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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과 이상향 - 시그림 아트북
강윤미 지음, 김정배 그림, 오은하 음악 / 나무와숲 / 2021년 11월
평점 :
강윤미 시인의 <이상형과 이상향>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시는 '피렌체에서'이다. 그 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당신을 미워하는 일
증오하고
뒤돌아서서
마음껏 고독할 수 있다는 것
(중략)
가장 난감한 일은
나를 아는 유일한 사물이 당신이라는 것
더위로부터 사랑받은 우리가
여름을 잃어버리는 일
-「피렌체에서」 부분
애증이라고 말할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 “당신을 미워하는 일”이라니. 이 모순형용 앞에서 우리는 또 다른 연인의 모습을 만난다. 사실 이 작품은 강윤미 시인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다. 시작품을 읽으면서, ‘사실’을 강조하는 일은 하수다. 어디까지나 시를 포함한 문학은 상상력과 허구를 밑천 삼는다. 그럼에도 이 시에서 사실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작품 속의 화자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인 그녀는 ‘나’를 “증오하고/뒤돌아서서/마음껏 고독”을 즐기고 있다. 그런 시인에게 사랑하는 일은 늘 고비를 부른다. 그 고비 속에는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싫증도 포함된다. 이국적인 풍경으로 가득한 피렌체에서 ‘나’와 같은 “검은 눈동자는 한참 지루하고/소박”할 뿐이다.
하지만 그 이국의 땅에서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은 시인과 나 뿐이다. “매초 매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모른채/어딘가로 가고 있을” 뿐이다. 이탈리어나 그렇다고 영어를 능숙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니, 둘은 늘 언어의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그보다 더 “난감한 일은/나를 아는 유일한 사물이 당신이라는 것”이다. 의지하고 싶지 않지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피렌체의 여름은 덥다. 그 더위로부터 사랑받은 우리는 피렌체에서 여름을 잃고 시를 얻기도 한다. 사랑을 완성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