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브
존 맥아더 지음, 박주성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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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브...

저자는 책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라고 선포하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현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이토록 직접적인 찔림이 있는 내용이 그동안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그동안 이 땅에서 일부의 교회가 교회답지 않은 모습,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은 아마도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내용의 설교, 말씀만을 반복적으로 나타냈기에 사람들이 그 짠맛을 잃어버렸을 터이고 그 본래의 밝은 빛이 흐려졌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는 곳곳에서 내 마음이 찔리고 그리하여 달아오르는 것을 계속 느낄 수 있었다.

오늘날의 교회는 사람들이 오해하고 또 왜곡되이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면 교회가 알라딘의 처럼 본인의 소원을 들어주고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장소처럼 여긴다. 이는 분명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기복신앙의 폐단일 것이다. 책의 저자도 "오늘날 교회(나는 극히 일부교회라고 믿고 싶다.)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 이곳에 계시며..." 라고 질타한다.

그는 성경에 충실하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는 주인이요, 소유주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소유이고 그분은 왕, 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는 그분으 백성이요, 그분의 부하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그분의 노예들이다."

킹제임스 번역본과 그보다 앞선 제네바 성경을 포함한 거의 모든 성경이 노예, 헬라어로 '둘로스'라는 단어를 '노예(Slave)'로 번역하는 대신, '종(Servant)'으로 대체한고 있다. 노예와 종의 핵심적인 차이는 종은 고용된 존재이고 노예는 소유된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것을 보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또한 예전의 그 성경 저자들이 굳이 종이라는 표현대신 노예라는 단어를 썻는지 그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과 1세기 로마의 노예제도 사이의 다음과 같은 공통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① 전적인 소유권, ② 무조건적인 복종, ③ 오직 헌신, 전적의존, 개인적인 책무

이는 노예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슷한 점이라 하겠다.

전적의존. 나의 쓸 것과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 주인이라는 것을 그 당시 노예들은 알 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입으로 시인한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지 못하며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늘 불안해 하고 있는 나의 모습. 나의 것을, 나의 지위를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기면 어떻게 하나라며 직장에서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그러한 전적으로 의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아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저자는 만약 '우리가 노예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상속자이다.'라고 하였다. 책을 중간즈음 읽어 가는 중에 깨달은 바가 있음을 기쁨의 마음으로 아내에게 전하고자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노예라고 하네?"라고 하였더니

"나는 노예가 아니라 자녀인데?"라며 답이 되돌아 왔다.

우리는 노예이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역설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온전히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 이는 분명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유의 노예가 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전적인 택하심을 입은 그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 소중한 진리를 담아 두었던 나의 마음상자에 먼지가 쌓일 때 마다 위의 책으로 다시 쌓인 먼지를 훔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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