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주마관산"으로 뒤적이기 (18) : 매미와 하이쿠...

 

어젯밤에는 더워서 잠도 안 오는데, 밖에서는 밤새 매미가 울어댔다. 그중 한 녀석은 우리 집 바로 앞 감나무에 매달렸는지 유난히 큰 소리로 울어대는 바람에 좀 성가셨다. 아파트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고 굵직한 나무가 많아서인지, 그리고 단지 내에도 제법 나무가 없진 않아서인지, 장마 지난 후에 매미소리가 하루종일 그칠 날이 없다. 한밤중에도 매미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것은 가로등이나 전깃불이 너무 환한 까닭일까? 낮에만 잠깐 시원하게 폭포수처럼 쏟아졌다가 밤이면 조용히 잦아들어야 마땅할 자연의 섭리가,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에 의해 또 하나 어그러진 것 같아 씁쓸하다. 뭐, 그래도 몇 년 전만 해도 매미소리는커녕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며 행인들의 발자국 소리에 밤낮으로 시달렸던 것을 떠올려 보면, 한밤중에 울어대는 매미소리도 오히려 정겹고 신기하게 들리기만 한다. 다만 집사람이 요즘 열심히 읽다 팽개친 (아마 끝까지 다 안 읽었을 거다.) 레이첼 카슨의 책 제목마냥 "침묵의 봄"이 언제쯤 닥칠지 불안불안할 뿐이다.

어차피 밤도 안 오고, 뒤척뒤척 하다가 문득 매미소리에 대한 바쇼의 하이쿠가 하나 생각나 책장을 뒤졌다. 얼마 전에 구입한 <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유옥희 옮김, 세계시인선 53, 민음사, 1998)에는 유명한 "매미 울음" 하이쿠가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 한적함이여 / 바위에 스며드는 / 매아미 울음. (76쪽)

그런데 "매아미 울음"이란 번역이 좀 눈에 거슬린다. 물론 시적허용도 가능하겠지만, "매미"가 아니라 "매아미"가 되니까 어딘가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거다. 사전에는 "매아미"가 매미의 평안도 방언이라고 나오는데, 물론 "매아미"라고 해서 이게 "매미"인줄 모를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5-7-5 라는 하이쿠 특유의 글자수를 맞추기 위해 굳이 그럴 필요까진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내친 김에 옆에 있는 류시화 편역의 하이쿠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이레, 2000)에는 어떻게 번역했나 뒤적여 본다.

  • 한낮의 정적 / 매미 소리가 / 바위를 뚫는다. (27쪽)

이 시를 비롯해서 이 책에 수록된 다른 하이쿠도 대부분 글자수를 맞추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딱 보자마자 "영어에서 중역한 것"이란 티가 풀풀 난다. 확인차 그 옆에 있는 R. H. Blyth 의 네 권짜리 Haiku ( Tokyo: The Hokuseido Press, 1982, pbk ed.) 가운데 세 번째 권인 Summer-Autumn 을 뽑아든다.

대표적인 하이쿠를 계절별, 그리고 주제어별로 정리해 두고 일어 원문과 발음, 그리고 영어 번역을 덧붙여 이해하기 쉽게 해 두었다. 일본어도 모르는 주제에 하이쿠에 관심이 있어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다가, 언젠가 용산 헌책방에서 운 좋게 구입해 간직하던 책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책이 영어로 번역된 하이쿠 선집으로는 거의 으뜸으로 치는 책이며, 이어령도 <하이쿠 문학의 이해>를 쓸 때 주로 참고했다고 하고, 류시화 역시 이 선집을 주로 사용한 모양이다. 위의 하이쿠는 다음과 같이 영어 번역이 나와 있다.

  • The silence; / The voice of the cicadas / Penetrates the rocks. (816쪽)
  • Shizukasa ya / iwa ni shimiiru / semi no koe

하이쿠에 대해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뒤적일 때 만난 책 가운데 가장 반가운 것은 <日本人의 詩情 : 俳句篇>(박순만 편역, 성문각, 1985)이란 번역서였다. 편역자는 정음사 판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인 루소의 <고백록>을 번역하기도 한 불문학자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일제시대 말엽에 공부한 양반이어서인지 일본어에도 능통했던 모양이다.(달리 말하자면 루소 번역이 일어 중역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에 나온 하이쿠 번역은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명 번역"인 것이, 우선 하이쿠의 글자수(5-7-5)를 거의 정확히 우리말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1990년대 말에 들어서 몇몇 번역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하이쿠 번역서는 근 수십 년간 이것이 유일했던 것 같은데, 번역의 수준 역시 상당하기 때문에 해방 전의 일본어 세대가 남긴 마지막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찬탄과 동시에 한탄이 나온다. 위의 하이쿠를 이 책에서는 이렇게 옮기고 있다.

  • 한적함이여 / 바위에 스며드는 / 매미의 소리. (65쪽)

물론 어떤 번역이 좋은 것이냐에 대해서는 직역이니 의역이니부터 해서 갖가지 설왕설래가 있을 것이니, 더 이상 따지고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하이쿠야말로 지극히 "일본적"인 시가의 형태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어쩌면 이런 시, 특히 문학작품의 번역에 있어서는 "한글세대"보다는 "일본어세대"가 좀 더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달리 말하자면 이제 김소운이 언젠가 자랑삼아 말한 것처럼 "나는 <겐지모노가타리>를 술술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 세대가 좀 더 유리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을 뿐이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일본 소설이 현대 중에서도 가장 최근 1, 20년 간의 작품만이 소개되고, 그 이전의 근대나 더 이전의 고전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요즘은 그래도 많이 나오는 편이지만.) 한 까닭은, 일찍이 일본문학을 읽을 "필요"가 있었던 사람들은 굳이 번역을 필요로 하지 않앗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지금 나이가 70대 이상 되는 노인들이야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며 자라난 세대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일본책을 그냥 읽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한글 번역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거다. 최근 들어 일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고전 및 근대 문학작품이 줄줄이 번역되는 것도, 어쩌면 이제야 우리가 일본을 "외국"으로, 일본어를 "외국어"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이처럼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을 생각해 보니, 역시나 식민통치의 후유증은 깊고도 길다.

내친 김에 "매미"에 관련된 하이쿠를 몇 개 더 소개하자면, 우선 바쇼의 것 중에 :

  • 우듬지에서 / 허무하게 지누나 / 매미의 허물 (박순만, 114쪽)
  • 너무 울어 / 텅 비어 버렸는가 / 이 매미 허물은 (류시화, 57쪽)

바쇼의 것 또 하나 :

  • 곧 죽을 듯한 / 기색은 안 보이네 / 매미소리야 (박순만, 119쪽)
  • 당신은 모르겠지만 / 지금 울고 있는 저 매미는 / 오래 살 수가 없어. (바쇼. 134쪽)

그리고 번역이 썩 맘에 들진 않지만, 류시화의 시집에서 몇 개:

  • 올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이싸, 81쪽)
  • 여름 매미 / 나무를 꼭 껴안으며 / 마지막 울음을 운다. (이싸, 99쪽)
  • 매미 한 마리 우는데 / 다른 매미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 이 늦은 가을 (이싸,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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