 살아냈을 뿐, 근원적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엇갈리는 기억들 속에서 딱 맞아 떨어지는 접점이 있다. 체온을 나누고 마주댔던 그 순간, 등과 팔이 맞닿았던 그 밤의 감각이다.

노라의 기억에서 그 밤은 새가 우는 밤이었다. 희미한 빛 속에서 새가 우는 밤. 코롱코롱 우는건지, 찌이찌이 우는건지 이제 막 깨어난 새들이 고요함 속에서 우는 밤. 세상이 조금씩 환해지는 것 같았던 그 밤에 차고 낯선 감각이 팔뚝과 등허리에 닿았던 밤. 고소하고 달큼한 향을 풍기는 모라가 노라의 이불 속으로 들어와 꿈처럼 이불 속이 따뜻해졌던 그 밤에 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었다.

모라의 기억은 다르다. 그 밤은 태풍이 지나가던 어느 밤이었다. 비바람이 쉴 새 없이 홑겹의 창문을 때리고 천둥과 번개가 교대로 어둠을 무너뜨리던 와중에 노라의 숨소리는 골랐고 모라는 개처럼 떨며 깨어있던,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 간절했던 밤이었다. 숨을 곳이 없었던 그 방에서 엉금엉금 기어서 노라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때 모라가 느낀 감정은 상대적인 온도, 절대적인 고요였다. 혼자가 아니라는 고요하고 따뜻한 실감. 살을 맞댄 실감의 기억 때문에 20년이 지났어도 노라는 모라의 기억 속에 실재하는 인물이었다. 모라는 살을 맞대고 잠이 들었었던 그 따뜻한 체온의 감각 덕에 20년만에 노라에게 용기를 내어 연락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은 서로 고독했고 자신이 견디고 겪어야 하는 현실이 버거워 서로를 포용하고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밤에 이불 속에서 함께 나누었던 온기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돌아 돌아 20여년만에 만났지만 노라와 모라는 거의 유일하게 꼭 같은 감정으로 공유했던 그 따뜻했던 온기만은 정확하게 떠올렸다. 소설의 끝맺음에서 암시한 문장을 보면 아마도 이제 노라와 모라 그녀들은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나가며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프리허그 캠페인이 사회에서 들쭉날쭉 일어났었던 적이 있었다. 꼭 안아주는 것. 나의 체온으로 너를, 또 너의 체온으로 나를 . 그것은 얼어붙은 심장을 때로 마음을 치유하는 보약일런지도 모른다. 사람의 기억은 왜곡되고, 진실은 늘 어긋나고, 진심은 엇갈리지만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는 것은 따뜻한 포옹이라는 점. 공감한다.

나에게도 또한 유독 불쑥 뒤에서 튀어나와 포옥 안아주고 또 나에게 안겼던 청소년들이 있었다.

아니 애들이 어떻게 그래? 샘, 불쾌하지 않아요? 라는 질문을 가끔 받기도 했었지.

허나 그 포옹과 온기 속에서 위로받고 치유받고 싶어했던 그들의 마음을 읽었기에 나를 선택해주었던 그녀들의 포옹이 한편 고맙고도 뭉클했다. 스스럼없진 않았지만 기꺼이 안아주었었다.

그 때 그 아이들, 성마른 가지에 들이닥친 겨울바람처럼 시린 마음을 갖고 살던 그 아이들은 멀리서 달려나와 꼭 나를 안아주었던 그 때의 그 느낌, 그 따뜻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지에 이렇게 써 있다.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은 이의 창가에, 이 소설을 놓아두고 싶다." 김숨(소설가)

- 마음 둘 곳 없는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소설.

마음 둘 곳 없는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라고...음.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자칫 오해할 수 있겠다. 내가 읽은 '노라와 모라'는 강렬하거나 혹은 은은한 온기를 주변에 건네면서 그 둘레를 따뜻하고 해사하게 만드는 그런 햇살 같은 소설이 아니다.

마음 둘 곳 없는 쓸쓸함과 절대적 고독 속에서 작고 여린 싹 하나가 움트기를 간절히 바라고 다독거리며 응원하게 되는 그런 소설이었다.

노라와 모라. 마음을 나누기에 익숙치 않은 누군가가 일상의 온기를 찾아서 소통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이제 시작이다. 자기 주관적인 해석과 엇갈린 기억들로 인해 관계가 분절되어 갈 때, 미치도록 외롭고 쓸쓸할 때 그 고독함을 치유받고자 할 때 이 책을 읽으며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노라, 사실 너도 그랬구나. 홀로 서 있는 이들의 마음을 훑어내는 섬세하고 정돈된 문장들, 좋았다.

소설 속의 문장들

#1

나는 손차양을 했던 손을 내리며 그 이름을 재차 읽는다. 양판수. 내 기억 속 계부의 이름은 양판규였다. 눈앞에서 점멸하는 양판수라는 이름을 보며 양판규를 생각한다.

...중략...

물론 이름 같은 건 잘못 알고 지냈을 수도 있다. 그런 오해를 교정할 기회도 몇 번쯤은 있었을 거다. 그러나 엄마와 나는 그 시절에 대해 철저히 침묵했다. 우리는 어떤 겨울 이후로 이름을 지우고 기억을 지우고 공간, 혹은 시간까지 지우는 걸 암묵적으로 합의한 거였다. 침묵하면 대부분의 일상이 순조롭고 평온했으니까.

그런데 그건,

나는 고개를 들어 해가 드는 환한 입구에서 어두운 실내로 걸어 들어가는 모라를 보며 생각한다.

누구의 잘못일까.(p96~97)

#2

언제부턴가 나는 이해한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이 싫었다.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관심을 보이며 이해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고 난 뒤로는 더욱 그랬다. 정말이지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너무 쉽게 이해한 나머지 다소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건 이해가 아니라고 어느 순간붜 나는 자주 생각한다. 이해와 동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쪽이 훨씬 대하기 편하다. 노라와 7년을 그나마 별일 없이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거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순간마다 나는 가끔 노라와 나 사이에 떠돌던 느슨한 적막과 외로움이 그리웠다.(p100~101)

#3

기억은 종종 시간의 순서를 바꾸고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래된 기억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조금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그게 진짜일 리 없는 일이었다는 걸 알았을텐데..... 이 아이는 예나 지금이나 뭘 의심하거나 따질 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노라가 편했고 또 그런 이유로 불편했다.(p145)

#4

종종 걸으며 종종 걷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자주 숨이 찼고 소나기를 맞은 사람처럼 땀을 흘렸다. 그런 내 꼴이 우스워 울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는 종종 걸으며 호흡을 편하게 하는 연습했다. 크게 들이마쉬고 깊이 내쉬는 연습. 연습을 하는 동안은 마음과 생각이 사라져서 자꾸 연습을 하게 됐다.

....중략....

오래 달리다 보면 마음과 생각이 사라져서

당신들은,

잘살고 있냐고 묻게 된다. (p164~166)

#5

이제 없는 세계는 아예 없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그것들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앞으로도 내내 그럴 것 같다. 다만 나는 한때 하나였던 어떤 시간을 되풀이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누군가 다녀갔다고 여기면 마음이 한결 좋아진다. 너무 애쓰지는 말자고, 모라는 내 손바닥에 메일 주소를 적으며 말했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더 애쓰게 되는 마음이 있다.

있거나 없는 것.

그건 우리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손가락에 감기는 바람이 천천히 말라간다.

한낮의 햇빛.

아직은, 눈이 부시다.(p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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