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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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드라마, 영화, 소설 등 각종 매체에서는 검사를 두가지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돈과 권력을 좇는 '비리형 검사', 사회 정의를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투사형 검사'.

극과 극의 모습으로 우리 뇌리에 박혀 있는 검사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활형 검사'들도 있다. 아니 그런 검사가 더 많을 것이다.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처럼 살겠다는 김웅 검사가 책을 냈다.

<검사내전>

평범한 사람들에겐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인 범죄 현장 속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아주 솔직히 풀어놓은 책이다. 

그의 글은 한 편의 범죄영화보다 황당무계하고, 추리소설처럼 긴장감이 돌더니 신파극처럼 짠했다.

피식 웃기는 언어유희와 재치있는 글발! 그리고 법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의 이야기는 사기꾼들로부터 시작된다.

p.22

먹기 위해 뛰는 것과 죽지 않기 위해 뛰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기꾼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죽지 않기 위해 뛴다.

p.86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그가 만난 사기꾼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타겟으로 삼았고, 검사만큼 혹은 검사보다 법을 잘 알아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다녔다. 구속시키기는 하늘의 별따기고, 구속되어도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으로 쉽게 풀려난다. 검사들은 그들과 매번 두뇌싸움을 벌여야 했다.

후덕한 인상의 할머니가 어음사기범었고, 여성만 노리는 교통사고 보험사기범, 목사를 속인 건물 투자 사기범, 프랜차이즈 사기범, 연예인 지망생을 울린 파렴치한까지... 사기의 종류는 끝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사기의 공식은 의외로 단순하고, 허접하다고 김웅 검사는 말한다. 그렇기에 각자가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공식을 알아놓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욕심을 철저히 이용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욕심이 끼어들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욕심은 논리와 이성을 마비시켜 사람들을 사기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물론 사기친 놈이 나쁜 놈이고, 당한 사람은 안쓰럽다. 그러나 당한 사람도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사기꾼의 먹이가 될 것이다.

또한,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접근하는 사람들도 사기꾼일 가능성이 크다. 건물을 사면, 땅을 사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 떼돈을 번다고 속이는데 그런 선의를 베푸는 사람은 없다. 김웅 검사는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당하는 지름길'이라고 못박는다.

 

사기꾼이 있으면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김웅 검사는 소년 검사 업무를 하며 안타까움, 아쉬움, 보람이 교차했다고 한다. 그들은 아직 덜 자란 아이들이기에 상처도 크고, 후유중도 깊어 검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 대신 피해를 입은 너 자신이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꼭 일깨워줘야한다.

'산도박장 박 여사의 삼등열차'편에서 박 여사와 계장과의 대화는 개콘에 나올법한 대사들이 난무했는데 김웅검사는 이를 법에 대한 성찰로 승화시켰다.

산에서 도박하다 구속되엇는데 다행히 집행유예를 받고 다시 산도박장으로 향했던 박 여사. 그녀의 중독성 덕분에 다시 잡혀 들어왔다. 계장과 그녀의 대화 속에서 철학자 한스 요나스의 말을 찾았고, '어떤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가'와 같은 질문도 가능했다.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고, 국가는 왜 노름이나 약물중독을 처벌하는지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맹자와 소크라테스까지... 김웅 검사의 말에 따르면 도박꾼 박 여사는 철학자임에 틀림없었다. 박 여사 덕분에 사회시간에 배웠던 '법은 무엇인가'를 실생활과 적용시켜볼 수 있었다.

김웅 검사는 본인이 조직과는 잘 맞지 않는 당청꼴찌 검사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검사장이 등산가자고 하면 떼로 가는 거 싫다고 거절하기도 하고, 높은 사람 앞에서도 한가로이 술이나 마시고 있어 걱정이라는 입바른 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야근하고 있는데 술자리에서 차장검사가 전화해 나가지 않고,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 불러도 차장님 나와주나요?"라는 당돌한 고백도 할 줄 안다.

그렇지만 그는 좋은 검사라는 생각이 든다. 경청,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준다. 팔랑귀라서 그렇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는 경청능력덕분에 정신병자나 노숙자와도 말이 통한다. 이런 검사라면 아집이 아닌 진실쪽에서 수사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검사는 법전만 파는 샌님이고, 유머감각은 제로인 사람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의 글에는 깨알 재미와 인문, 고전, 철학 등 심오한 문장들이 가득했다. 그 이유는 역시 '책읽기'였다.

책이 없던 어린 시절엔 '컬러학습대백과'를 시작으로 집집마다 책구걸을 했다. 한때 속독법으로 인해 책에 재미를 잃었으나 거기에서 벗어나기위해 A4용지를 반으로 접어 메모하며 읽는단다. 그의 필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끝으로 그는 법의 허점과 아쉬운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법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해결방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책 속의 법과 현실에서의 법은 많이 다르다. 그리고 법은 어느 하나만을 옳다고 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법이 아닌 시민들 스스로 분쟁을 해결해나가는 방법으로 전환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권력과 출세에서 한 발 물러서서 사람들을 향해 따스한 눈길을 던져줄 것 같은 검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 역할은 못하겠지만 이런 나사못같은 검사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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